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7월 13일자 2607호 <가톨릭신문>과 978호 <평화신문>이다.

평화신문 19면(좌)/가톨릭신문 21면(우)

‘정교분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필요할 때 잘도 사용하는 정치인들이 종교지도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부터 국무총리와 장차관들, 국회의원과 그것을 꿈꾸는 후보들까지 그들이 종교인을 찾는 이유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하나 있다. 기왕 만날 것 가능하면 ‘힘센 자’를 찾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영향력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남의 조직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것도 다반사다. 더 가관은 그들의 지목을 받은 사람이 자기가 만나야 할 대상이 아닌데도 굳이 손사래 치지 않는 데 있다. 성직자도 예외는 아니다.

시국이 어수선하여 나라의 재상인 국무총리가 여기저기를 다녔다. 천주교회에도 다녀간 모양이다. <가톨릭신문>은 21면에 ‘염수정 주교, 한승수 총리 접견’이 실렸고, <평화신문>도 19면에 역시 ‘염수정 주교, 한승수 총리 예방 받아’를 부제로 뽑았다.

‣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지난 6월 16일 신임 교황대사가 부임했다. 그때 인천공항에서 그를 영접한 사람은 주교회의 부의장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를 비롯해 배영호(주교회의 사무처장)ㆍ최원오(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 등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공항이 소재한 인천교구나 대사관 소재의 서울교구 관계자가 아니라 주교회의 관계자들이 나왔다는 말이다. 강우일 주교가 소임지인 제주에서 인천까지 교황대사를 마중 나온 것이 어떤 자격으로 나온 것인지는 짐작들 할 것이다.

주교회의 누리집(www.cbck.or.kr)에는 주교회의가 ‘교회의 다양한 공동 관심사들에 대처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수단으로서 특수한 사목적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또한 교회법 제447조에는 “주교회의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선익을 더욱 증대시키기 위하여 해당 지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한 어떤 사목 임무를 특히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적절히 적응시킨 사도직의 형태와 방법으로 법 규범에 따라 공동으로 수행하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의 주교들의 회합이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한국 교회 전체의 공동선이 증진되도록 사목 임무를 공동으로 조정하여 수행하기 위하여 사도좌의 승인 아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라는 명칭으로 국가에 등록된) 법인으로 설립된 한국 고위 성직계의 회합이다.(한국 주교회의 정관 제1조; 교회법 제447조, 제449조 참조) 3년 임기로 선출되는 현재의 의장은 장 익 주교(춘천교구장)이며 주교회의 의장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또한 의장은 주교회의 사무처의 총재이다.

이와 함께 주교회의 의장 지휘와 감독 아래 사무처의 모든 업무를 운영하며 전국위원회들과 전국기구들의 총무 회의를 소집하여 상호 연대와 협력을 조장하는 일과 주교회의 결정 사항을 실시하고자 각 교구의 실무자들을 소집하는 권한을 지닌 사무처장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그곳이 한국천주교회의 대표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 한국천주교회 대표가 누구인가?



흔히 법인회사의 대표이사나 단체의 대표는 막강권력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대(大)가 아니라 조직을 대신하는 대(代)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대표의 권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세상 어느 조직보다도 위계질서가 분명한 조직이다. 교계제도와 대표성은 다른 것이다. 정부형태로 쳐서 내각책임제의 나라도 국가원수가 별도로 있듯이 한국천주교회 대표는 당연히 ‘힘 있는’ 추기경이 아니라 주교회의 의장이며 실무대표는 서울교구의 사무처장이 아니라 주교회의 사무처장 즉 CCK의 사무총장이다.

그런데 그런 질서가 근래에 들어 혼란스럽다. 서울교구의 온당치 못한 처신 때문이다. 대통령이 서울교구장과 청와대에서 점심을 먹은 후 비공개 회담을 하고(6월 9일) -추기경이 대동한 사람들은 주교회의 사람이 아니라 서울교구 관계자들이다-, 국무총리는 교구장이 아닌 서울교구 보좌주교를 만났으며 같은 날 명동성당 주임신부와는 비공개 면담(7월 3일)을 했다.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가? 무슨 자격으로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을 만나는가?
 

청와대에서 서울교구로 초청장이 오더라도 그것이 정부의 표현대로 ‘천주교 지도자들’을 초청한 것이라면 당연히 주교회의 의장이 가야함이 마땅하다. 그것이 대표성이다. 또한 국무총리가 명동으로 불시에 올리는 없을 것이며 온다고 연락이 왔더라도 명동이 아닌 중곡동(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으로 안내했어야 온당하다. 더욱이 국무총리는 천주교인이며 명동본당 소속이다.(2008.3.3 가톨릭신문) 그렇다면 그는 천주교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위계질서를 무시할 수 있는가? 명동성당 주임신부를 만난 것도 그가 개인 신자의 면담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당일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국무총리실 사무차장, 국무총리실 공보실장을 대동한 것으로 된 보도로 보아 공적인 일로 온 것이 틀림없다. 공과 사를 국무총리가 근무시간에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아니한 공적인 면담이었다면 단위본당의 주임신부가 국무총리를 비공개 면담한 것은 더욱더 적절치 못한 처사이다.

‘종교지도자’를 면담하는데 서울교구를 찾는 정치인들은 현실적인 계산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만남’을 따끔히 지적해야 할 교회신문의 단순한 동정보도는 직무유기이다. 더욱이 신기한 것은 거듭되는 위계질서 혼란에도 주교회의 의장단과 사무처가 이의를 제기했다는 보도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잘못도 적지 않다. 

김유철 200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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