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수도원 기행-15]

벌써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돌아온 지 1년이 지났다. 그곳에서 5개월간 지내며 배웠던 것들, 느꼈던 것들을 왜관에 돌아가기만 하면 바로 적용해보고 살아봐야지 다짐했는데, 이 고질적인 만성 게으름 병으로 인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아니, 더 고약해 진 건 아닌지.

시편반주만 배운 게 아니었네

지난 2009년에 베네딕도회 한국진출 백주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우리 수도원을 방문한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미카엘 아빠스에게 장 엘마르 신부가 2010년에 자기가 본국휴가를 떠날 때 나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고 귀띔을 해 놓았다. 본래 목적은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라바누스 신부에게 시편반주를 배우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자신의 삶 전체를, 그리고 자기를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뮌스터슈바르작’ 공동체의 정신을 더 물려주고 싶어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로 출국하기 위하여 독일어를 엘마르 신부의 무서운(!) 개인교습으로 익히고, 서류와 필요한 것들도 둘이서 알아서 준비했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유학이 아닌 만큼, 공동체의 이해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나름 기초는 했다고 생각했는데,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가기 전에 며칠간 들렀던 엘마르 신부의 고향 ‘클라인오스트하임’의 말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다. “우리는 디알렉트(Dialekt - 각 지방 말) 사용하지요.”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가면 어떨까 했는데, 여긴 전국에서 모이다보니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형제도 있지만 5개월 내내 무슨 말인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던 형제도 있었다.

수도원의 상징, 네 개의 탑

프랑크푸르트에서 가까이 있었던 클라인오스트하임에서 아우토반을 타고 뷔르츠부르크를 지나 프랑켄와인으로 유명한 좀머라흐와 데텔바흐 방면으로 좌회전을 해서 들어가면 저 멀리서부터도 마인강변에 위치한 네 개의 커다란 탑이 보인다. 어떤 탑은 샘이 솟는다고 하고, 어떤 탑은 시계가 있고, 어떤 탑은 종이 달려 있는데 지어진 시기나 목적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겉에서 보이는 네 개의 탑이 이 수도원의 하나의 상징인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사업체 이름이 ‘Vier-Türme GmbH’, 우리말로 굳이 번역한다면 사탑사(四塔社)라고 할까.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이 대개 다 그렇듯이 여기도 수도원 전체 구조는 정말 복잡하다. 건물 내부를 비롯하여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김나지움과 피정집, 외부의 사업체까지 까딱 넋 놓고 돌아다니다 보면, 나가긴 나갔는데 들어오는 길을 잃어버린다거나, 막다른 길에 막혀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랫동안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 수도원 묘지

▲ 수도원 묘지

▲ 수도원 성당

추억이 서린 장소들

건물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몇 군데 인상적인 곳을 소개한다면, 5개월 동안 말 못하는 나를 끊임없이 위로해 주었던, 결국은 소시지가 될 수밖에 없던 팔자를 타고 났던 순둥이 소들이 머무르는 축사와 로마노 수사의 절친 토마스 모루스 수사가 키우는 양의 우리는 꼭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다. 특히 양우리 옆에는 전형적인 독일인 특유의 무서운 인상을 타고난 크리스토프 원장신부가 별을 관찰하기 위하여 큰 망원경과 그것들을 통제하는 컴퓨터 시스템이 설치된 관측소도 볼 수 있다. 물론 아무한테나 안 보여준다.

축사와 양 우리 사이에 있는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작업장과 화목 연료로 에너지를 얻어내는 발전시설, 그리고 수도원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슈바르작 강에 설치해 놓은 수력 발전 시설에서는 대체 에너지가 생산된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그 큰 수도원에서 사용하고도 남아돌아 정부에 판다고 한다.

마침 독일 곳곳에서 원자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참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많은 독일인들이 대체 에너지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무분별하게 원자력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에게 큰 새김꺼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원자력이 아니어도 불편함을 조금 감수하고 분명히 우리 실정에 맞는 대체 에너지가 지역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밖에 우리 수도원의 고(故) 김장수 보니파시오 신부가 묻혀있는 수도원 묘지, 산책로에 있는 성모경당 벽화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이 벽화는 우리 수도원 성모상 뒤에 있던 로사리오 기도화의 시험작이라고 한다.

수도생활 쇄신의 동력, 영성

▲ 수도원 주보성인 펠리치타스 성녀
사실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곳곳에 놀랍게 배치된 여러 장소나 조형물과 건물들은 오랜 시기를 거쳐 하느님을 찾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더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그들 나름의 신학을 가지고 갖추어져왔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로 두드러지게 활동하였던 여러 수도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장 엘마르 신부가 들려주는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변화는 크게 두 차례 이루어졌다. 허물어진 옛 수도원 터에서 새로운 기반을 닦았던 1세대에 반발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군대에 징집되었다가 돌아온 많은 신부와 수사들이 더 이상 예전의 고리타분한 방식대로 톤수라(삭발)도 하지 않고 수염도 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에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이듯, 개혁이라는 것이 꾸준한 자기반성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이상 자신들이 목표로 둔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 순간부터는 격렬하게 개혁을 부르짖었던 만큼이나 완고한 보수가 되는데, 이분들이 바로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공의회 세대인 장 엘마르 신부 세대의 젊은 수도자들이 다시 나서서 수도생활의 근본이 되는 ‘수도승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면서 나날이 자신과 수도원의 생활을 꾸준히 개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안셀름 그륀 신부와 독일어권에서 때로는 그보다도 더 유명한 피델리스 아빠스가 수도원 영성과 신학에 토대를 놓았댜. 또한 나에게 시편 반주를 가르쳐 주었던 라바누스 신부와 환속하였지만 여전히 그레고리오 성가의 대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데하르트 요피히가 전례음악을 통하여 ‘원천으로 복귀’와 ‘현대 세계에 개방’을 실천하였고, 아프리카 단다 수도원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폴리카르포 신부가 전례미술 안에서 수도원 고유의 영성에서 우러난 깊은 묵상을 풀어내었다.

수도원의 자랑, 피델리스 신부

특별히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형제들에게는 피델리스 아빠스가 가장 큰 자랑거리인 듯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에 양호실 담당 아브라함 수사의 방에 초대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을 연합회 내 여러 수도원과 비교하면서 칭찬을 하다가, 수도원을 이끌고 있는 미카엘 아빠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미카엘 아빠스를 극찬한 로마노 수사의 말을 듣고 가서인지 아주 큰 칭찬을 할 줄 알았는데, 겨우 “음……. 뭐,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뿐이었다.

그런데 피델리스 아빠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엔,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엘마르 신부도 “뮌스터슈바르작 출신 중에는 오도 아빠스나 아프리카 수도원에서 선출되었던 아빠스들이 있지요. 하지만 피델리스 아빠스같은 사람은 없지요”라고 했다.

▲ 젊은이 기도모임

피델리스 아빠스는 아빠스 선출 25주년을 한 해 남기고 사임하고, 새 아빠스가 뽑힌 날부터 호칭을 ‘신부’로 바꾸고 미련 없이 원래 자기 서열로 내려갔다고 한다. 또 독일 전역을 돌며 피정강의를 하고 벌어들인 수입은 다 재정담당에게 그냥 넘겨준다고 한다. 그리고 본원에 있으면 식당에서 독서 봉사와 전례 봉사를 꼬박꼬박 한다. 그러고 보니 아무에게나 다 ‘친구’ 먹는 그들이 피델리스 신부가 지나갈 때엔 진실로 공경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피델리스 신부와 협조자들 덕으로, 그리고 그 사상을 기꺼이 뒷받침해준 공동체 형제들 덕으로 뮌스터슈바르작 공동체는 지금도 참 수도생활에 대해, 참 사도적 삶에 대해 고민하고 나날이 정진하고 있다.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형제들은 프랑켄이라는(절대 자기네들은 바바리아가 아니라고 함) 지역적 특색도 있지만, 수도생활의 본질을 찾는 삶을 살아서인지 처음엔 무척이나 날카롭고 냉정하게도 느껴진다. 상트 오틸리엔 형제들이 순수한 신심과 순박한 성정을 가졌다면, 이들은 아주 세련된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하지만 가까워지면 어느 순간부터 그 따뜻한 마음속을 계속 내보여주고, 이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작년 5개월간 배운 것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된 채로 엉켜있긴 하지만, 수도승다운 삶(Conversatio morum-회심의 삶)을 기본으로 하여 나날이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 수도원이,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바로 Ecclesia semper reformanda(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 눈 내린 수도원 야경

<참고할만한 누리집>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http://www.abtei-muensterschwarzach.de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페이스북 페이지 http://www.facebook.com/Muensterschwarzach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간하는 <분도>지의 편집진과 상의하여 연재하는 글입니다.

이 아타나시오 신부
사진제공 아타나시오 신부, 토마스 모루스 수사
(성베네딕도수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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