[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

표정관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여름이면 감옥은 참으로 서러운 곳이 됩니다. 좁은 방에 여럿이 갇혀 있으면 옆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만 보냅니다. 끄는 것이 차라리 좋습니다. 바깥바람이 들어오는 곳은 창살이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창문뿐입니다.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화장지를 길게 찢어서 창살에 매어 놓습니다. 창살에 매어놓은 화장지가 흔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봅니다. 부채를 부쳐보지만 땀만 흐릅니다. 저절로 욕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다투기 시작합니다. 말리는 척 하지만 기분이 좋습니다. 두 사람이 징벌방에 가면 오늘 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습니다. 표정관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어느 형제가 여름을 겪으면서 보내준 편지글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VIP 손님들에게는 공휴일과 명절 그리고 여름휴가철은 배고프고 집 없는 서러움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때입니다.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노숙인 쉼터에서 잠도 잘 수 없습니다. 공휴일이고 명절이고 여름휴가여서 근무하는 직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직원이 공휴일에 일해도 배려해 줄 수 있는 예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굶어야 하고 쉼터에서 나와 노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민들레국수집의 여름휴가는 괜찮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보다도 더 힘들게 감옥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을 찾아가는 여름휴가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손님들은 ‘나 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항상 이야기를 합니다.

민들레 국수집 여름휴가

저의 아내인 베로니카가 운영하는 옷가게가 있는 지하상가에서는 여름에 일주일 휴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여름이면 베로니카와 함께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썰렁한 곳으로 피서를 갑니다. 감옥에 있는 형제들을 찾아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베로니카는 지하상가에서 조그만 옷가게를 운영합니다. 돈을 벌 줄 모르는 저를 위해 아낌없이 번 돈을 내어줍니다. 민들레국수집을 도와주는 것도 모자라는지 제가 만나는 감옥에 갇혀 있는 형제들을 도와줍니다. 최고수(사형수) 형제들과 무기수 형제들과 징역이 이십년쯤 되는 장기수 형제들을 동생 삼아서 누나처럼, 엄마처럼 옥바라지를 해 줍니다.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단조로운 감옥 생활에 기쁨을 주기 위해 예쁜 편지지에 아기자기한 내용들을 써서 보냅니다. 글을 모르는 형제들을 편지로 글을 깨치게도 합니다. 감옥에 있는 형제들은 베로니카의 편지봉투만 봐도 누구에게 온 편지인지 알아볼 정도입니다. 전화할 곳이 없는 형제들이 전화하면 따뜻하게 받아줍니다. 다달이 영치금도 넣어줍니다. 계절이 바뀌거나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티셔츠, 내의, 양말, 수건 등등을 챙겨서 보내줍니다. 혼자만 입지 말고 없는 사람들과 나눠 입을 수 있도록 푸짐하게 보내줍니다. 공부하고 싶어 하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줍니다. 또 일 년에 한 번뿐인 상가의 여름휴가마저 편지로만 만나던 감옥에 있는 동생들을 만나러 다니는 데 씁니다.

베로니카의 편지 봉사

십여 년 전에 감옥에 갇혀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로나마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베로니카에게 청송교도소에서 이십년 육 개월의 형과 감호처분을 받고 징역을 살고 있는 꼴베 형제를 처음으로 부탁했습니다. 꼴베 형제는 십팔 년 째 징역을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감호법이 없어졌지만 없어진 감호법의 적용을 받아서 가석방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일급 모범수인데도 불구하고 귀휴 혜택도 없습니다. 이십 년 육 개월의 징역을 모두 살고 나면 없어진 감호법에 의해 받은 감호처분 때문에 몇 달 혹은 몇 년을 더 감옥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꼴베 형제는 원망은커녕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데 열심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기수인 제노비오를 부탁했습니다. 처음 제노비오를 목포교도소에서 만났습니다. 눈빛이 사나왔습니다. 그런데 베로니카가 옥바라지를 해 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부드럽게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제노비오가 다니다가 중퇴한 중학교를 찾아가서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서류를 만들어서 보내고 학비도 부족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고입자격 검정고시, 대입자격 검정고시를 치르고 지금은 대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노비오를 만난 지 십여 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해 여름휴가 때는 처음으로 “영치금을 넣지 말고 그 돈으로 맛있는 저녁을 드십시오.”라며 자기 것을 나눌 줄 아는 모습도 처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최고수(사형수)인 프란치스코 형제도 부탁했습니다. 몇 년 전에 베로니카와 함께 여름휴가로 교도소를 찾아다니다가 제노비오 형제를 면회했을 때 같은 무기수인 아우구스띠노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와 몇 번 편지를 나누다가 베로니카에게 의동생 삼아서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최고수인 프란치스코 형제가 부탁했던 같은 최고수인 요셉 형제는 얼마 전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십 년도 넘는 징역을 살아야 하는 꼴베 형제님을 통해서 바오로 형제와 보니파시오 형제 그리고 베드로 형제도 베로니카의 의동생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형제는 별명이 “아까돌아”입니다. 조금 전에 싸웠다가 또 싸운다고 붙여진 별명입니다. 아기일 때 아버지가 시끄럽게 운다고 뜨거운 물에 던져버렸던 충격으로 참지를 못합니다. 징벌방에 가는 것을 밥 먹듯 합니다. 글도 쓸 줄 모릅니다. 동화책을 필사하게 했습니다. 열 몇 권의 동화책을 옮겨 적으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게 편지를 씁니다. 징벌방에 가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여름휴가 때 누나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잘 참는지 대견할 정도입니다. 베드로 형제는 서예를 합니다. 서예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보니파시오 형제는 무기수입니다.

감옥과 교도소 사이

십여 년이 넘게 감옥에 갇힌 형제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랑만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만이 감옥에 갇혀있는 형제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람대접을 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는 교도관들이 수용자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도소가 아니라 감옥입니다. 굳이 교도소라는 공식 명칭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표현 하는 것은 교도소에는 수용자들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사랑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도소에서는 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이 교도관과 경비교도대원들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 논에서 일하는 모습은 살벌합니다. 어느 교도소에는 수용자들이 일하는 곳도 있습니다. 교도관들은 절대로 수용자와 함께 일하지 않습니다. 지시하고 감독하고 감시만 합니다. 그러면서 수용자를 교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이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요즘은 매월 한 번 청송 3교도소와 청송 교도소에 자매상담을 갑니다. 자매상담을 하면서 약간의 음식물을 마련해서 형제들과 나눠 먹을 수 있습니다. 몇 달 전에는 형제들이 먹고 싶어 하는 순대를 교도소 근처의 진보시장에서 마련해서 들어갔는데 형제들과 나눠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먹고 탈이 나면 큰일이라면서 담당 교도관이 반입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도소에서 어떤 때는 돼지고기 편육도 반입이 허락되기도 합니다. 반입할 수 있는 음식물에 대한 규정은 담당 교도관 마음대로인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어느 교도소에서 민원실에서 갇혀있는 형제에게 나무 묵주알과 실로 엮은 묵주를 영치하려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묵주로 자살을 한다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면서 영치를 거절하기도 합니다. 어디에도 수용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곳을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별사면 10시간

1998년 3월 14일에 만기 출소가 되는 어느 형제가 특별 사면으로 3월 13일 오후 2시에 출소하는 황당한 일도 보았습니다. 특별 사면으로 가석방이 되는데 겨우 10시간 혜택을 받은 셈입니다.

겨우 열 시간의 가석방 혜택도 받을 길이 없는 감옥에 있는 형제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곳의 형제들이 알고 보면 백이 없고 힘없는 가장 불쌍한 약자들인데 파렴치범 내지 흉악범으로 분류되어 사면 대상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늘 소외되어 아픈 상처만 갖게 되는 것이지요. 결코 우리의 크나큰 죄를 부인하거나 어떤 식으로든지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사면으로 속속 풀려나는 특수층이나 양심수라는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어쩐지 가슴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울분이 응어리를 만들게 하는군요. 그 누가 양심수이고 그 누가 특수층이며 그 누가 파렴치범이며 흉악범입니까? 오늘은 예수님께 절실하게 기도하면서 여쭈어 봐야겠습니다.”

백이 없고 힘없는 가장 불쌍한 약자를 만나러 가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면서 한 번 뿐인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베로니카를 보는 기쁨이 큽니다. 감옥에 있는 형제들에게 나눠 줄 티셔츠와 수건 그리고 묵주와 아기자기한 선물들을 예쁘게 포장하는 손길도 아름답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만남을 소풍 날짜를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손꼽아 기다리는 감옥에 있는 형제들의 마음도 아름답습니다.

2008년 여름휴가는 청송교도소와 대구교도소 그리고 광주교도소와 순천교도소를 다녀왔습니다. 서울구치소와 영등포교도소는 짧은 여름휴가 때문에 미리 베로니카의 가게가 쉬는 날 다녀왔습니다


/서영남 2008.8.22.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