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촛불행진

사제와 수녀와 신자들이 전주중앙성당에서 시국 미사를 봉헌한 뒤 전동성당까지 촛불 평화행진을 했다. 사진은 참석자들이 "장관고시 철회하라!"라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천주교 전주교구)은 30일 오후 7시 전주 중앙성당에서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주권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사제 22명과 수도자 20여 명과 신자 250여 명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장관 고시라는 긴박한 시국에 동참하는 양심의 촛불, 정의의 횃불을 들었다.

미사 주례자인 송년홍 신부(천주교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는 미사에 앞서 "그리스도 신앙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장관고시 강행으로 국민의 뜻을 져버린 이명박 정권의 회개와 학생 시민들이 든 촛불과 평화의 대행진이 장관고시가 백지화되고 재협상되는 그 날까지 지속되기를 기원하자"는 권고로 미사를 시작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제1독서가 봉독되고,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너희 가운데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복음이 봉독되었다.

강론에서 송 신부는 "나는 스위스에서 7년 유학생활을 하고 왔기에 헌혈을 할 수 없다. 영국에서 한 달 이상 체류해도 헌혈을 할 수 없다. 광우병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서운 병인데 30개월 이상 된 소의 광우병 위험부위까지 수입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토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민심은 천심이며 백성의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다. 장로님이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사이비 장로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송 신부는 "지금 우리 사회의 구조에서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다. 신자유주의 한미FTA 경제구조가 그러하다"라며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먹는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찬성론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대부분의 국민들이라는 현실이 더 가슴 아프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교회이기에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막기 위해 촛불을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촛불의 정당성을 말했다.

미사를 마치고 연규영 신부가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주권회복을 위한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입장"을 발표했다.


연 신부는 성명서에서 먼저 "지난 25일 전주시민 이병렬님이 촛불 하나하나가 횃불이 되고 횃불이 활화산이 되는 그 날까지 촛불을 들자며 온몸을 불살랐다. 이런 절규를 보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저희 사제들은 창에 찔리듯 아파해야만 했다"며 심경을 토로하고,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온 국토를 파헤치는 대운하 사업을 하려 하고,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하는 굴욕적인 협상을 맺었다. 장관고시로 인해 학교와 군대급식, 구내식당과 일반식당에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되기 시작하면 우리의 식탁은 안전이 보장될 수 없다"며 이명박 정부를 규탄했다.

또 연 신부는 "현 시국의 전적인 책임은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 장관고시 철회하고 재협상하라. 국민들의 불복종 평화대행진을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하는 과거독재정권의 횡포를 즉각 중단하고 평화대행진 보장하라. 촛불은 어둠을 물리치는 정의로운 행동이다. 촛불은 우리 시대의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평화의 행진이다. 우리는 이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국민들과 함께 하겠다"라며 성명서를 마쳤다.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는 걸개 현수막과 십자가를 앞세우고 사제단과 수녀들과 평신도들이 뒤따랐다. 중앙성당에서 4차선 중의 한 차선을 따라 출발한 촛불행진이 오거리 광장에 이르자,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300여 명의 학생, 시민들이 박수와 함성으로 응원해 주었다.

평화행진 도중 최정옥씨에게 소감을 묻자, 그녀는 "자식을 군대 보내야 하는 엄마로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손자들까지 돈과 '빽'으로 군대에 안 보낼 수 있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식을 군대 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촛불을 들지 않겠는가"라며 이명박 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어느새 평화의 촛불행진은 87년 6월 항쟁 때 연일 집회를 열었던 민중서관 4거리를 가로질러 예술회관 앞을 지나게 되었다. 공연관람을 마치고 나온 고등학생들이 "짱이다! 짱! 우와!"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다. 반대편에서 지나가는 차들도 손을 흔들고 경적을 울려주며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전동성당에 도착한 촛불평화행진은 "미친 소를 청와대로!" "협상무효 고시철회!" "이명박을 미국으로!" "함께살자 대한민국!" 등의 구호를 외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촛불평화행진을 마감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과거 군사정권과 87년 6월 항쟁 때 중앙성당에서 시국미사를 드리고 전동성당까지 촛불행진을 자주 했었다. 행진을 마친 김진화 신부(우림성당)는 "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촛불을 들고 행진했다. 지금 전국에서 양심의 촛불보다 무서운 촛불, 내 생명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정의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라며 촛불행진을 열렬히 지지했다.

동료 수녀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걸었던 이경미 수녀는 "대통령은 국민의 아버지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먹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식들의 생명을 위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전면 재협상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이명박 정권이 회개하고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될 때까지 시국미사와 촛불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을 촛불을 들어 약속한 뒤 출발했던 성당으로 되돌아갔다. 이들의 발걸음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최종수 2008-05-31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