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렬 신부 (베드로, 부산교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시국미사가 평화 시위에 대한 새 지평을 열다

7월 1일 한낮의 햇살은 뜨거웠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마치 전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으로 표기)이 봉헌한 시국미사의 뜨거운 염원을 담은 듯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사안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올바른 판단과 국민 여론 수렴을 요구하며, 저녁 6시 30분 서울광장에서 매일 시국미사를 봉헌한다고 천명한 사제단은 곧바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서울광장 천막에서 사제단의 권경렬(부산교구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를 만나 사제단의 입장과 향후 움직임에 대해 간략히 들어보았다.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폭력, 정부의 초강경 대응 등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교착상태에 빠진 촛불시위가 사제단의 시국미사로 새로운 지평을 열며 현 시국에 대한 심각성을 다시 일깨우는 새 동력이 됐다."고 입을 연 권경렬 신부는, 폭력은 국민과 정부 모두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면서 종교인들이 평화적인 촛불 문화제의 견인차 구실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평화적인 시위를 깨뜨린 것은 정부 측 책임이 더 큽니다, 그런 것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부당한 피해를 위로하고 평화 시위를 보장하라는 요구가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을 이 자리로 불러 모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자들과 국민들의 기대가 큰 만큼 책임감을 더 많이 느낍니다. 사실 부담도 많이 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촛불시위의 폭력성과 폭력 진압에 반해 ‘평화’라는 쐐기를 단박에 드러낸 사제단의 시국미사와 평화 행진은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현 시국에 대한 사제단의 직접 행동을 바라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처음부터 여학생들이 촛불을 들었고 여기에 국민들이 참여하면서 촛불이 활활 타올랐기 때문에 특별히 사제들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권경렬 신부는, 계속되는 요구에 사제단 신부들의 의견을 좀 더 모으면서 지난 6월 30일 시국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전해 준다.

“시국미사 봉헌 시점이 절묘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제단 신부 가운데 누구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뜻을 모아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시국미사에 대한 사제단의 고민이 깊은 만큼 신자와 시민들의 이런 호응을 받으며 앞으로 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초강경 진압 방침 등으로 촛불 시위가 교착 국면에 들어선 시점에서 봉헌된 사제단의 시국미사는, 평화적인 촛불시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고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새롭게 이끌어낸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광야와 광장은 하나다

“‘교회가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우리가 단식을 하는 천막에 찾아와 스스로 신자라고 밝히는 분들이 이렇게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제들도 근본적으로 영적인 수련과 기도를 위해 살고 싶지요.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 얘기도 못한다면, 거대한 불의 앞에서 침묵한다면, 그것은 복음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신 것은 대중의 목마름과 아픔에 '하나 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았어요. 우리가 세상일을 나 몰라라 한다면 예수님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광야’와 ‘광장’은 하나며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 있기에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나눌 수 없다.”고 강조한 권 신부는, “이번 시국미사를 통해서도 느꼈지만 사회가 우리(정의구현사제단)를 보는 시각이 교회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호의적이라 기이하다.”면서, 정의의 길을 가려는 사제로서 외로움과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신자유주의’로 표방되는 이 시대에, 신앙인들은 맘몬과 하느님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신부들이 오늘 이 광장으로 나온 것은 단지 쇠고기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 부자 국민 등 ‘인간’보다 ‘돈’을 우선하는 천박한 세태 속으로 치닫고 있는데, 그 예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쇠고기 정국과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들이 아닌가 합니다.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반대를 하는 대운하 문제만 해도 여전히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국민이 반대할만한 정책이라면 처음부터 밀고 나가지 말았어야 하지요. 정직하지 못한 태도죠. 대한민국 국가 공동체는 사랑과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지향해야 합니다. ‘부’를 위해, 부를 가진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풀을 먹어야 하는 소에게 제 살을 먹인 소, 생명에 반하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슈퍼옥수수 따위를 수입해 국민에게 먹이려고 합니다.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 논리에 편승해 진실을 외면하는 이런 것에 대해 침묵만 하면 대한민국호는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사제의 양심으로 시국미사를 드렸고, 진정한 나눔과 섬김을 위해 단식을 하며, 이명박 정부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기도하는 사제단 신부들. 해법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사제단 단식 농성은 이 시대 정의를 깨우는 외침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울리고 있다.

/상인숙 2008-06-09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