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시국문화제-청계광장 촛불시위-YTN사옥까지 류은주씨 동행 취재

폭염과 폭우가 교차하고 있는 2008년 대한민국 여름을 서둘러 불러들인 것은 촛불,
민의를 사르는 촛불이 아니었을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촛불의 진화, 그것은
해묵은 이념 논쟁도, 보수와 진보의 대립각도 아닌 이 땅에 위에서 실현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힘겨운 달음박질일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며, 촛불의 함성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는 독자투고란에 촛불시위에 참여한 경험을 올려 주었던
류은주(닉네임 '생생')씨를 동행 취재하였다.

7월23일 오후 7시경 조계사 앞


생생 류은주씨와 조계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을 정하기 위해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했을 때, 그 휴대폰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독자투고란의 글에서 투영된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이날 낮부터 조금씩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있었다. 조계사 경내에서 오늘 시국문화제가 열린다. 그녀는 시국문화제에 참석했다가 청계천 광장으로 갈 모양이다. 조계사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니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온다. 우리는 이미 설명한 옷차림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시국법회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는 7시30분부터 '주권 재민과 정교분리 헌법정신 수호 시국문화제' 란 이름으로 진행됐다. 이날 문화제는 조계종 호계원장의 여는 말씀을 시작으로 가수들의 노래와 시낭송, 수배자 가족 인사, 자유 발언 등으로 이어졌다. 무대에 선 가수가 '희망가' 를 부르자 뒷편에 서 있던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무엇을 희망하는가?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의 물결 속에서 무엇을 희망하는가?

행사 중반 쯤 주최 측에서 초를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쪽으로 다가가 도울 일이 없는가 물어보고 주위에 촛불을 나눠 붙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 모습에서 구경꾼이 아닌 자발적 참여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8시 40분 경, 그녀는 조계사를 떠나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매일 저녁 그녀는 청계광장이나 광화문 등에 나가 촛불을 밝힌다고 한다.

“6월10일에 처음으로 촛불 시위에 참석했습니다. 그전에는 사실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에도, 그것을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에도... 그런데 촛불은 꺼지기는커녕 여러 날 계속되면서 점점 더 힘차게 타오르고 있었어요. 나의 관심사와는 정말 무관하게 말입니다. 그래서 6월10일에는 함께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고, 더군다나 내가 매일 청계광장을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녀 안에 잠자던 사회 정의를 향한 열망 일깨워

6월10일, 그녀가 처음으로 촛불시위에 나온 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았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진압대가 쏜 물대포. 물 탄환의 파편들은 그대로 그녀 가슴에 박혔고, 그녀 가슴 속에 잠자고 있던 정의를 흔들어 깨웠다. 그렇다. 그것은 사회 정의였다. 그녀를 흔들어 깨우고, 그녀를 붙들어 맨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회 정의를 향한 강한 열망이었다. 그녀는 그 실체에 점차 빠져들며 그날부터 매일 시위에 나온다고 했다.

종로 1가를 지나 광교 쪽으로 오니 전경차가 도로 곁에 줄을 서 있다. 청계광장에서 시청으로 통하는 길에는 이미 전경차가 시위대의 진출을 막기 위해 원천 봉쇄를 하고 있었다. 불빛과 마이크 소리가 눈과 귀를 자극했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하고 있다. 청계 광장에는 촛불을 든 사람, 풍선을 든 사람,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뒤섞여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며 촛불을 사르고 있었다.

“평일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요. 이미 이쪽저쪽 다 막아 놓았네요. 오늘도 가두행진을 하려나 봐요. 양 쪽이 부딪히겠어요.”

뒤늦게 청계 광장에 도착한 류은주씨.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군중들 사이를 지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몇 익숙한 얼굴들과 눈인사를 나누거나 시위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결의가 가득 차 보였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민주화를 향한 목마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른바 386세대죠. 저는 88학번입니다. 하지만 학생 때는 무서워서 시위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시위에 앞장서는 친구를 말리는 편이었어요. 수줍고 겁많던 대학생이었지만 공안 정국만은 안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시민들은 해내었고 어렵사리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을 떼며 이만큼 왔는데, 지금 그 암울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 느껴집니다. 촛불 시위에 투입된 경찰과 전경들의 시위 진압과 물대포를 보는 것은 차라리 공포였습니다. 다시 80년대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급박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구요. 그래서 시위에 참석하기 시작했어요. 이곳에서 너무 많은 것을 들어버렸고, 이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촛불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류은주씨. 대학에서는 도자기를 전공했고, 뒤늦게 심리학을 공부해 현재 미술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퇴근을 하면 곧바로 청계 광장으로 향한다. 직장 동료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매일 촛불 시위에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매일 나갈 것이다.” 라고. 혹시 자신이 촛불 시위에 참여함으로 직장 내에서 물의를 일으키거나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그녀의 행동을 인정해 주었고, 그녀는 퇴근하자마자 달려온다. 일산에서 청계천 광장까지 한달음에.


촛불은 사회적 약자들의 함성, 함께 귀기울여야

“참 다양한 사람들이 청계 광장에 모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의식이 깨어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 나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결국 이곳에도 사회의 약자들이 모이고 있어요. 어둠에 갇혀 있는, 상처받고 고통받고 아파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촛불 시위가 처음에는 분명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했습니다만, 이제는 아닙니다. 줄줄이 꿰어져 나오는 이명박 정부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정책들, 그것들을 점검해 보자는 것이지요. 이 정권이 앞으로 펼쳐나가겠다는 정책들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드러났습니다만 1%의 고소영, 강부자들을 위한 잔치가 아닙니까?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물론 이미 YTN을 점령했고, MBC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터넷 댓글까지 추적한다니 인터넷까지 장악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녀는 “우리 촛불을 끄려는 움직임이 바로 가까이에서 느껴진다”고 말했다. KBS 천막 강제철거, 민주노총 간부 영장발부 등을 보면서 그녀는 또 한번 쉽지 않은 싸움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더더욱 촛불 시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합법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해도 쉽지 않은 싸움이기에 더욱 신중하고 옳아야 하며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그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촛불 현실의 어둠이 마음을 무겁게 한단다.

“어제부터 새로운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가 아니라 저들은 누구인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쫒기고 있는 저들은 누구인가. 얼굴이 까맣게 되고 목소리가 쉬어가는 저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와 촛불을 밝히고 있는 저들은 누구인가... 그것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류은주씨는 현재 촛불 시위는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패한 촛불 시위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실체를 파헤친 자랑스런 촛불이라고 말한다.

"10년, 20년 후 우리의 촛불은 어떻게 평가될까요? 시민들의 새로운 참여, 과연 진일보한 민주주의의 의견 수렴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중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이 문화의 힘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비가 또 후두둑 떨어진다. 그녀는 우의의 모자를 여미며 목청 높여 노래 부른다. 수요일 청계 광장의 시위가 끝나고 군중들은 YTN 앞으로 행진하려고 진열을 가다듬었다.

“결국 종교는 시민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방위벽을 뚫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녀도 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청 쪽으로 나가는 길은 봉쇄됐다. 깃발들이 한동안 방어벽을 뚫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밀려났다를 반복했다. 그녀는 나의 손을 이끌고 반대편으로 방향을 바꿔 청계 광장을 빠져나왔다. 봉쇄를 뚫기 힘들 것이며, 아마도 삼삼오오 YTN 앞으로 갈 것이라고 귀뜸해 준다.

우리는 손에 촛불을 든 채 시청을 지나 남대문 쪽으로 걸었다. 늦은 밤 비오는 거리는 평온했고 시청 광장은 적막하리만큼 조용했다. 텅빈 시청 앞 광장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현장 모습이 교차되면서 상념이 오갔다.


“시국 미사는 실망만 안겨줬어요. 정의구현사제단이 '짠-' 하고 나타났다 성명서 하나 달랑 내고 사라져버려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 시국미사도 마찬가지였어요. 두 번 시국미사에 갔습니다만 실망만 하고 되돌아왔어요, 차라리 촛불 시위 현장에 나가 촛불을 밝히며 대화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어요. 결국 종교(가톨릭)는 시민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즈음 류은주씨는 촛불 시위의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며 많은 갈등을 했다고 한다. 차츰 지쳐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도 꼬리를 내리는가 싶은 생각에 회의도 들었다. 촛불도 사그라드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오롯이 자신의 몫임을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참여했고, 나의 촛불 시위 지속 시간은 내가 결정한다.”라고 마음을 정한 후 그녀는 실패한 촛불 시위 현장을 여전히 지키는 인간 군상들에 더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심리 상담을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은 가장 뜨거운 삶이고, 가장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올해 마흔한 살, 불혹이다. 누구나 삶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만 류은주씨도 자신이 선택했던 길에서 좌절을 맛보았다. 한 때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단다. 자기 인생이 꼬이고 있다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하느님은 내게 최고를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사회에서 무슨 옷을 입든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든지 틀림없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거렸어요. 하느님 안의 관계,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미술 치료 공부를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위해 교회 한 목소리 내야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담담하게 자기의 지난 인생을 얘기해 주었다. 절망과 희망이 그녀 인생에서 그렇게 교차하여 지나갔다. 어쩌면 그녀는 여전히 희망 건지기를 계속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한 싸움이 될게 빤한 이 촛불 시위에서조차도 말이다. 어쩌면 그것은 많은 시민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희망이럴지도 모르겠다. 문득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그것을 위해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내던 시절이 떠오르며 아득하게 목이 메여온다. 정의로운 사회, 그날은 언제나 올까?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 민주 역사 속에 하나의 기류가 돼야 합니다.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또 하나의 예수가 돼야 합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위해 교회가 투신해야 합니다.”

그녀는 촛불 시위에 침묵하고 있는 교회를 향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YTN 앞에서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켠에 우산을 받쳐들고 서서 자유 발언을 묵묵히 듣고 있다. 오늘 그녀는 조계사에서부터 촛불을 밝히기 시작해 청계광장과 YTN 사옥 앞까지 쉼없이 걸어 촛불을 밝혀 놓았다.

인식의 변화. 촛불은 그녀의 인식을 변화시켰고,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6.29 선언을 끌어냈던 그 옛날 6월 항쟁 이후 진화된 이 사회의 새로운 상식들, 음식과 건강과 생태와 삶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들이 촛불로 모이고 있다. 아울러 촛불은 그녀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을 말해준다. 촛불은 그녀에게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말라는 예수님을 말해준다.

“촛불 현장은 나를 참 많이 받아 준 곳입니다. 촛불 집회에 왜 나가느냐며 괜히 나서지 말고 적당히 중간에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속삭임도 있었지만, 이제는 멈출 수 없습니다. 아니 멈춰서는 안됩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여기 이 자리에 왔듯이, 내일도 오늘처럼 촛불 집회에 나올 것입니다. 광장의 촛불이 모두 꺼진다해도 나는 직장에서 촛불을 밝히며, 이 시대의 징표를 이어가겠습니다.”

이미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됐고, 촛불 시위는 무력감만 더해가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멈춰서는 안된다고 절규하는듯 했다.

YTN 앞 시위는 마무리 단계다. 이미 시각은 열한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빗줄기가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또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촛불의 내일을. 그녀와 나는 7월26일 시국미사와 시국토론회에 함께 참여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대도시에서 곤궁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도 인간답게 살 권리는 분명 있다. 하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현실 앞에서 촛불은 분명하게 외치고 있다. 자본주의에 함몰된 그 사회 구조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자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길을 만들어 보자고. 하지만 지금은 청계 광장과 청와대 사이에 소통하지 못하는 거대한 강이 가로막고 있다. 촛불이 과연 그 강줄기를 되돌릴 수 있을까? 빗길을 걸으며 나는 다음번 류은주씨 동행 취재에서는 철저하게 그녀 편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겠다고 생각한다. < 계속 >

/ 상인숙 200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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