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수도원 기행-7]

▲ 수도원 본관.

어느새 기차는 대학으로 유명한 캠브리지를 지나고 있다. 나는 여름방학 동안 지낼, 영국의 요크 지방에 있는 암플포쓰 수도원으로 가고 있는 길이다. 수도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거들기 위해 잠시 귀국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래도 영어가 많이 필요할 듯싶었다. 로마에서 같이 지내는 파코미오 신부는 아일랜드의 글렌스탈 수도원에서 지내기로 하였고, 나는 베네딕도회 영국 연합회의 한 수도원인 암플포쓰 수도원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기차가 어느 역에 잠시 멈추더니 다른 기차로 갈아타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래서 모든 승객이 내려서 다른 기차로 향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다시 돌아가서 방금 내린 기차를 타라고 또 방송이 나온다. 모두 양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황당하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덕분에 옆자리에 있던 젊은 영국 신사와 말을 하게 되었다. 자신은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게 영국의 이미지가 손상된 것을 만회하려는지 ‘영국 기차가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라고 내게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전공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영국 날씨 이야기로 옮겨갔다. 내가 물었다. “영국에서는 하루에 몇 번 정도 날씨가 바뀌죠?” “아니 이 친구, 지금 영국식으로 농담을 하네! 그야 딱 십 분만 기다려 보면 영국 날씨를 알 수 있지!” 그러면서 계속 날씨에 대한 농담을 한다. 2001년에 두 달 동안 런던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 영국 신사의 독특한 영어 악센트를 들으니 영국에 와 있는 것을 실감했다.

▲ 요크 시내.

내 옆 방이 아빠스 방

영국 영어의 악센트(미국식으로는 액센트인가!)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요크York 역에 내려서도 계속되었다. 역에 내려 아무리 찾아봐도 수도원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도, 버스 기사들에게 물어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도원으로 가는 버스는 역 앞이 아니고 요크 시내의 박물관 앞에 잠시 정차하고, 운행횟수도 많지 않은 노선이었다. 하지만 내 영어 발음도 이 혼돈에 한몫했음을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방문하려는 수도원의 마크 버틀린 신부도 예전에 왜관 수도원을 방문했었기 때문에 수도원 소식지에는 미국식으로 '앰플포스 수도원'이라고 표기한 것 같다. 그런데 영국식발음은 ‘암플포쓰’(Am-ple-for-th)인데, 한국 사람들에게 취약한 p와 f, l과 r, 마지막 th 발음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밋밋하게 발음을 해서는 안 되고, ‘암’(Am-)에 힘을 주고 발음을 해야 겨우 비슷하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겨우 차를 탔는데, 차는 요크 시내를 벗어나서 40분이 넘게 시골길을 달리더니 수도원에 도착했다. 수도원은 언덕 위에 고풍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데, 앞쪽으로 잔디밭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다.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어 잠시 기다리니, 저녁기도를 마치고 수도자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님담당 신부가 나와 나를 본관과 떨어진 손님의 집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보통 방학 때 다른 수도원을 방문해 보면 손님집이 아니라 수도자들과 함께 생활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잠시 복잡한 생각들이 들었다.

열쇠도 주지 않았다. 어느 수도원엘 가도 공동 열쇠를 주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데 열쇠를 주지 않는 것이 좀 이상했다. 그런데 그런 의문은 곧 풀렸다. 손님의 집이나 수도원 본관에 들어갈 때, 기계식으로 작동하는 번호판에 비밀번호를 누르면 문이 열리도록 되어 있었다. 비밀번호 두 개만 알고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수도자들의 방도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었다. 놀랍게도 바로 내 옆방이 아빠스님의 방이었다. 주로 손님들이 이용하는 건물에 아빠스님의 방이 있었다.

▲ 바실 흄 추기경 흉상.

▲ 수도원 성당.

▲ 수도원 식당.

<해리포터>의 작가도 이 학교를 다녔다

영국 가톨릭교회와 수도회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534년 헨리 8세는 영국교회를 가톨릭교회에서 분리했고, 수도원의 해산과 교회 재산의 국유화, 많은 이들에 대한 처형이 이어졌다. 그 후 헨리 8세와 앤 볼린 사이에 태어난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된 후 그 박해는 더 심해졌다. 이를 피해 수도자들은 프랑스로 건너가서 1608년에 그곳에서 다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1789년) 이후에는 그곳에서도 박해와 재산 몰수 등이 잇달았다. 그래서 수도자들은 1802년과 1814년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의 암플포쓰 수도원, 다운사이드Downside 수도원 등이 그때 생겼다.

▲ 요크 민스터(옛 요크 주교좌성당).
현재 암플포쓰 수도원은 80명 정도의 수도자들이 있다. 영국 연합회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수도원이다. 이 중 50명 정도의 수도자가 본원에 살고 있고, 나머지 수도자들은 본당이나 분원에 살고 있다. 옥스포드 대학 안에도 공식적으로 이 수도원이 운영하는 교육기관(St Benet's Hall)이 있다.

수도원 안에는 유명한 기숙학교(boarding school)가 있다. 학생들은 600명 정도 되는데, 가톨릭의 ‘이튼 스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숙사들은 영국 성인들의 이름을 딴 열 개의 집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기숙사마다 ‘하우스 마스터’(House master)라는 책임자가 있고, 학교 책임자인 '헤드 마스터'(Head master)가 있었다. 헤드 마스터는 신부이며, 하우스 마스터는 평신도들과 신부들이 함께 맡고 있다.

학교 이름이 ‘암플포쓰 컬리지’(Ampleforth College)라고 해서 처음에는 대학인 줄 알았다. 그런데 13-18세의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언덕 하나를 넘으면 오래된 질링 성(Gilling castle) 인근에 3-13세의 아이들이 다니는 다른 학교(St Martin's Ampleforth)가 또 있다. 학교 건물들은 모두 돌로 된 오래된 건물들이다. <해리포터>를 쓴 작가 조앤 롤링은 작은 아버지가 이곳의 수도자였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새파란 잔디처럼 늘 푸름을 잃지 않는 수도생활

이 수도원과 학교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이 수도원 학교 출신으로 나중에 수도자로 입회하여 사제서품 후에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다가, 수도원의 아빠스(1963-1976)로 선출되었고, 나중에 웨스터민스터 대교구장(1976-1999)으로 임명되어 20년이 넘게 영국 가톨릭교회를 이끌며 성공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던 바실 흄(George Basil Hume) 추기경이다. 수도원 곳곳에 이분의 흉상이나, 이름을 딴 건물을 볼 수 있다.

나는 부제시절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두 달 동안 올리베따노 연합회 수도원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 연합회 수도원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국 특유의 구질구질한 날씨의 영향으로 수도원의 분위기도 좀 무겁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모두들 아주 친절하였고 내가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잘 배려해 주었다.

매일 오후 4시에 휴게실에서 가지는 티타임에 나를 초대해 주었다. 목수일을 하는 에드가 신부는 수영장에 함께 가자고 늘 아침마다 손님집 앞에 차를 대고 나를 기다렸다. 수도자들 중 유일한 아시아인인 말레이시아 출신의 콜룸바 수사와는 함께 농장일도 하고 휴일에 산보도 같이 가면서 지냈다. 이 수도원을 생각하면 잘 깎인 잔디밭이 수도원 앞에 푸르게 펼쳐진 모습이 떠오른다. 대략 2000에이커acre라고 하는데, 240만 평이 넘는 모양이다.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사용하는 여러 개의 잔디밭을 수도 없이 지나쳐도 여전히 수도원 경계 안이었다. 성당 안에서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와 수도자들의 합창이 어우러져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장엄한 전례를 연출한다. 영국은 베네딕도 성인의 전기를 쓰신 그레고리오 대교황이 596년에 아우구스티노와 동료 수도자들을 파견하면서 복음화가 시작되었고 수도생활도 시작되었다. 이들의 후예들이 여전히 이곳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비에 젖은 새파란 잔디처럼 늘 푸름을 잃지 않는 수도생활이 되기를 기도한다.

▲ 수도원 전경.

<참고할 만한 누리집>
http://www.ampleforth.org.uk  암플포쓰 수도원과 학교 소개(영국)
http://www.benedictines.org.uk  베네딕도회 영국 연합회
http://blasio.tistory.com  이 글에 다 싣지 못한 내용과 사진들을 실을 예정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간하는 <분도>지의 편집진과 상의하여 연재하는 글입니다.

글, 사진제공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 (성베네딕도수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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