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4월 6일자 964호 <평화신문>과 2593호 <가톨릭신문>이다.

<미디어 흘겨보기>가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적으면 편한데 두 가지 주제를 만날 때는 난감하다. 주제의 연관성을 차치하더라도 글의 분량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어쩌랴 좀 더 나은 교회신문의 모습을 기대하며 이번 주도 두 가지 꼭지가 비평을 기다린다.
 


▶ 이주사목, 지혜로운 사목이 되기를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홈페이지(http://www.cpcmi.or.kr)를 접속하면 한 눈에 그 활동 범위를 알 수 있다. 이주사목위원회는 현재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온 ‘국내 이주사목’과 한국인이 외국으로 나간 ‘해외교포사목’을 모두 아우르는 광범위한 일을 하고 있다. 이 번 주 교회신문은 전주교구 전북이주사목센터 축복식 및 개소식 기사를 <평화신문>은 2면 사설, 3면 4단 기사로 다루었고, <가톨릭신문>은 22면 3단으로 실었다. 더욱이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장을 맡고 있기에 그 기사가 값져보였다. 전주교구뿐만 아니라 그동안 교회언론이 관심을 가져왔던 각 교구의 이주사목이 다양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국내에는 이미 이주민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기사는 말하고 있다. 이주민 중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결혼, 학업 등 다양한 사유로 국내에 정착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들을 향한 교회의 활동은 특수 분야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교회신문이‘국내이주사목’과‘해외교포사목’을 연결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면 어떨까?

현재 한국천주교회는 세계 58개 국가에 교포사목이 나가있으며, 미국 한 나라만 하더라도 110명이 넘는 성직자가 상주하고 있다(해외한인성당 현황, 2008년 이주사목위원회). 그 중에는 영어권뿐만 아니라 아주 다양한 언어권에서 교포사목에 임하고 있다. 성직자가 교포사목의 소임을 마치고 돌아오면 언어권과 관련 있는‘국내이주사목’과 연계되어 일 할 수 있어야 바람직한 소임순환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선교사목’ 역시 포함된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공교롭게도 평화신문의 3면 기사 위에는 ‘신앙과 영어, 두 마리 토끼 잡아요’란 기사가 있다. 영어열풍의 탓인지 영어로 하는 미사, 성경읽기, 뮤지컬, 신앙캠프 등은 비장애인을 위한 손말(수화)공연을 보는 것 같아 느낌이 씁쓸하다. 한국인을 위한 영어프로그램도 때로 필요하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이주민들이, 특히 영어권 밖의 이주민들이 한국인과 섞이지 못하고 있다. 교회신문의 이주사목에 대한 독려를 당부한다. 하느님 사랑의 성사인 미사를 눈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리랑카 언어로도 들리게 하자. “블랑카, 좋아해요”

▶ 기사와 광고를 분리해야

교회신문의 광고를 몇 번 비평하였다. 그리고 간접광고에 대해서도 지적한 바 있다. 설마 편집자가 모를 까닭이야 없겠지만 몇 달째 연재되고 있는 한 꼭지를 짚고자 한다. <평화신문>의 22면에는 ‘대입은 전략이다’라는 기사가 있다. 기사? 말을 하고보니 이상하다. 광고? 이렇게 보기도 이상하다. 그런 것이 바로 ‘기사 광고’인지는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학업에 관한 것은 학생을 자녀로 둔 가정의 큰 관심사라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그래서 거의 매주 연재되는 해당 꼭지가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사는 기자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외부 전문자의 칼럼(?)이다. 연재하는 사람은 교육컨설팅 회사의 대표이며 그의 칼럼은 중앙일보, 조선일보, 세계일보등 8개 언론 매체에 실렸다고 그 회사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그러나 광고가 아닌 <평화신문> 독자를 위한 기고이거나 신문사가 청탁한 순수한 칼럼이라 할지라도 특정회사의‘천연색 로고’를 실어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심지어 영리가 목적인 <중앙일보>마저도 그의 칼럼 뒤에는 회사상호가 아닌 ‘교육자문위원’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혹시 광고였나요?

/김유철 200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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