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W Meeting 2010 첫날

킬링필드 지역 중 하나인 ‘초흥 에크 대량학살 센터(Choeung Ek Genocidal Center)’에서 2010년 9월 6일 아시아·태평양의 가톨릭 정의평화활동가들이 모여 처음으로 가톨릭 미사를 봉헌했다. 이 미사는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가톨릭 정의평화활동가(JPW, Justice and Peace Worker)의 모임 중 하나로 진행됐다.

▲ 아시아ㆍ태평양 가톨릭 정의평화활동가 30여 명이 모여 캄보디아에 다시는 이런 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마음을 모아 미사를 드렸다. (사진/ 고동주 기자)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는 어두운 근대사의 아픔을 지닌 나라다. 불교가 강한 나라이기도 해서 그동안 킬링필드 지역 안에서 미사를 드릴 수 없었으나 이번 JPW meeting 2010을 통해서 처음으로 허가를 받았다. 이 미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기를 기원했다.

이 미사에는 아시아·태평양의 가톨릭 정의평화활동가 30여 명과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아시아·아랍 담당인 판 폴 히엔 반(Phan Paul Hien Van) 몬시뇰과 캄보디아의 에밀 디스톰스(Emil Destombes) 주교(은퇴)가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학살집행자들의 사무실, 주검들이 발굴된 자리, 유골 탑 등을 돌아보고 미사를 봉헌했다. 허용된 미사이긴 했지만, 여전히 구석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해야 했다. 끔찍한 희생만큼 민감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이 십자가는 캄보디아인의 신앙을 이어가도록 해준 특별한 십자가입니다. 전 주교의 어머니께서 학살이 진행됐을 때 이 십자가를 닭의 둥지 밑에 숨겨두어 몰래 신자들과 기도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주교는 강론에서 금색 십자가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학살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십자가 덕분에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발각이 되면서 현 주교는 1979년 브라질로 쫓겨나 10년간의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미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투올 슬렝(Tuol Sleng)에 있는 대량학살 박물관을 찾아 어떻게 희생자들이 고문을 받고 킬링필드로 옮겨져 살해됐는지를 돌아봤다.

1975년 4월 17일 투올 슬렝에서는 폴포트에 의해 S-21이라 불리는 감옥을 만들었다. 물고문, 마취 없는 가슴 절개, 목매달기 등 비인간적인 고문이 자행됐고, 아이가 있는 여성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이들에 대한 증거가 수집되고 박물관이 만들어진 때는 1979년 8월 19일이었다.

1975년 4월 한국에서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인혁당 사건이 벌어졌다. 5년 후에는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넣은 광주민중항쟁이 발생했다. 민주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곳에서는 어디에나 국가의 폭력이 있었다. 박물관 마당 한쪽에는 희생자들이 무덤이 있었는데, 그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이 끔찍한 희생을 당한 이들의 비명을 간직한 듯했다.

2010년의 캄보디아는 아픔만을 간직한 나라가 아니다. 거리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넘쳐나고 사람들의 얼굴도 활기가 넘친다. 국제 모임의 주최 측은 전쟁 통에 장애를 입거나, 여전히 남아있는 지뢰 때문에 다리를 잃는 사람들의 자활을 돕는 ‘반티에이 쁘리업’을 방문토록 했다. 저녁에는 메콩강에서 보트를 타며 평화로운 캄보디아의 모습을 느끼게 해줬다.

과거 크메르루주군의 살육현장이기도 했으며 통신 군부대, 감옥, 공장 등으로 활용되었던 반티에이 쁘리업에 예수회 캄보디아 봉사단 (JSC, Jesuit Service Cambodia)이 재활센터를 연 것은 지난 1991년이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활을 위한 정규과정을 졸업하거나, 기타 기술 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의 수가 총 1,500여 명에 이른다.

봉사단의 오인돈 신부는 “교육과정 동안 서로 친밀한 관계를 이루면서 평화와 화해의 삶을 자연스럽게 익힌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간 지금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평안한 삶을 마음껏 펼친다”며 “갈등과 상처의 상징이었던 반티에이 쁘리업이 이제 치유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는 이들이 만든 공예품을 판매하는 상점에는 한국인 관광객도 만날 수 있었다. 장애를 상징하는 한쪽 발이 짧은 십자가나 불교문화가 곁들여진 가부좌를 튼 예수 조각상이 눈에 띈다. 캄보디아를 찾는다면 반티에이 쁘리업(www.jmic.or.kr)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메콩강 위의 보트에서 바라보는 캄보디아의 야경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저녁이 되니 시원한 강바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오전에 대량학살 센터와 박물관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끔찍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고문과 살인이 자행될 수 있었을까. 전쟁이란 것이 인간을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잔인하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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