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박병상] “재생가능 에너지 동네자급 실현해야”

독일 하노버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덥지 않다는 독일의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무더웠다. 생태 구호를 내건 덕분에 시민의 지지를 받아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 하노버는 곳곳에 생태주거단지를 세웠고, 연구팀에 동반할 기회를 얻어 답사를 갔을 적이다.

옥상마다 태양광 발전패널을 붙인 생태주거단지의 전망을 촬영하려 한 공동주택으로 들어갔더니 뜻밖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10여 명이 바싹 붙여 올라탄 뒤 문이 닫자, 힘겹게 오르던 엘리베이터가 그만 1층과 2층 사이에 멈추는 게 아닌가. 기술자가 찾아와 문을 열어줄 때까지 한 시간여, 찜통 같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땀을 줄줄 흘리던 일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스트레스가 치밀었고, 농담도 시선도 조심스러워졌다.

지난 9월 15일 아이와 아파트를 나선 주부, 백화점에서 물건을 한 아름 들었던 손님들은 전등과 에어컨이 갑자기 꺼지며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심정이었을까. 긴급 연락했으니 금방 빠져나오리라 생각했던 시간이 지연되면서 찌는 더위에 지치며 몹시 짜증스러웠을 텐데, 한국전력의 느닷없는 정전으로 별안간 멈춰선 엘리베이터가 전국에 수백 대는 넘었으리라. 어중간한 위치에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허리를 구부리며 탈출하던 이들은 9월 중순의 늦더위도 시원하게 느낄 정도로 잠시 상쾌했을지 모르지만, 놀라서 우는 아기를 달랬던 엄마도, 아이 울음에 지친 이웃도, 구매한 물건을 들고 밀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땀과 화장품 냄새를 피할 수 없었던 손님들도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게다.

기업 프렌들리 대통령까지 “분통 터진다!”며 무단 단전의 피해를 본 시민의 분노를 대변하려 나섰는데, 청와대는 전력거래소의 매뉴얼에 있는 정전의 대상은 물론 아니었을 터. 비상시 전력 중단의 매뉴얼에 우선적으로 포함된 아파트와 상가와 중소기업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온갖 게시판을 보며 수술에 몰두하던 의사는 물론이고, 수술실 밖에서 가슴을 졸이던 보호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대형 병원이야 비상 발전기의 가동으로 이내 수습했을지 모르지만 아파트 상가의 병·의원은 천만다행으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예고 없는 단전으로 수족관의 활어들이 죽어나간 횟집과 예쁘게 진열한 아이스크림을 맥없이 녹여야 했던 커피전문점마다 손해배상 집단 청구를 생각했겠지.

사건이 얼버무려진 뒤에도 한참 동안 언론들은 정부와 관계자들의 안일한 태도를 힐난했다. 가을 무더위가 이어지리라는 기상대의 예보를 무시하고 뒷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발전소를 동시에 중단시킨 무모함을 질타한 언론은 전력 공급을 차단하는데 허둥댄 나머지 사전예고를 생략한 당국의 오만함에 혀를 내두르며 단전 매뉴얼이 구식이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상주인원이 많은 중소기업과 주택과 상가보다 전력 소비가 많은 대형 공장부터 차단해야 옳다는 거였다. 아무렴. 게다가 그런 공장들은 비상 발전기를 비치했을 게 아닌가. 전문가들도 발전소 정비와 전력 비상 중단에 대한 제자백가의 대책을 내놓았다. 재발방지를 염두에 둔 당연한 현상인데,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다.

무단 단전으로 황당한 손실을 보았던 상가들이 다음날에도 문 열어놓고 에어컨을 펑펑 껴놓은 현장을 고발하는 언론들은 우리나라의 전력 요금이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핵발전소 사고를 당한 일본보다 저렴해 과소비를 부추겼다는 점은 지적했지만 우리나라는 다양한 송배전 회사가 관여하는 그들과 달리 단일 기업인 전력거래소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전혀 부각하지 않았다.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단일 기업의 지배를 받다 보니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비자는 물론이고 각계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이 전달되지 않아, 이번 사고에 대한 대처에 경직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은 언론은 지난 9월 15일과 같이 무단으로 단전해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발전소도, 전력예비율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점도 보도하지 않았다. 시민의 처지에서 심층 취재하기보다 정부의 보도자료에 익숙한 탓일지 모른다.

전력당국에서 발간하는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전력예비율을 검토한 한 경제학자는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전력예비율 산정방식을 최근 《녹색평론》 119호에 고발했다. 유럽은 발전기 설계용량을 그대로 발전시설용량으로 사용하고 일본은 통상적으로 최대 전력량은 설계용량을 초과하므로 설계용량에 10퍼센트 이상을 가상해 발전시설용량을 산정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희한하게 설계용량에서 10퍼센트를 줄여 발전시설용량을 정한다는 게 아닌가. 그런 계산법으로 유럽의 전력예비율이 25퍼센트라면 일본은 37.5퍼센트가 되고, 우리나라는 12.5퍼센트에 그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름과 겨울철마다 언론 앞에서 전력예비율이 6퍼센트 이하로 내려간다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우리의 전력당국의 호들갑은 발전소를 더 지으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전에 예고하지 않은 점을 사죄한 전력당국은 불가항력으로 전기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는 걸 시민이 이해하길 바랐을 텐데, 전력예비율 위기를 내세우며 발전소 증설을 당연시했던 사례를 기억하는 많은 시민은 이번 사고를 기화로 핵발전소 증설을 획책하는 정책이 다시 튀어나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언론은 전기 과소비 풍조에 기여할 정도로 낮은 우리나라의 전력 요금을 탓했지만 우리나라의 전력 효율이 얼마나 낮은지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전력 요금 산정의 타당성 논의에서 소외된 소비자들은 국민소득이 두 배 가까이 높은 유럽보다 일인 당 사용하는 우리의 전력이 오히려 높다는 사실을 거의 모른다. 같은 일을 할 때 들어가는 전력이 일본과 유럽의 두세 배에 달하게 된 원인이 효율화보다 발전 설비 도입에 독점적으로 나서는 전력당국과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소비자를 소외시킨 전력정책의 필연적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화력발전, 후쿠시마 사태를 능가할 재앙을 충분히 예고하는 핵발전은 후손의 내일을 몹시 어둡게 만들 게 틀림없다. 사실 그런 발전 방식에 들어갈 원료 자원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전력 구조를 후손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핵발전을 속속 포기하는 유럽처럼, 우리는 지금과 차원이 다른 대안을 서둘러 모색하고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 전기 사용의 절약과 효율을 높이는 것 이상 중요한 건, 시급히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데, 전력정부와 전력회사의 주장에 우리 언론들이 맥없이 주목하다 보니,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 가능한 전력자원을 동네와 가정에서 자급하면 에너지 과소비 풍조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모른다. 예고 없는 단전에 분노하며, 그저 추우면 전기난로, 더우면 에어컨을 켠다.

에너지 공급체계에 대한 소비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번 전력당국의 무단 단전과 그로 말미암은 고통은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급자 위주로 편성된 우리나라 전력 정책 개편의 당위성을 시민들이 인식해야 할 텐데, 대부분의 언론은 공허하기만 했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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