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수도원 기행-5] 복음사가 루가의 무덤과 사도 마티아의 무덤이 있는 성당

어느 독일 소설가가 적었듯이 고향을 떠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몇 달 몇 년이 지나는 사이 타향이 고향이 되고, 고향이 타향이 되었다고 했든가! 올해 여름 방학을 맞아서는 석 달 동안 지낼 곳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는데 큰 감흥이 나지 않았다. 다른 수도원에 가더라도 늘 환영을 해 주지만, 1년 중 아홉 달을 보내는 익숙한 내 방을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 조금 짜증스럽기도 했다. 내가 너무 안주하고 있었던 것인가?

▲ 광장에서 본 성당 전경.

유서 깊은 도시 파도바

올 여름 방학을 보낼 수도원은 2008년에 한 달 동안 머물렀던 파도바의 산타 쥬스티나(Santa Giustina) 수도원이다. 그때는 이탈리아 말도 지금보다 서툴렀고,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두 달을 지낸 직후였기에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가 머리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일 주일 정도 말의 혼돈 속에 살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로하신 이곳 수사들이 이 지방 사투리로 계속 장난을 걸어오곤 했다.

파도바는 기원전에도 있었던 도시로 로마제국 시기의 원형 경기장 흔적도 남아 있는 유서깊은 도시이다. 1222년에 설립된 파도바 대학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대학이다. 이곳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강의를 하기도 했다. 교회 내 인물로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로베르트 벨라르미노, 대 알베르토 성인 등이 이곳에서 수학했었다. 지금도 파도바 도심을 흐르는 강 주변과 도시 곳곳에 대학 건물들이 흩어져 있고, 젊은이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다.

▲ 성 루가 복음사가 무덤.

여기 루카 복음사가의 무덤이 있네요!

산타 쥬스티나(성녀 유스티나) 수도원이라고 하면 여자 수도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베네딕도회 수비아꼬 연합회에 속한 남자 수도원이다. 성당의 중앙 제대에 유스티나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수도원의 이름도 그렇게 부른다. 수도원 성당 앞에는 프라토 델라 발레Prato della valle라는 멋진 광장이 펼쳐져 있다. 이 광장에서 큰 성당을 보고 들어오면 특별한 장식 없이 덩그런히 놓인 공간으로 되어 있는 성당 내부를 만나게 된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바닥에는 규모가 큰 대성당들의 크기를 베드로 대성전과 비교하여 표시해 놓았는데, 산타 쥬스티나 수도원 성당은 여섯 번째 큰 성당으로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성당뿐만 아니라 수도원 건물도 무척 크다. 수도원 일부 건물들은 군부대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통괄하는 군사령부라고 한다.

수도원 성당 안에는 성녀 유스티나의 유해만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사가 루가의 무덤과 사도 마티아의 무덤, 파도바의 초대주교인 성 프로스도치모와 제 2대 주교인 성 막시모의 유해와 여러 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러한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수도원 문장도 박해의 칼과, 승리의 월계수 가지, 천상 영광의 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8년에 루가 사도의 무덤을 열어 고고학적인 조사를 하였다. 그때 우리 수도원의 인 끌레멘스 신부도 이 수도원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발굴조사 보고서에 증인으로 이름이 올라져 있었다.

이런 위대한 성인들을 모신 성당이지만, 인근의 다른 두 성당 때문에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는 듯 보였다. 왜냐하면 파도바에는 그 유명한 안토니오 성인의 유해를 모신 성당이 있고, 카푸친 프란치스코 회원인 성 레오폴드를 모신 성당이 바로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들 두 성당에 들어가 보면 장식도 아주 화려할 뿐만 아니라, 많은 신자들의 기도가 이루어졌음을 기념하는 장식물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아마 이들 성인들이 신자들의 일상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아름다운 광장에 인접한 큰 성당을 안토니오 대성당이라고 오해하고 들어오는 분들이 계신다. 이들이 나타내는 일반적인 반응들은, "여기가 안토니오 성당이 아니었어요?", "여기 루가 사도의 무덤이 있네요? 진짜 루가 사도예요?", "아니, 마티아 사도, 유스티나 성녀!……." 이런 성인들을 모시고 이곳 수도자들은 언제나 묵묵히 기도하고, 일하면서 살고 계신다.

▲ 산타 쥬스티나 수도원 성당.
▲ 도서관.

정겨운 수도가족

로마에 있는 성 안셀모 대학이 교회 안에서 '전례학'의 중심지라면, 이곳 산타 쥬스티나 수도원 안에 있는 ‘전례사목연구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탈리아 전례의 발전과 사목적 적용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몇몇의 수도자들이 일하는 도서관은 공공 도서관으로 지정되어 매년 국가로부터 3억 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도원 성당은 본당의 역할도 하고 있어서 여러 사제들이 봉사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이콘을 그리는 작업장, 작업량이 예전처럼 많지 않지만 양피지나 고서적을 복원하고 제본하는 작업장,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손님들을 위한 집 운영 등을 하고 있었다.

성당 안에서는 서너 분의 수도자들을 항상 볼 수 있다. 아침기도 전부터 이미 그 큰 성당의 청소를 시작해서, 의자 배치, 꽃꽂이 등을 전담하고 있는 연세 많은 쥬세뻬 수사. 이 분은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는 성당 기둥의 의자에 앉아 기도를 바치곤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알렉산드로 신부는 성당 안에서 하루 종일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듣는다. 휴가를 가지 않고 일 년 내내 성당에서 신자들을 안내하고, 고해성사를 주고, 쉬는 날 오후에는 늘 문간에서 일을 하는 안드레아 신부. 이 밖에도 여러 수도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박학다식해서 질문만 던지면 사건들과 관련 연도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프란치스코 아빠스, 수도원 원장과 전례사목연구소 행정 책임을 맡으면서도 방문하는 손님들 책임과 전례 때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기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필립보 신부, 일주일치 시편 순서와 시편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면서, 내가 알지 못하고, 평생 다시 사용할 것 같지도 않은 이탈리아어 단어와 라틴어, 그리스어, 베네토 지방 사투리로 장난을 걸던 삐에뜨로 신부, 근 여든이 다 되어가는 연세에도 매일 미사복사와 식당의 식탁준비, 휴게시간에 수도자들이 마시는 포도주와 간식을 준비하던 알베르토 수사.

이 분들은 5,60년을 수도원 안에 정주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주님 안에서 살아오신 분들이셨다. 올 유월, 두 명의 수도자가 종신서원을 한 이후, 수련원은 텅텅 비게 되었다. 4,5명의 젊은 형제들이 있긴 하지만 새로운 성소자들이 입회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 필립보 원장 신부.
▲ 전례사목연구소 도서관.
▲ 꼬로소 그란데.

등대처럼 빛나는 기도

우리 수도원이나, 우리 연합회의 독일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몇 십 명의 수도자들이 성당의 가대에서 우렁차게 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에 어디를 가도 작은 수도 공동체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 저녁, 향을 피우며 밤기도(Vigil)를 바친다. 그렇게 위로 올라가며 성당을 채우는 향 연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온 세상에는 우리 베네딕도회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수많은 남녀 수도공동체들, 그리고 신자들이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를 바치고 있겠구나! 나도 그 중의 한 명으로 이 시간 기도하고 있고, 6,70명의 공동체가 바치는 기도뿐만 아니라, 2,3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에서 바치는 기도도 하느님 안에서는 큰 기도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지구 곳곳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등대처럼 그렇게 빛나겠구나. 이 수도원의 가대(수도자 기도석)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성서의 일화들이 조각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수많은 얼굴들이 의자에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

파도바는 물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베니스)에서 기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분이라면 아름다운 대학 도시의 모습과 유서 깊은 성인들의 도시를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이탈리아 할아버지 수사들의 정이 느껴지는 곳, 언제나 방문해도 환영받을 것 같은 곳, 이탈리아 말에 아주 잘 들어맞는 멜로디로 이탈리아 전례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해 준 곳.

방학이 시작되어 로마를 떠날 때 마음이 그렇게 편치 않았는데, 한 달 반을 머물고 수도원을 떠날려니 정든 분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떠나기 전날 한분 한분의 수사들과 깊은 포옹을 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오늘도 성 루가 사도의 무덤 주변에 모여 아름다운 멜로디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을 그 분들을 떠올리면 복잡한 많은 것들이 잊혀 지며 그 단순한 찬미에 나도 합쳐지는 듯하다.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간하는 <분도>지의 편집진과 상의하여 연재하는 글입니다.

글, 사진제공 박현동 블라시오 신부 (성베네딕도수도회 왜관수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