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티베트의 길 위에서 평화를 연다> 전시회 열어

 

 

구멍가게에 가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수를 헤아리며 열광하는 시민들을 금방 볼 수 있다. 밥상머리에 앉으면 “그거 어떻게 됐지?” 묻는 가장이 늘어났다. 오늘까지 메달 수를 따진다면 우리나라가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란다. 그러니 국민들이 텔레비전 앞을 떠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성화봉송이 한참일 때만 해도 사람들은 중국 유학생들의 과도한 행동에 짜증을 내고 티베트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도 잠시 젖어있었다. 그러나 세계의 정상들이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던 티베트 문제를 뒤로 하고 중국정부에 점수 따느라 경쟁을 벌이듯이 우리는 지나치게 올림픽에 과열되고 있다. 그러나 무릇 그리스도인이라면 빛의 이면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차일피일하다가 내일까지 진행되는 <티베트를 생각한다>는 전시회를 오늘에야 가보았다. ‘티베트의 친구들’이 주선해서 조계사 앞 골목 ‘평화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다. 중국정부의 티베트인에 대한 학살을 다룬 이 전시회는 공교롭게도 5월 18일에 부산에서 시작하여 이달 8월 22일부터는 전라도 광주에서 한 달 동안 열린다. 화요일 오후, 평화박물관에 도착하였으나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작품들을 모두 훑어보고서 마침 자리에 있던 전시책임자인 전미영씨(41세)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 동안 두 명의 젊은 여성과 두 명의 백인 남녀가 구경하고 돌아갔다. 간판도 작고 골목 안에 위치한 탓인지 관람객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번 파주 헤이리에서 전시할 때는 공간이 그래서인지 일부러 찾아온 사람도 많았는데 이번엔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닌 것 같다”고 전미영씨는 말한다.


전미영씨는 서울 민족미술인협회 대표를 맡고 있다는데, 지난 3월 17일부터 티베트의 참상을 접하고 처음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을 밝히기 시작한 ‘티베트의 친구들’의 생각에 공감해서 여러 명의 예술인들이 모였는데, 이들이 각자 가능한 방법으로 공감하는 내용을 전달하려다 보니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3월 10일 티베트의 라싸에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티베트 문화와 전통의 생존을 요구하며 시위가 일어났고, 이 시위가 중국군대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면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티베트의 친구들’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동안에도, 지금처럼 베이징 올림픽과 폭염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들뜬 이 시간에도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인사동 안국역 방향 들머리 빵집 앞에서 미니 벼룩시장도 열고 있다.

재야사학자인 이이화씨는 “올림픽은 세계인의 친선평화를 다지는 축제이다. 여기에 민족주의가 개재해서는 그 본질을 훼손하게 된다. 중국인들은 이 축제를 중화주의의 우월의식을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이를 계기로 소수민족의 권익을 보호하고 주변국가에 대한 이권침탈 또는 역사왜곡을 중단해 올림픽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요즘 분위기로 중국인들의 기고만장함은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지난 7월 29일자로 발표한 티베트의 친구들이 보낸 네 번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올림픽은 지금껏 세계인의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고, 앞으로도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환호의 물결로 뒤덮인 그 순간에야말로 우리는 티베트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올림픽을 위해 4년간 노력해 온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쥐는 순간에 느끼는 환희와 자유를, 60여 년 동안 티베트의 독립을 고대해 온 티베트인들도 똑같이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이들이 보내는 박수갈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세계인의 축제를 위해 인권이 말살된 티베트를 ‘잠시 잊겠다’는 얘기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가장 기뻐해야 하는 순간에 티베트를 떠올려주기를 바랬다. 전미영씨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쓰러지고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뭐든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움직인 것이 이번 전시라고 말이다. 올림픽의 와중에도 “티베트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들의 상황은 “우리가 정말 잘, 제대로 살고 있는지 묻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티베트의 친구들’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티베트 여행자들처럼 어떤 계기로든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그들과 언젠가 눈빛이라도 마주친 적이 있어서 그들이 겪는 상황이 ‘내것’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뭐든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누구든 불의를 보고 욱, 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처럼 행동할 것이고, 이런 사람들에겐 힘이 있다고 말한다.

<티베트를 생각한다>라는 전시회 도록 맨 앞에 있는 글은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유롭고자 한다면 타인의 억압된 자유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들은 티베트의 참상에 대해서 말하고 연대를 호소하고 있지만, 이것은 언젠가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앞질러 떠오른다. 아마 처음 평화박물관에 들어서려 할 때 유리문에 붙어있던 그 말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마틴 니묄러가 쓴 <전쟁책임 고백서>중에 나온 말이었다.


“나찌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상봉 20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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