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홍준 평협 회장]
-성직자도 평신도의 자녀들.. 역할이 다를 뿐
-교도권과 갈등 생길 때 먼저 기도해야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는 ‘오늘날 아시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님을 선포하기 (Proclaiming Jesus Christ in Asia Today)’라는 주제로 9월 1일 오전에 열린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평신도대회는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주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주교)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최홍준, 이하 한국평협)의 주관으로 9월 5일까지 명동 꼬스트홀에서 열린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는 한국천주교 평신도협의회 최홍준(파비아노) 회장을 만나 평신도대회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었다.

아시아 평신도대회,
교황청에서 제의하고 한국교회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응답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를 한국에서 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 최홍준 평협회장은 평신도들이 자기 여할을 다 하기 위해 먼저 사회교리 등 교회문헌을 공부할 것을 제안했다.(사진/정현진 기자)
아시아 평신도 대회는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열렸던 대륙별 주교대의원회의 이후 시작된 대륙별 평신도대회로 아시아에서는 이번에 서울에서 첫 개회를 하게 됐다. 각 지역의 평신도 대표들이 주교들과 함께 그 지역의 평신도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평가하기 위해 개최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나누고 문제점을 짚어 교회와 세상에서 실천해야 하는 소명을 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서울 대회는 지난 2월에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의장 리우코 추기경이 방한 한 뒤에 6개월간 준비를 거쳐 열리게 됐다. 예전에 1992년 서울에서 3차 동아시아 평신도대회가 아론의 집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마카오의 평신도들이 3년마다 한번씩 만난다. 1992년 대회에서는 '평신도의 교회생활 참여'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1987년 세계 주교 시노드 주제가 평신도였으며, 그 결과물이 1988년에 <평신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문헌으로 나왔다. 여기서는 주로 '교회 안의 친교'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후 1994년에 아시아 평신도대회가 처음 열린 적이 있는데 '사회교리'를 주제로 했다. 그 후속 조치로 서울대교구에서는 1995년부터 사회교리학교를 열었고, 지금까지도 정의평화위원회에서 계속 추진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사회교리'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지만 이제는 많이 보편화되었다.

2001년에는 아시아 평신도대회가 방콕에서 열렸는데, 그때는 교황청 평신도평의회가 주최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출신 정평위원장 방투완 추기경을 통해서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에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평신도대회는 교황청이 주최하고 한국평협과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가 함께 준비했다.

아시아 평신도대회인데 아시아 주교회의연합의 논의를 거치지 않고 한국교회와 교황청이 직접 소통을 하여 추진된 점을 문제로 보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아시아 주교회의연합과 함께 했으면 더 보기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한국교회가 교황청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된 결과이긴 할 텐데, 당사자 중 하나를 소외시킨 것이 됐다.

교황청에서 한국교회에 먼저 제의하고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가 받아서 추진한 것인데, 좀 미묘한 문제가 있다.

성직자들도 평신도의 자녀들,
평신도를 계급적으로 하위에 있는 사람 아니고 역할이 다를 뿐


이번 아시아 평신도 대회의 초점은 무엇인가?

지난 2월 이번 대회를 위해 리우코 추기경이 방한했는데 준비위원들, 각 교구 평협회장들에게 이 대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대회 기간 보다도 준비과정이 중요하다는 부탁을 했다. 이 자리에서 4가지 문헌을 추천했는데, 그중 첫번째가 <평신도 그리스도인>이다. 이 문헌은 1980년대 후반, 평신도들의 소명과 사명이라는 주제로 세계 주교대의원회의를 연 뒤에, 제2차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과 <교회헌장>, <평신도 사도직 교령> 등에서 평신도에 대해 언급했던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지침을 내린 것이다.

공의회에서는 평신도를 성직자와 수도자가 아닌 사람으로 표현했다면,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는 평신도도 예언직, 사제직, 왕직의 삼중소명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실 성직자들도 평신도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평신도를 계급적으로 하위에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만 친교의 교회 안에서 역할이 다른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았다. 또한 가정과 삶의 터전에서 사도직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교회 선교사명>이라는 문헌에서는 종교간 대화나 선교를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시아 교회>는 이번 대회 슬로건인 '오늘날 아시아에서 예수그리스도님을 선포하기'라는 말이 담긴 문헌이다. 여기서는 인도 등 그리스도교가 소수종교인 지역에서 선교하면서도 어렵지만 '주님인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신원의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이런 문헌들을 공부해서 '아시아에 살면서 어떻게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할 것인지' 고민하는 가 될 것이다. 교회사명은 복음화다. 땅끝까지 예수님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것, 이웃을 복음화 하는 것이다. 이 교회사명과 평신도사도직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이 대회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 평신도대회에는 많은 주교들이 참석해 평신도 문제를 공유할 예정이다.(사진/한상봉 기자)


성직자든, 수도자든 평신도든 좋은 의견을 내고 서로 받아들여야
평신도들은 성직자들 뒷바라지로 만족하면 안된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결국 타종교인을 개종시킨다는 것인데. 양적 선교와 질적 선교 중에서 양적 선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시아는 특히 다종교 상황인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 초점인 것 같다. 결국 이번 대회에서 '사회복음화 ' 등 질적 선교의 부분이 좀 미흡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정체성을 가지고 하느님을 전한다는 것은 질적 선교와도 관련이 있다. 2020운동이란 게 있다. 2020년까지 한국인구 대비 20%의 신자를 만들어보자는 계획인데, 아직 10년 남았다. 2009년 10.3%라는데, 10년을 두고 두 배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숫자만 늘린다는 것은 아니고 질적인 선교도 함께 가는 것이다. 복음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지붕위에서 외치는 것도 중요하고 한편으로는 삶을 통해서 증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 평신도 대회를 준비하면서 대회의 성과를 가지고 평신도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가?

구조적인 면에서 본당 평협과 운동단체들은 각 교구 평협 단체에 속하고, 전국평협도 각 교구 평협들을 회원으로 두고 정보교환 등을 하고 있다. <평신도 사도직 교령>을 보면, 개인적인 활동과 단체적 활동을 함께 말하고 있다. 대희년을 준비한 3년 중, 1998년 성령의 해 성령강림대축일에 바티칸 광장에 평신도 단체들이 다 모였다. 그때, 평신도들이 모여서 각 단체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것뿐 아니라 단체 간 교류에 더 힘쓰기로 했다.

이 대회에서 지금 교황님인 라칭거 추기경님(현 베네딕토 16세)이 기조연설을 했다. 그 자리에서 라칭거 추기경님은 베드로적 교회, 성령을 통한 교회, 마리아의 교회를 말하면서, 운동단체들은 성령을 통해서 순명하면서 각 단체의 영성을 잘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평협이 각 운동단체들을 모아서, 그들이 각자의 영성을 발표하고 미사를 함께 하면서 여러 번 만났다. 대희년에 평신도대회도 열었고, 현 베네딕토 교황님이 즉위하고나서도 또 한번 대회를 열었다. 그때 문헌이 지금 출판을 위해 준비중이다. 본당 쇄신에 대한 문헌도 검토중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아시아 평신도대회를 통해서도 교황청에서 문헌이 나오면 번역해서 출판할 것이다. 그 내용을 한국의 평신도들이 많이 접근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한다. 오늘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선포할 것인가를 짚어 보는 것이다. 선교의 측면에서 아시아 교회는 박해를 많이 받았다. 한국교회만 종교적으로 자유롭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에서는 오히려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있다.

한국교회의 대부분은 평신도인데 그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평신도들은 성직자들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나름대로의 사도직을 수행하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성직자든, 수도자든 평신도든 좋은 의견을 내고 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안에 예수님의 말씀도 들어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에 평신도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런 소통의 한계를 느꼈다. 서로 충분히 말하고 듣지 못하는 문제다.

▲최홍준 회장은 주교와 일치하는 가운데 평신도운동이 발전하길 희망했다.(사진/한상봉 기자)

4대강 사업에 대해 찬반의 입장이 모두 있다. 좀 안타까운 부분이다.
교회는 다수결이 아니고 주권재천(主權在天)이다
하느님을 속속들이 믿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어려운 일이다.

한국교회가 상당히 커졌는데,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주교와 사제들이 움직이고 있는 데 반해 평신도들의 활동은 거의 없다는 평가가 있다. 공의회 이후 40년이 넘었는데 오히려 평신도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평신도들이 위축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교회에서 단지 목소리를 많이 낸다고 해서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도 교구장을 중심으로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전교구 경우에는 4대강 문제에 대해 평신도들과 주교님이 함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국평협도 원칙적인 입장은 있지만 아직 방법론이 정리가 안됐다.

사회적 사안이 생겼을 때, 꼭 성명서가 아니더라도 평협은 지난 10여년 간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사회적 책무 차원에서 소홀한 것이 아닌가?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노력할 것이다.

사회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 불러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 문제는 성직자들보다 평신도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남북문제 관련해서도 세미나 같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평협 나름의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도농간 교류 등. 생명대회 같은 것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생명대회의 경우에는 주교님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져서 홀가분하게 참여할 수 있지만, 4대강은 주교님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평신도들은 더 민감하다. 예전에 문규현 신부 방북 때 성명서가 나왔는데, 주교단의 성명에 대해 평협의 입장을 밝혔다. 교회안에서 입장이 다양할 수 있는데, 이번에도 4대강에 대해 찬반의 입장이 모두 있다. 좀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번 아시아 평신도대회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국제대회를 하면 한국 평신도들은 좀 소극적이다. 그래서 되도록 젊은이들을 많이 참여시키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선 120명 정도 참여했다. 젊은이들이 더 많아야 겠다는 것을 느낀다. 평협이나 사목회는 나이 많은 이들이 하는 '원로모임'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평협 안에 청년 청소년 위원회를 만들어 젊은이들이 한국교회의 허리가 될 수 있도록 배려를 하려고 한다. 한국평협이 더 젊어지고, 평신도들이 더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교회 가르침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4대강 문제를 볼 때도 자기 입장, 철학 없이 누구를 따라서 찬성, 반대 하는 그런 모습이 제일 안타까웠다. 교회를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도 교회 가르침을 많이 알리는 작업이다. 여기서 나오는 말들이 아주 중요하고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

교회문헌을 많이 공부하는 평신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뜻인가?

교회라는 것은 일반 사회단체와 명백히 다르다. 일반사회에서는 수적으로 우세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교회는 합당하게 '일치'라는 것을 통해서 일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과 일치함으로써 친교를 이루는 것과 같다. 친교의 교회안에서 일치가 중요하다. 성삼위의 친교를 닮은 일치. 서로 성부 성자 성령의 입장이 되어서 들어주어야 한다. 평신도와 주교님 간의 관계도 그렇다. 그 안에서 일치를 건져내야 하고, 그럴 때 목소리를 내야 힘이 있다. 서로를 배제하면 힘을 낼 수 없다.

이 대회를 통해서 그런 것들을 배우고 실천했으면 한다. 친교와 일치를 이루면서 잘 해나갈 수 있도록. 교회는 주교를 배제할 수 없다. 베드로가 그랬듯이, 주교님이라고 해서 똑똑한 사람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제도를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에 안 든다고 교회를 떠나면 그건 가톨릭이 아니다. 어떻게 일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마음이 상할 때도 있지만 십자가의 하느님을 살지 않으면 일치는 어렵다.

그 점에서 평신도들의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과 주교님 의견이 다를 때,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나에게 그런일이 생긴다면, 잠시 멈추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 이번 평신도대회에서도 대회 인사말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자."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사도직은 할 수 없다. 조용히 신념을 가지고 신앙인으로서 일할 때, 모든 게 이루어진다. 교회 안에서 일치란, 99명이 한 명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다수결이 아니고 주권재천(主權在天)이다. 권한은 하느님께 있다. 많은 목소리 중에 있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충분히 공동식별을 해야 한다. 하느님을 속속들이 믿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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