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세 명의 청년들과 함께 한 한국청년대회(KYD)

지난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약 일주일간 중국 교회의 청년 세 명과 신부님 두 분의 한국 방문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청년사목활동을 체험하기 위해서 제주도에서 열렸던 한국청년대회(KYD)에 참석하고, 다양한 청년단체들을 탐방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방문은 CCFD, 우리신학연구소 등의 주관으로, 바오로 6세 교황이 발표한 사회회칙 <민족들의 발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2006년 11월 ‘동아시아 교환 프로그램’을 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CCFD:기아 퇴치와 발전을 위한 가톨릭위원회/프랑스 국제연대단체)

한국에서 진행된 ‘동아시아 교환 프로그램’이 끝나고 지난 2007년 6월에는 한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회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중국 베이징, 허베이, 랴오닝 교구의 다양한 사회사목 단체들과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방문에 필자도 함께 참석하였다.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각 분야에서 중국 교회와 교류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보자는 마음을 모았고, 마침 8월 말 한국청년대회(KYD)가 있으니 청년대회를 계기로 중국 청년들을 초청해 보면 어떨까 하는 말을 누군가 꺼냈고, 모두들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던 것이다.

이번 방문은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마련된 것이지만, 동아시아 교회 공동체의 교류와 연대라는 것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른 만큼 결코 우연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은 8월 18일부터 25일까지의 일정에 동행하였던 필자의 동행기 형식으로, 한국청년대회와 인천/서울지역 청년단체탐방을 나누어 두 번에 걸쳐 쓰여 질 예정이다.

우발적으로 계획된 프로그램이었고, 한국청년대회까지의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준비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초청장’. 중국 참가자들의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초청장이 있어야 하는데, 교구 차원으로 초청장을 보내려 했던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무산되고, 우리신학연구소 이름으로 초청장을 보냈는데, 중국 대사관에서 연구소의 공식 확인 서류 등을 요구하는 바람에 비자 발급이 늦어졌다. 결국, 랴오닝 교구의 청년들은 한국청년대회 일정에 맞게 비자 발급을 받았지만, 한단 교구의 신부님들은 비자 발급이 늦어져, 한국청년대회에는 참석을 하지 못하고, 인천과 서울 청년단체 방문 프로그램만 참여하시게 되었다. 

왼쪽에서부터 짜오잉, 텅린, 송징, 필자


8월 18일(토) 제주 공항. 처음으로 열리는 한국청년대회(KYD)에 참가하기 위하여 3,000여명의 청년들이 전국에서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행사 준비를 맡은 제주교구 청년들은 반갑게 환영 인사를 나눈다.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랴오닝 교구 청년들을 기다린다. 한 명은 심양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동갑내기 친구이고, 나머지 두 명은 사진으로만 얼굴을 보았다. 심양 신학교 행정실에서 일한다는 동갑내기 친구 짜오잉(조영(赵颖) 31, 여)은 지난번 중국 방문 때에 심양 성당에서 청년모임과의 만남을 하던 때에, 성당에서 청년 기도모임을 진행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청년들 스스로 기도하고, 말씀 나누고,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짜오잉이 한국에 꼭 방문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 바램이 이루어 진 것이다.

드디어, 청년들이 국제선 출구 쪽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라며 우리나라 인사말을 먼저 건넨다. 손에는 한국어 회화책을 들고 제대로 발음을 했는지 확인을 하면서... 나도 능숙하지 않는 영어 솜씨로 인사를 하고, 소개를 했는데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내 발음이 안 좋았나 생각하고 당황을 해서 다시 천천히 이야기를 했지만 결과는 똑같다. 신청서에 영어가 가능하다고 표시되어 있어서 영어로 소통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기들은 그렇게 표시한 적이 없단다. 중간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중국어 통역을 구하지 못해 영어회화가 가능한 청년들과 같은 조로 편성될 수 있도록 했는데... 첫 만남은 무척 당황했스러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머지 참가단을 마저 소개하면, 텅린(등림(腾林), 22, 남)은 짜오잉과 같은 지역인 심양에서 가톨릭사회봉사센타(CCSC)라는 기관에서 청년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22살 어린 나이인데도 대학교를 다니며, 주말과 저녁시간에는 청년사목 활동을 하느라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송징(송정(宋晶), 24, 여)은 심양에서 1시간 거리인 무순이라는 지역에서 청년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낮에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고, 사진 찍는 것 좋아하고 꾸미는 것 좋아하는 귀여운 친구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

한국청년대회에서 전체가 모이는 자리는 첫날 환영미사와 마지막 날 미사와 축제뿐. 나머지 대부분의 일정은 제주도 각지의 본당으로 흩어져서 본당별/지역별 프로그램, 홈스테이 가정과 함께하는 시간 등으로 진행되었다. 환영 미사가 끝나면 마지막 날 행사 때에나 볼 수 있게 되어서, 의사소통도 충분히 되지 않는데, 이 청년들이 적응도 잘 못하고 불편하게 지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걱정들이 괜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본당에서 본당 신자분들과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해수욕장에 가서 모래찜질도 하고, 저녁에는 음악과 함께하는 전례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제주도 문화 탐방도 하다 보니 어느 새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인 짜오잉도 미사 형식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전례에 참여하였다. 미사 중 사도신경은 중국어로 봉독했지만, 성호경은 한국어로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며칠 동안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을 외우며 나에게 맞게 했는지 물어보곤 했다.

특히 밤에는 서로 다른 홈스테이 가정으로 짜오잉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만났을 때는, 밤에 먹었던 맥주 상이며, 새벽에 다녀왔다는 바닷가와 어시장 사진을 보여주며, 홈스테이 가정 아버님과 보냈던 시간이 즐거웠다고 자랑도 하였다. 마지막 날 미사와 축제 행사 때에는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중국 청년들은 한국 청년대회에서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한국 청년대회는 잘 진행되었다. 각 교구에서 청년담당 신부님들이 뜻을 모아 준비된 행사이기에 준비도 잘 되었고, 전국에서 3,000명의 청년들이 제주도로 모였으니 규모도 대단했다. 다양한 형식을 도입한 미사와 밝은 청년 성가와 율동은 중국 청년들뿐만 아니라 전체 참가자들에게 새로움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대회기간 내내 날씨도 좋았다. 다만 청년들의 자발성과 참여, 역동성을 표출하기 보다는, 그저 잘 짜여진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 날 오전에 우리들은 비행기 시간이 달라서 인천교구 참가단과 조금 일찍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다른 조에 속해있었던 텅린과 송징이 있는 버스를 찾아가서 우리가 먼저 공항으로 가야하니 작별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 때 주위에 있던 청년들이 모여들면서 헤어지기를 아쉬워했고, 인천에 올라가면 언제 또 볼 수 있는 지 물어보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서로 포옹을 하고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중국 청년들과 같은 조에 있으면서 도와주고 챙겨주었던 인천교구의 청년들 얼굴이 떠오른다. 며칠 사이에 처음 보는 낯선 중국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한가지였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김혁민 안셀모 (인천, 가톨릭청년연대 대표)  2007.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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