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삶과 노래]소통과 쇄신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다음, <프라도 사제회> 관심자였던 나는 성소지도를 해 주시던 오영진 신부님(현재 프랑스 쌩드니교구 주교)의 권고로, 경북 구미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는 사목자를 동반하고 있었다. 1978년 제2회 MBC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은상을 수상했지만,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싶은 열망을 그분의 부르심이라 믿었기에 실천적인 삶을 얼마간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청년들이 찾아왔고, 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쳐서 함께 기타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이 움직여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있고, 레지오로 연결되거나 성소를 느껴 수도자가 된 청년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기타미사나 청년활동은 함께 했지만 끝까지 입교를 안 한 사람도 있었고, 개신교나 불교 등 자신의 종교를 계속 지켜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입교나 개종을 권유하지는 않았지만 늘 평화롭게 함께 할 수 있었고, 노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톨릭교회의 보편사랑을 나누고 간직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주는 것과, 개신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성모님에 대한 공경과 사랑을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신기루처럼 다가온 성모님 노래

1982년 이른 봄. 몇몇 청년들과 함께 성당 마당가의 공터를 일구어서 꽃밭을 만들었다. 오월 ‘성모의 밤’ 행사 때 우리가 직접 가꾸어 피워낸 꽃을 봉헌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자는 제의에 그들은 순순히 동참해 주었다. 화원에 가서 한련화와 안개꽃 그리고 해바라기와 봉숭화 씨를 사서 심었고 매일 정성껏 물을 주었다. 오월이 되자 안개꽃이 꽃밭 가득 피어났다. 5월 15일 밤에 있을 ‘성모의 밤’ 행사를 위해 아침부터 안개꽃을 꺾었는데 너무 많아서 손으로 꺾지 못하고 낫으로 베어낼 정도였다. 꽃병에 꽂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어서, 성모상 양 옆에 항아리를 두 개 옮겨다가 가득 담아두었다. 그날 밤, 모두를 사로잡은 것은 단연 안개꽃 항아리였고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경사는 꽃잔치만이 아니었다. 작곡 공부는 물론 음악에 관한 어떤 공부도 특별히 한 적이 없는 내게 노래는 늘 신기루처럼 다가왔다. 감흥이 고조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주 짧은 순간 완성된 노래가 머릿속으로 지나가고, 그렇게 한 번 입력된 내용은 다시는 지워지지 않는다. 안개꽃을 베어내면서도 절로 노래가 떠올랐기에 악보를 만들어 청년들과 즉석연습을 했고, 그날 밤에 꽃과 함께 봉헌되었다.

라일락꽃 향기 짙은 푸른 오월에 사랑스런 하늘엄마 보고 싶어요.
이 세상 모든 형제 하늘나라 오라고 언제나 우리 위해 기원하시는
영원한 사랑이신 하늘엄마께 안개꽃 사랑 엮어 드리고 싶어요.
종달새 소리 맑은 푸른 오월에 아름다운 하늘엄마 그리워져요.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께 오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손짓하시는
아름다운 친구이신 하늘엄마께 진실한 사랑 엮어 드리고 싶어요.

(김정식 사/곡 「하늘엄마」의 가사 전문)


우리는 그날 밤에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봉헌하면서 참으로 행복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은 모두가 성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누었다고 생각한다.

구미 금오교회 초청음악회

개신교회에 나눈 성모님 은혜

우리가 누린 은혜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다음날 인근에 있는 개신교회 13곳에 전화를 걸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오월 한 달 동안을 성모성월로 정해 놓고 성모님께 공경과 사랑을 드리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님께 드리는 공경과 사랑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가톨릭 신자들과 성모님의 관계는 개신교회에서 알고 있는 왜곡된 내용과는 다른데 진실을 만나고 싶지 않은가? 원한다면 청년들과 찾아가서 위의 내용을 나누면서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다.’ 목회책임자에게 대충 이런 요지로 말했는데, 대부분 말하는 도중에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다 듣고 나서 관심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3개의 교회에서 초청을 받았다. 평일 저녁에 있는 수요예배 후에 청년들과 기타를 들고 가서 간간히 노래를 불러주면서 나눔을 했다. ‘노래 안에 담겨있는 내용처럼 성모님은 우상숭배라거나 신앙의 대상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기에,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구원사업에 적극 협력하셨고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을 낳고 키우신 분이기에 공경과 사랑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끝나고 난 후에 개신교 신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그런 사실을 지금까지 전혀 몰랐다고 했고, 아무도 그렇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목회자는 내게 ‘오늘 나눈 내용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인지 아니면 개인의 생각’인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개신교 지도자들의 잘못도 있겠지만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노래를 통해 삶의 영성을 나누며

요즘도 나는 간간히 개신교회에 초대되어 이런 나눔을 하게 된다. 이번 성모성월의 막바지에는 대전신학교 교수목사님의 주선으로 만난 목회자와 신학대학원생 연수에 초대되어 내가 만든 생활성가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가톨릭 신자가 생각하는 성모님’에 관해 나눔을 한 다음에 AVE MARIS STELLA(별이신 마리아)라는 그레고리안을 들려드렸다. 진지하게 듣고 있는 그분들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아먹었다는 일본 사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누구나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오해와 편견을 갖기가 쉽다. 그렇다면 벗어나는 길은 하나다. 잘 알게 해주는 일이다. 어떤 기회에 어떤 방법으로 잘 알게 해줄 수 있을지는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늘 따뜻하게 열린 가슴으로 다가가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진정한 나눔을 한다면 길은 어디에나 열려있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내게 노래를 주신 하느님, 내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노래와 삶을 나누는 재능을 주신 하느님께서 그 길에서 나를 늘 기다리신다. 사랑이 가득하신 하늘 엄마와 함께.
/김정식2008.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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