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 김도율 신부 작품전 열어

7월 9일부터 14일까지 대백프라자 갤러리에서 대구대교구 성주본당 주임사제인 김도율 요셉 신부의 전시회가 있었다. 성주본당 교육관 건립을 마련하여 열린 행사이다.

대백프라자 갤러리에 도착해서 보니까, 전시회 현수막이 걸려 있어 행사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작가인 김도율 신부는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서 안내하는 분에게 인사를 하고 인터뷰 요청과 사진촬영을 알려주었다. 전시회 사진촬영은 저작권 문제로 하지 못했으나 인터뷰는 김도율 신부가 잠깐 나갔으니 올 때 요청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림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새 그림들이 많이 보였다. 자유, 부활이 이 전시회의 주요한 주제인 것 같다. 입구에는 김남주 시인의 자유의 일부분이 씌여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그림들을 보고 있는데 김도율 신부가 들어왔다. 큰 키에 환하게 웃고 있는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사야 된다는 팸플릿과 엽서를 선물로 받았다. 시골본당 사제라서 그런지 농부의 순박한 웃음이 떠올랐다. 인자한 웃음과 따뜻한 눈이었다. 의사소통 문제로 글로 인터뷰를 했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통신원: 어떻게 그림을 그리셨는지요? 언제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지셨는지요?
김신부: 중학교 1학년 때 미술 선생님께서 소질이 있다고 하시면서 미술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통신원: 사제가 되시면서 바쁘실 텐데 어떻게 많은 그림을 그리셨어요?
김신부: 원래 벽화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많이 하는데 틈틈이 작품을 그립니다.
통신원: 둘러보니까 새를 많이 그리셨는데, 새를 통해 드러내시고자 하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김신부: 새는 하늘, 물, 땅을 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의미에서 새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통신원: 잭슨 폴록의 영향을 받은 그림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해하기 어렵겠는데요!
김신부: 내 마음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데 잭슨 폴록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할 수 없겠지요.
통신원: 사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어떤 것입니까?
김신부: 하느님께 '부끄럽지 않은 떳떳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신원: '예수님의 얼굴'(작품이름)들을 볼 때 신부님의 이상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신부: 맞습니다. 그리고 저하고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통신원: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그림 전시회의 취지가 성주본당 교육관 건립을 위한 것입니다. 성주본당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네티즌 독자들에게 홍보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김신부: 성주성당 교육관을 건립하기 위한 전시회입니다. 성주성당은 인구 2000명의 작은 농촌성당인데 60년의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인터넷에서 '성주성당'을 검색하면 예쁜 성당을 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 교육관이 지어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인터뷰를 마치고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도율 요셉 신부는 이 쓰기 인터뷰가 오히려 편했다고 했다. 간단히 악수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배웅을 해주었다.


물 같은 그리스도인

한 스승이 제자들 앞에 큰 장독을 가져다 놓고는 아무 말 없이 자갈로 독을 채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에 자갈이 가득 찼을 때 스승은 제자들에게 물었 습니다. "독이 가득 찼느냐?" 제자들은 "예."하고 대답 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모래를 가져다가 독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의 모래가 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래가 독 위로 보일 정도가 되자 스승이 물었습니다. "이제, 독이 가득 찼느냐?" 그러자 제자들은 또 “예."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스승은 물을 길어다가 독에 부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물이 독에 들어갔습니다. 독 위로 물이 넘치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이제, 가득 찼다."

어울리지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이 비유가 평신도 주일에 생각이 납니다.
평신도는 ‘세상 깊숙이 사는 사람’ 입니다. 그래서 성직자와 수도자가 가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리고 가장 가까운 방법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세상 깊숙한 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고, 하느님 나라를 보여 주며,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물 같은 존재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의 평신도 교령에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은 그 활동으로 현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증언하며 인간 구원에 봉사한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속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신도의 신분이므로 바로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으로 불타올라 마치 누룩처럼 세상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름 받았다.” (1장 2항) 그러므로 평신도는 성직자와 수도자처럼 그 삶의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증거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평범(平凡) 속에 비범(非凡)이 있다.” 고 합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 교회의 발전은 강력한 지도자나 성인·성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름 모를 신앙인의 그 평범하지만 남다른 복음적 삶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흐르는 물결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빛을 밝히는 여러분이 바로 ‘교회’ 입니다.
- 김도율 신부 강론에서


/현이동훈 20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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