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날 맞아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사회사목부 김용태 신부 등 8명 사제단 공동집전
생명의 강을 사랑하는 평신도, 수도자 등 200여명 참석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강을 따라 걸었던 날은 축복처럼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강을 섬기는 사람들의 마음은 남한강길을 따라 한발 한발 땅을 디디며 이 산하의 땅길과 물길이 지금처럼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했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자연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염원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환경의 날을 맞아 6월5일 한반도 대운하 반대 도보 순례와 미사를 봉헌했다.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침묵 순례와 창조질서 보전미사'는 여주 이포대교에서 양촌리까지 10Km를 걸은 후 남한강을 마주한 강가에서 봉헌됐다.

이날 환경의 날 순례와 창조질서 보전미사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길 소망하는 200여명의 신자들과 30여명의 사제, 수도자들이 참석했으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물길과 땅길의 어우러짐 속에서 창조 질서를 체험하고 보존의 당위성을 재확인한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우중에도 불구, 이포대교~양촌리 10Km 구간 침묵하면서 걸어
맨발로 개울을 건너기도...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 느껴


순례를 시작할 무렵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비는 3시간 남짓한 순례길 내내 오락가락하며 순례자의 마음에 시종 깨어있기를 재촉하는듯 했다. 생명의 강을 섬기는 순례자들은 이포대교 아래로 흐르는 개울을 건너기 위해 망설임 없이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렸다. 발끝에 닿는 시냇물은 아직도 차가웠다. 미끌거리는 돌들에 부딪히며 흘러가는 물살의 느낌이 그대로 맨발바닥을 통해 몸으로 전해진다. 자유로움...... 순리를 따라 흐르는 자연의 아름다움인듯 하다. 개울에 꽂히는 빗방울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순례객들은 묵묵히 강을 건넌다.

이날 순례의 귀착지였던 여주 양촌리는 대운하 예정지라고 한다. 만약 대운하가 준설된다면 마을은 물에 잠기게 되고 이날 순례길에 만난 고구마밭이나 파밭, 그리고 흙길 양옆에 늘어서 바람의 속삭임을 들려주던 갈대들이나 새들의 지저귐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강이 있어 그 줄기들이 하느님의 도성을,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시편 46,5)

생명의 강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생명의 강을 지키는 일은 생존권을 지키는 일이며, 선조들이 우리에게 그랬듯이 우리 역시 후손들에게 이 강산을 그대로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순례길에서 만날 수 있었던 달팽이와 거미 역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귀한 생명인 것을......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로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길, 그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축복일 것이다.

대운하, 우리 안의 개발지상주의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창조 질서 보전미사는 사회사목부 김용태 신부를 비롯한 8명의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남한강가 자갈밭에서 봉헌됐다. 이날 강론을 맡은 조대현 신부는 "저는 강을 따라 걸으면서 내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걸으며 그 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고 말문을 열면서 "순례 막바지에 그분께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오면 아스팔트를 깔고 전망대도 세우고 휴게소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개발 지상주의, 인간 편의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어 조신부는 "우리는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으로서 무엇으로 신앙을 증거할 것인가? 바람이 불면 비가 올 것을 알듯이 우리는 이 시대의 표징을 봐야 한다"고 전제한 후 "한달 넘게 촛불 문화제를 하게 하는 미국 쇠고기 문제나 한반도 대운하, 그리고 5월에 들어온 유전자 조작 옥수수라든지 이런 모든 것이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한 창조질서를 어긋나게 하는 이 시대의 표징이다. 광우병만 해도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 소를 소답게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재앙이며, 오직 더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탐욕의 결과" 라고 성토했다.

"저 앞의 강을 보십시오. 강이 비어 있습니까? 저 강은 비어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있기 전부터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저 강을 빈 강이라고 생각하고 그 위에 배를 띄우려는 인간의 오만함은 하느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 시대의 순교는, 이 시대의 십자가는 동료 인간의 어리석음 앞에서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공'이란 착각 속에서 강을 죽이려는 것에 맞서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덫과 유혹에 맞서는 것이 진정한 순교요, 십자가 입니다."

조대현 신부는 또 " 오늘 우리가 이처럼 강을 따라 순례한 것은 은혜로운 회개의 시간이며, 앞으로 생활 속에서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를 마친 후 순례자들은 생명의 강을 향해 큰 절을 올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사회사목부 김용태 신부는 이날 순례를 마치면서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 안한다고 하면서 비밀리에 운하를 위한 조직도 가동하고, 자꾸 거짓말을 시키니까 차제에 더욱 확실하게 대운하를 반대하는 우리의 의지를 밝힌다"고 말했다. 김용태 신부는 생명의 강을 살리는 일에 함께 기도하기를 당부했다.

이날 의정부교구 행신 1동 성당에서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창조질서 보전미사'에 참석한 강인순(47세, 아녜스)씨와 송혜숙(52세, 크리스티나)씨 등 4명의 순례자들은 세 번째 함께 강을 걸었다고 밝히면서 "비가 와서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강을 따라 걷는 길이 너무 좋았다. 앞으로도 대운하 반대 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도 환경과 생명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엄마와 고모, 언니, 그리고 같은 반 친구와 함께 남한강 순례를 한 김리아 (9세, 크리스티나)양은 자갈밭에서 거미를 보며 신기해하면서 "걷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즐겁다"고 수줍어하며 느낌을 말했다.


불교 신자라고 밝히며 목 3동에서 왔다는 손영이씨는 "타종교인 가톨릭 행사에는 처음 참석했는데 침묵 중에 차분하고 진지하게 진행한 순례길이 무척 가슴에 와닿았다"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종교 간에 더욱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대운하 반대를 확산시키기를 희망했다.

/상인숙 200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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