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빵 할머니는 일흔 두 살입니다. 커다란 옥수수 빵을 조그만 손수레에 싣고 골목길을 다니면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옥수수빵 공장이 문을 닫아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다니시면서 종이상자를 줍습니다. 종이상자를 모아서 고물상에 가져가면 오백 원에서 천 원 정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빵 할머니는 치아가 부실하셔서 계란 프라이를

빵 할머니는 치아가 부실하셔서 드실 반찬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계란 프라이를 해 드립니다. 살짝 익힌 것은 싫어하셔서 완전히 익혀서 드립니다. 나가시면서 제게 봉투를 내밉니다. 2만원이나 들었습니다. 할머니께 정말 이렇게 많은 돈은 못 받겠다고 다시 돌려드려도 할머니가 당신 마음이니 꼭 받아서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다시 제 손에 쥐어줍니다.

빵 할머니는 다섯 평쯤이나 되는 작고 허름한 집이 하나 있습니다. 재산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빵 할머니의 집에는 남편에게 너무 맞아서 걷지도 못하고 우울증도 심한 병든 따님이 아이들 둘까지 데리고 와서 살고 있습니다. 외손자들이 스무 살쯤 되었는데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그냥 빈둥거립니다. 석유가 터무니없이 비싸서 겨울철 난방을 할 생각도 못합니다. 전기장판마저 없이 살았습니다. 얼마 전에야 전기장판을 하나 마련해 드렸습니다. 빵 할머니가 한두 푼이나마 벌어야만 그나마 삽니다. 겨우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쌀이나마 떨어지지 않게 드리는 것 뿐 입니다.

“할머니, 다 큰 외손자들을 왜 할머니가 돌봐요?”
“핏줄인데.”

빵 할머니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쌀만 있으면 집에서 해 먹지

용자 할머니는 여든 다섯이십니다. 혼자 삽니다. 서울에 아들이 산다고 합니다. 명절이면 서울에 있는 아들 집에 잠깐 다녀옵니다.

“용자 할머니, 집에서 밥을 해 드실 수 있나요?”
“그럼, 쌀만 있으면 집에서 해 먹지. 그런데 쌀을 살 돈이 없어.”

매달 쌀을 10킬로 가져다 드리면서 계란을 두 판 드리면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할머니의 작은 집은 고물로 가득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남은 집만큼은 팔지 말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일곱 평쯤 되는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아들과 며느리도 집을 팔아서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아들과 며느리가 고맙다고 합니다. 그 집이 있다고 할머니는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용자 할머니는 고물을 주워서 겨우 쓸 돈을 마련합니다. 겨우 사시는데도 불구하고 집 팔아달라고 하지 않는 아들네를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합니다.
용자 할머니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언니 때문에 산다

명옥 아주머니는 쉰여섯인가 그렇습니다. 아들이 서른이고 딸이 스물일곱입니다. 아들과 딸 둘 다 정신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인 복지관에 주간 동안에는 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소일할 뿐입니다. 명옥 아주머니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허름한 집은 명의가 명옥 아주머니로 되어있지만 사실은 명옥 아주머니의 친언니의 것입니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가 집 명의를 친언니에게 돌려주면 가족 전부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고 해도 언니 때문에 산다면서 펄쩍 뜁니다.

기름보일러는 고장입니다. 고장이 나지 않아도 석유를 살 수도 없습니다. 연탄보일러로 바꿀 여력도 없습니다. 일인용 전기장판 하나로 세 가족이 추위를 견딘다고 합니다. 좀 넓은 것으로 바꿔드렸더니 참 좋다고 합니다.

화수동 주민 센터에 가면 “사랑의 쌀”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조그만 비닐봉지에 하나 가득 담아갈 수 있습니다. 쌀을 담아가는 사람의 명단을 보았더니 명옥 아주머니 이름이 있습니다.

왜 주민 센터에서 쌀을 가져가시는지 명옥 아주머니께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장애인 복지관에서 점심은 먹지만 저녁은 집에서 해 먹여야 하는데, 당신은 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지만 아이들 밥 해 줄 방법이 없어서 주민 센터에 가서 쌀을 얻어다가 보온은 안 되고 밥만 되는 것이 전기밥솥이 있어서 거기다가 밥을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반찬 없어도 밥을 잘 먹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마음들 때문에 여리디 여린 철부지 목숨들이

민들레국수집 작은 창고에 전기밥솥이 하나 있습니다. 깨끗하게 닦고 밥을 해 보았더니 아주 잘 됩니다. 쌀 한 포와 함께 명옥 아주머니께 선물했습니다. 반찬이 없더라도 밥이나마 자식들 맘껏 먹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명옥 아주머니의 마음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자식들이 애처로운 어머니의 마음들 때문에 여리디 여린 철부지 목숨들이 그나마 부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서영남 200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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