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로 가는 파첼리 추기경(나중에 교황 비오 12세가 된다.)을 둘러싼 관중들이 존경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추기경의 손에 입맞춤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 매우 경건하다. 관중들의 신에 대한 외경심과 추기경에 대한 존경심이 잘 드러나 있는 사진이다.

추기경이란 어떤 존재던가! 가톨릭에서 교황 다음 가는 성직자가 아니던가! 추기경은 전 세계의 교회운영에 있어서 교황의 주요 협조자로서 교황을 보필하고 교황의 자문에 응하는 자리다. 그런데 아돌프 히틀러와 파첼리 추기경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평판을 떨어뜨린다. 히틀러 치하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독일을 연합시키기 위해 가톨릭 행동대와 산업계 지도자들을 이끈 프란츠 폰 파펜은 그 공로로 독일 부수상에 임명된다. 히틀러는 폰 파펜을 우두머리로 하는 대표단을 로마에 파견하여 나치독일과 로마 교황청 사이의 정교조약 협상을 하게 한다.

교황 비오 11세는 독일 공사에게 '독일 정부가 이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히틀러)을 지도자로 가지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고 말하였다. 1933년 7월 20일에는, 로마 교황청에서 열린 성대한 기념식에서, 파첼리 추기경이 정교 조약에 서명하고, 파첼리는 폰 파펜에게 교황의 최고 훈장인 비오의 대십자장을 수여하였다. 정교조약을 맺음으로써 로마교황청은 히틀러에게 커다란 승리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세계로부터 최초의 도덕적 지원과 정통성을 베푼 셈이 되었다.

또 하나 파첼리 추기경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다. 예수회 소속의 역사학자 찰스 R. 갤러거는 교황 비오 12세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벗겨줄 하나의 사실을 발표했다. 갤러거는 이 보고서에서 교황청 국무원장이었던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이 고위급 외교관들과의 모임에서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그가 이교도이며 반종교적인 인물이라고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파첼리 추기경이 히틀러 정권에 대해 전혀 어떠한 정치적 타협의 여지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해설 일부)

종교지도자란 그리 녹록치 않은 자리입니다.
고위성직자들은 자기 백성을 잘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나치와 파시즘에 맞서 유다인들을 보호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해야할
과업을 지니고 있었지만, 교황청을 보호하기 위해 비오 교황(파첼리 추기경)은 나치와 정교협약을 맺고
나치의 학살에 대해 침묵을 지킵니다.

이 불명예와 비복음적 태도를 단지 '현실 때문에'라고 말한다면,
우린 참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다 버려야 얻을 생명이라는데...
다 주어야 만날 부활이라는데...
우리는 결정적인 국면에서 나의 신앙을 가늠하게 됩니다. 교회의 신실함을 판정받게 됩니다.

세상을 위해 교회를 쇄신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공의회를 열었던
농부 출신의 요한 23세 교종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복음적 신실성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교회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할 뜻이 있다고 했던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선교> 교황회칙처럼,
가진 것을 양보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가치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지난 촛불바람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침묵을 지키는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지도자들을 바라보며,
침을 삼키며 아픈 마음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갈망합니다.
애원하고 호소합니다. '나를 살려 달라고!'
'그이를 죽음에서 건져 달라'고 말입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단식을 보면서 이 호소는 더욱 간절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현 시국이 유신정권 때 같다고들 합니다.
10년전, 20년전도 아니고 4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포크레인 독재시대에
우리 교회가 갈 길을 열어주십사 주님께 기도합니다.

/한상봉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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