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수도원 기행-11]

그러니까 내가 성삼일을 지내러 스페인 몬세랏(Montserrat) 수도원에 갔던 게 3년 전이었다. 안셀모 수도원에서 같이 지냈던 몬세랏의 두 친구, 조르디(Jordi)와 마넬(Manel)도 만나고 스페인 구경도 좀 해볼 욕심이었다. 혼자 가기 좀 그래서 그 무렵 안셀모 수도원에서 기숙하며 전례학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었던 의정부 교구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님을 구슬렸다.

로마 다빈치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비행기를 탔다. 창밖을 내려다보며 지중해 바다색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이제 막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데, 벌써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방송이 들려왔다. 지도에서 보면 바르셀로나가 로마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니 1시간 4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은 뒤 곧바로 여행 안내 책자를 꺼내 펴들었다.

몬세랏으로 가려면, 일단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서 몬세랏행 기차로 갈아타야 했다. 버스 안내판을 보는데 맨 위에 카탈루냐 지방말이, 그 밑에 스페인어, 맨 아래에는 영어로 표기되어 있는 게 신기했다. 예전에 조르디와 마넬이 자기들이 쓰는 말은 스페인어가 아니라 카탈루냐어라고 힘주어 말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차피 스페인말도 카탈루냐말도 모르니 여기선 아주 까막눈이 되겠거니 했는데, 희한하게도 여기저기 간판이며 광고문의 뜻이 대충 들어왔다. 스페인어과 카탈루냐어가 이태리어와는 한 사촌 간은 되어 보였다.

몬세랏, 톱으로 자른 산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물어물어 몬세랏행 기차를 겨우 탔다. 약간 안도의 숨을 쉰 뒤, 다시 소풍가는 초등학생 마음으로 돌아와 창가에 몸을 바짝 붙이고 밖을 내다보았다. 불그스름한 언덕들이 나지막하게 일렁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드문드문 인가며 가내수공업 공장 같은 집들이 눈에 띄었다. 마치 경부선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김천, 구미를 지나 왜관 수도원으로 향해 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국여행의 즐거움보다 고향땅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큰 탓이었을까? 로마 생각, 한국 생각 그리고 어머니 생각으로 점점 상념이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찰나, 기차가 몬세랏 역에 멈추어 섰다. 후다닥 짐을 챙겨서 내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던데 승강장이 어딜까?’하며 고개를 드는데, 울산바위 형제들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바위산이 눈앞에 딱 버티고 서있었다. 여기가 왜 '몬세랏Montserrat', 곧 '톱으로 자른 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저기, 저 위가 몬세랏 수도원인가 봐요.” 기차에서 막 내린 윤 신부님을 붙잡고 손짓으로 산 위를 가리켰다. 잠시 넋을 잃고 산 위를 올려보다가 문득 몬세랏 수도원 수사들은 산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서라도 '정주定住' 하나는 참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 가보니 승객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산을 휘감고 돌며 오르는 도로가 있어서, 수도원을 찾는 순례객들 대부분은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간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산 중턱에 내리니, 여기가 아까 밑에서 보았던 그 절벽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길고 널찍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왼쪽으로 피정의 집 같은 건물들이 절벽에 등을 대고 옆으로 죽 늘어서 있고, 오른쪽으로는 케이블카가 쇠줄에 매달려 절벽 아래 허공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성모상

▲몬세랏의 검은 성모
드디어 수도원에 도착. 문간 수사님과 이태리말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머물 방을 배정받았다. 침대와 세면대에다 조그만 책상과 의자 하나가 갖추어져 있는, 여느 수도원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손님방이었다. 창문을 열어젖히자 좀 전에 지나온 성당 앞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제 막 몬세랏의 '검은 성모상'을 참배하고 나온 순례객들이 성당을 배경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12세기에 수도원 근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는 이 성모상은 원래부터 검은색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초 그을음 때문에 검게 되었다고 하는데, 몬세랏의 성모님을 경배하러 오는 순례객들이 예나 지금이나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잠깐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면, 몬세랏을 방문하고 온 그 다음해 왜관 수도원에 불이 나서 보나벤뚜라 수사님 방에 모셔져 있던 성모상이 화재로 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왜관의 '검은 성모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몬세랏을 떠올린 기억이 난다.

저녁기도 전에 조르디가 우리를 성당으로 데리고 갔다. 아직 기도 종도 울리지 않았지만, 수도원 복도에는 벌써 성당으로 향해가는 노인 수사님들이 한두 분씩 보였다. 복도를 몇 번 꺾으니까 갑자기 눈앞에 탁 트인 공간이 들어왔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성당 천장 위치에서 성당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쪽에 있는 난간으로 다가서자 저 아래 앉아있는 신자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나도 서서히 눈을 들어올렸다. 구리빛의 거대한 둥근 반지 모양의 샹들리에가 제대 위를 깊고 무겁게 비추고 있었다.

원활한 전례 거행을 위해서인지 제대 주변으로 전례 공간도 충분하게 확보되어 있고,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미사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수도자들의 기도석이 어미 새 마냥 제대를 가슴에 품고 있는 구조였다. 성당 천장 좌우로 길게 뻗어 있는 복도 벽을 따라 꾸꿀라가 옷걸이에 줄줄이 걸려 있었다. 왜관에서는 종신서원식할 때 한 번 입는 옷인데 여기서는 공동기도하러 갈 때 스카풀라 위에 걸치고 가서 기도한다. 스타씨오(Statio) 복도가 제대 뒤쪽으로 나있어서 성당에 입당할 때는 제대 뒤 가려진 벽에서 양 옆으로 둘씩 톡톡 튀어나오는 식이었는데, 마치 배우들이 '짠' 하고 무대에 등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통

▲수도원 성당
저녁식사 하러 식당에 갔을 때는 아예 무대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손님 담당 수사님이 나와 윤 신부님을 포함한 다른 손님들을 마치 전례 때 예절지기가 주교님을 안내하듯 인도해서는 아빠스 식탁 주변으로 동그랗게 한사람씩 앉혔다. 고요함 속에 낭랑하게 독서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 명의 식복사들이 차분하고 깊이 있는 동작으로 식탁 봉사를 하였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접시에 담은 파스타를 다 먹고 포크를 내려놓고 조용히 앉아 있으니, 뒤에서 어느 식복사의 왼손이 내 왼쪽으로 살며시 들어오면서 빈 그릇을 집어 내가고 동시에 내 오른쪽으로는 그의 오른손이 두 번째 본식을 먹을 새로운 접시를 살며시 놓고 사라졌다. 봉사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곧바로 공동휴게 시간이었다. 조르디를 따라 공동휴게실에 가니 수사님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빠스님께 인사를 드리니, 대번에 '왜관'에서 왔냐고 물으시면서, 우리 시몬 아빠스님과 안셀모 수도원에서 같이 공부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여러 수사님들이 차례차례 다가오셔서는 자기는 왜관의 누구하고 같이 공부했는데 그 수사는 잘 있냐며 한 사람 한 사람 안부를 물어보셨다. 그 끝줄에 가니 인 끌레멘스 신부와 오 아브라함 신부도 여기서 성탄을 지낸 적이 있다며 지금 잘 지내는지 물어보았다. 아마도 또 내 후배 수사가 언젠가 몬세랏을 방문하게 되면 빠코미오도 여기 왔었는데,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볼 날이 올 것 같다.

휴게 시간 끝에 가니 아빠스님이 작은 종을 '딸랑딸랑' 흔들었다. 그러자 수사님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신문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모두 아빠스님 주위로 모여 앉았다. 뭔가 큰 일이 일어났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일상적인 공지사항 전달 시간 같은 것이었다. 아빠스님께서는 나와 윤 신부님이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나는 왜관에서 왔고 예전에 왜관에서 누가 여기 왔었고, 등등 우리 소개를 한참 길게 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 이야기 다음으로는 수도원 형제들의 특기할 만한 일상사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들어 알려주셨다. 예를 들어, 누구는 지금 어디로 휴가를 갔고, 또 누구는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괜찮지만 앞으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제 성삼일이 시작되는데 특히 누구누구가 수고가 많을 거라는 등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다들 조용히 그러나 진지하게 아빠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지면이 짧아 다 적지 못하지만, 역사면 역사, 영성이면 영성, 문화 예술이면 문화 예술, 어느 하나 눈부시지 않은 데가 없는 이 대단한 수도원의 진짜 숨은 힘은 바로 이러한 '정보의 소통'에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이 들었다.

밖에서 보면 갖출 것 다 갖추고 영예란 영예는 다 누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안에서 살아보면 그 옛날 이집트 사막의 수도자들 같은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광야의 수도원. 바로 이 몬세랏 수도원에서 성삼일을 보내느라 바르셀로나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지만, 부활대축일 낮 미사까지 마치고 짐을 챙겨 산을 내려올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기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함께 식탁에 앉아 먹고 마셨음이 분명했다.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간하는 <분도>지의 편집진과 상의하여 연재하는 글입니다.

글, 사진제공 최종근 파코미오 신부 (성베네딕도수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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