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2001년 4월 7일에 안드레아 형제가 세상의 고민을 모두 껴 앉은 듯한 표정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청송 2감호소에서 2000년 8월에 나와서 저와 함께 구의동 평화의 집에 있었습니다. 제가 수도원을 나오면서 평화의 집을 떠난 후에도 어려운 형제들을 잘 도와주면서 평화의 집에서 큰 기둥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정이 생겨 평화의 집을 떠나왔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와달라고 합니다. 얼마 전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된 바오로 형제도 데리고 왔습니다.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바오로 형제는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저와 함께 교리공부를 하고 영세를 했습니다.

두 형제를 여인숙에서 당분간 지내게 하고 서울구치소 천주교 봉사자 자매님들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참으로 고맙게도 천사표 자매님들이 세상에 나오면 힘들 출소자 형제들을 위해서 조금씩 모아둔 것을 저에게 모두 보내주셨습니다. 4,631,470원입니다.

4월 10일에는 저와 안드레아 형제와 바오로 형제 셋이서 점심을 든든히 먹은 후에 송현동 주변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지다시피 우리들이 살 집을 찾아 다녔습니다. 몇 군데의 집들을 서로 비교해 본 다음에 우리 형제들이 마음 편해 하는 송현동 성당 옆에 있는 허름한 독채가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보증금 삼백만 원에 월 십오만 원입니다. 방은 큰방과 작은방 둘입니다. 화장실이 재래식이고요. 그래도 햇빛이 조금 들어오는 마음 편한 집입니다. 집 주인이 도배지와 장판은 사 주셨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청소하고 도배를 했습니다.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가스레인지는 중고로 구했습니다. 이불도 마련했습니다. 전기밥솥은 10인용 밥솥으로 마련했습니다. 냄비와 그릇도 장만했습니다.

인천시 동구 송현동. 화수동

아무도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겨자씨의 집의 첫 손님은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의 레나 수녀님이십니다. 부활절 낮에 부활 달걀 바구니와 떡 한 보따리와 잡채를 가지고 물어 물어서 찾아오셨습니다.

4월 20일에는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청송교도소를 다녀왔습니다. 예천까지 비행기를 탔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는 59년생인데도 생전 처음 타보는 비행기였습니다. 청송교도소가 있는 진보에 도착해서 맘모스 제과점에서 빵을 샀습니다. 고맙게도 주인아주머니께서 교도소까지 승용차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도 좋은 과일을 싸게 주시면서 커피도 자판기에서 뽑아주십니다. 청송교도소에서 79년생 유 요한 형제를 면회했습니다. 지난 해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날 함께 불고기를 먹다가 사라진 형제입니다. 한 달 만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하고 서울 구치소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청송교도소로 이감을 왔습니다. 2002년 5월이면 출소를 한다고 합니다. 영치금이 얼마쯤 인가 알아보니 단돈 220원이 남아 있습니다. 만원을 넣어주면서 아껴 쓰라고 했습니다. 속옷이 없다고 좀 보내달라고 합니다. 청송교도소 바로 옆에 있는 1감호소에 갔습니다. 몇 달을 찾아보지 못했던 영등포 코털 아저씨를 면회했습니다. 예순이 다 된 나이인데 영등포 역 근처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온 분입니다. 영등포 구치소에 있을 때 영세를 했습니다. 영치금이 단돈 15원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4-5년은 더 청송에서 살아야 합니다. 영치금을 조금 넣어주었습니다. 2감호소에서 자매상담을 했습니다. 열 명의 형제들과 모임을 가지고 오후 세 시에 감호소를 나왔습니다. 형제들 영치금을 조금씩 넣어드리고 서둘러 안동으로 가서 다섯 시 청량리행 기차를 타고 멋진 소백산 경치 구경을 하면서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4월 25일에는 서울구치소의 천사표 자매님들이신 이르미나 자매님과 리디아 자매님께서 맛있는 음식 한 보따리나 싸들고 찾아오셨습니다. 형제들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겨자씨 집을 앞으로 열 개는 더 만들자는 멋진 다짐을 나눴습니다.

5월 1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우리 안드레아 형제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생일이 사월 초파일이어서 거의 스무 해 정도의 징역살이를 하면서도 생일에는 특식을 먹었다고 자랑합니다. 인천 만수동 수도원 옆에서 이서방 치킨가게를 하는 프란치스코 형제가 부인과 함께 다현이와 동근이를 데리고 안드레아 형제의 생일 축하를 하러 찾아왔습니다.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아이들의 축하노래 속에 촛불을 불어 껐습니다. 저녁에는 쇠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는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열다섯 살 때 아버지가 때 아버님 끓여주셨던 생일 미역국을 먹어보고 마흔 셋에 다시 생일 미역국을 먹어본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5월 3일에는 20년형을 선고받고 또 감호처분도 받고 청송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꼴베 형제의 어머님을 모시고 저녁식사 대접을 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꼴베 형제 모친께 카네이션도 달아드렸습니다.

5월 11일에는 혼자서 춘천 교도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서울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다가 겨우 춘천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네 시간이나 걸려서 춘천교도소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달에 출소할 자매님께 티셔츠를 넣어드리고 청송 2교도소에서 만났던 두 형제를 찾아보았습니다.

5월 16일에는 바오로 형제님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서울구치소의 천사표 봉사자이신 리오바 자매님과 이르미나 자매님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청담동에서 삼계탕과 닭튀김을 맛있게 먹었고요. 커피도 마셨습니다. 자매님으로부터 겨자씨의 집을 돌보아 주실 성모상도 선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청송에 있는 두 형제들에게 전해 줄 내의도 받았습니다.

5월 18일에는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새벽 네 시 반에 인천을 출발해서 청송을 향했습니다. 오전 9시에 안동교도소에 들러서 시몬 형제를 면회하고 청송 2교도소에 들러 한 번도 면회를 해보지 못했다는 44세 된 다미안 형제를 면회했습니다, 자기에게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믿어지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다시 진보로 나와서 점심을 먹고 청송교도소에 들러서 두 형제를 면회하고 리오바 자매님이 전해달라던 내의도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1감호소에 들러 두 형제님을 면회하고 2감호소에 가서 형제들과의 자매상담 모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하루에 다섯 군데의 교도소를 방문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밤 9시 15분에 집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레나 수녀님께서 밑반찬을 가지고 겨자씨 집을 찾아주셨습니다. 청송 소풍을 다녀오느라 아쉽게도 만나 뵙지를 못했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는 막노동일이 있다 없다가 해서 일을 별로 못했습니다. 바오로 형제는 계속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곤 있지만 나이 등등의 조건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바오로 형제는 생전 처음으로 밥걱정, 잠자리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쉬어본다고 합니다. 열일곱 살에 집을 떠나서 지금껏 고달픈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5월 25일에는 청송 2감호소에서 가출소하는 마르치아노 형제가 새 식구로 왔습니다. 서른 두 살입니다. 열세 살 때 집을 가출해서 온갖 고생을 하다가 스물다섯 살 때 청송에 가서 7년 만에 나왔습니다. 징역을 두 해를 살고 다섯 해는 감호를 살았습니다. 키가 180센티고 몸무게는 98킬로입니다. 별명이 코끼리입니다. 다음 날 마르치아노 형제가 그렇게도 먹고 싶다던 갈치를 구웠습니다. 갈치구이에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2001년도에 수도원을 나와서 출소자를 위한 겨자씨의 집을 시작하면서 살았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서영남 200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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