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길거리 천주교한마당

 


6.10 항쟁 21주년, 그날은 지하철 계단을 빠져나오기도 힘들 정도로 참가자가 많았다. 촛불집회가 시작 되고나서 최대인파가 모일 거라 했는데, 차도로 모자라 인도까지 차고 넘치는 인파를 보니 실감이 났다. 뒤늦게 촛불집회에 참가했는데, 행진 대열에서 천주교모임을 찾는 게 너무 힘들 정도였다. 이 날 촛불집회에는 천주교인들이 많이 참가했는데, 집회 이전에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마당에서 4시에 미사를 참례한 후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많았다. 천주교의 여러 단체 활동가들과 사제들, 수도자들이 함께해서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받았다.

긴 행진을 마치고나서 자리를 잡으러 시청광장으로 이동을 했다. 한쪽에서는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가 계속되고 있었다. 태극기와 함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대한민국과 하느님나라를 어떻게 매치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새벽 1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길거리 천주교한마당은 천주교인들이 준비하고 집회를 즐기지만, 다른 시민들에게도 개방을 하자는 취지로 준비되었다. 그래서 깃발이 없는 사람들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무 이름도 없는 백기(항복의 의미로 오인을 받을 수 있어서 빨간 술이 달려 있었다.)를 준비해서 천주교한마당 내내 깃발을 세워놓았다.

긴급 제안을 통해서 만들어진 모임이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장기를 이용해서 프로그램을 준비해왔다. 산위의 마을에서 사는 청소년들의 노래공연, 서가대연 노래패 노둣돌의 노래공연도 있었고, 예수살이 공동체의 류영철 요셉의 반주로 천주교한마당의 프로그램 사이를 풍성하게 해주었다.

이 모임을 제안한 엄기호(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씨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촛불집회가 한국인들의 건강권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이후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연구활동가가 와서 현 정부가 국민들을 주권자로 보지 않고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촛불집회에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권을 당당하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준비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자유발언이 시작되자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들의 참여도 활발해졌다.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유발언의 폭발적인 참여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꾹꾹 참고만 있었다는 듯, 자유발언을 할 수 있는 마이크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날도 자유발언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활발해졌다. 이야기의 주제도 광우병 쇠고기 수입의 반대뿐만이 아니라, 대운하문제, HID 수행원들의 문제점, 뉴라이트의 역사교과서, 농민들의 어려움 등 너무나 다양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21년 전 6.10 항쟁에 이 자리에 있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다시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을 다양성과 자율성으로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단체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길거리 천주교한마당에서는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들만의 잔치가 아닌 자리를 가져보자며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자유발언이 이어지면서 술이 취하신 분들 때문에 흐름을 끊기도 하고, 자신을 이명박의 딸이라고 외치던 여성분도 있었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촛불집회에서 최고의 슬로건은 헌법1조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살고는 있지만 국민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주노동자들, 아직 투표권이 없어 제대로 된 국민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청소년들, 군대에서 배제된 여성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열려있는 마음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들을 배제하게 될 것이다. 안전한 음식을 먹을 권리,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이야기하기위해 다함께 촛불을 들고 나왔지만 어느 순간 자신들의 깃발 안에서만 하나가되는 모습이 보인다. 끊임없이 자신들의 울타리 밖을 보지 않는다면 반쪽자리 노력이 될 수 있다.

천주교회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배타적이란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번 길거리 천주교한마당이, 우리가 좀 더 열린 신앙인이 되는 길로 한 걸음을 내딛는 자리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도들이 더욱 확대되기를 바래본다.

/고동주 200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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