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 작은자리에서 이철수 판화 ‘새 꽃 새 잎’ 전시회 열려

 

5월 20일(화) 경기도 시흥시에 자리한 작은자리 회관에서는,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 문화마당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문화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지역복지 활동기금을 조성할 목적으로 마련한 첫 번째 전시회 판화가 이철수의 ‘새 꽃 새 잎’ 전이 열렸다. 마흔 점쯤 되는 판화를 전시한 조촐한 전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로 자리를 꽉 채워 지역주민과 함께한다는 취지를 돋보이게 하였으며, 작가와의 만남 시간 뒤에 이어진 사인회를 통해 한층 흥겨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신명자 이사장은 “(지역적으로) 문화적 소외감과 갈증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 아프게 지냈습니다. (그동안)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눈다는 마음을 지니고,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는 문화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오늘 이렇게 첫 번째 문화마당의 자리에,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이철수 선생님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며 인사말을 대신하였다.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오셨습니다. 이런 자리에 오니 특별한 행복감을 맛보고 있습니다.”로 작가와의 만남의 문을 연 이철수 선생은 “저는 그림 가지고 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입으로 하는 말을 줄이려고 하는데~”라며 이야기의 끈을 이어갔다. 나지막하게 조용조용히 들려주는 선생의 말을 통해 이 시대를 관통하는 욕망의 끈을 내려놓아야 우리가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이 시간을 통해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다.

“보시듯이 (제) 그림은 농사지으면서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풍경들입니다. 제가 농촌에 간 지 25년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농약 안 치는 농사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농약 안 하고 제초제 안 하니 여름이면 개근하듯이 김을 매도 당하지를 못하더군요. 동네 어르신이 30분이면 되는 일을 그런다고 하시던데, 그렇게 3년 했더니 골프장보다 더 좋은 풀밭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러면서 사람 손 가지고는 땅하고 사는 게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3년쯤 지나 우렁이 농법을 배워서 우렁이 머슴 부리듯 농사를 지으면서 좀 나아지기는 하였으나 결코 농사는 만만한 일이 아니더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천 평 논 안에서도 인생을 헤매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구와 둘이 논에서 그렇게 종일 일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한자리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일을 하다가 어느 틈엔가 서로 멀리 떨어져서 일을 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우리는 갈수록 작아진다. 거머리처럼, 나비처럼.’ 하는 생각이 들어 나온 (그림을 가리키며)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나름으로 인생이 들어있고 그래서 (삶이) 재미있더라고요. 농사짓는 재미가 그중 낫더군요.

<시사 IN> 기자가 ‘감성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묻더군요. 감성, 그런 것 저는 모릅니다. 그랬더니 ‘선생님 작품은 감성덩어리라고 하던데요.’ 그래요, 저는 감성이란, 사물이든 세상이든 사람이든 느껴서 아는 힘, 성깔을 다루는 삽쯤으로 생각합니다. 감성을 회복하자면서 자꾸 시를 읽으라고 하는데 제가 생산공장을 못 믿겠는데 왜 시를 자꾸 읽으라고 하냐고, 시인을 못 믿겠다고 그래요. 제 판화를 보면서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사는 게 깊고 이뻐야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든 판화든 (그럴 수 있는데), 사는 게 어쭙잖아서 좋은 판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살면서 ‘옳다’ 그 말 하기가 힘들어요.

지난 5월 17일은 권정생 선생님 1주기였어요. 권정생 선생은 정말로 무섭고 위험한 사람이에요. 너무 맑고 예쁘게 사셔서, 그분 사는 것 보면 괜히 죄책감이 들잖아요. 돌아가실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분이 몇 분 계신데, 제정구 선생도 그런 분이에요. (하느님께서) 착한 순서대로 잡아가더라구요. 대충 찌끄러기끼리 남아서 사는 것 같은데~. 제 인생 청년기에 바른 길 가라고 징검돌 놓아주신 분이세요.

이곳에 와보니 (이고 회관이) 동네에서 돋보이게 세련된 집, 소외된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이 천국 같은 공간이어서 참 좋아요. 소외된 사람, 없으니까 차별받아도 좋은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안심도 되고, (시흥이라는) 이름이 정겨운 만큼 삶에 대한 이해가 있을 거라는 기분이 들어서 행복합니다.

저는 예수님 팬클럽에 등록한 회원은 아니지만 예수님 좋아해요. 가끔 기도를 하면 ‘당신 교회도 안 다니면서 그러냐!’ 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리고 성호 긋고 기도하시는 분 만나면 저도 성호 긋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왜 우리 아버지한테 그러냐?’ 그러세요. 그럼 제가 ‘당신은 남의 아버지한테 인사 안하냐?’고 그래요.

감성, (제 그림에) 시적 여운을 담는다고 그러기도 하고, 영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우리가) 죽기 전에 한번쯤 확인하고 갈 것이 있어요. 목숨 받아서 태어났으니까, 온 길이야 모르죠. ‘어떻게 살다 갈래?’ 스스로 질문하는 거죠. ‘어떤 내용으로 살다 갈래?’ 자문하는 거죠. 그저 얻은 길, 들어선 길에서, 다가오는 회의가 있더라도, 이왕 시작했는데, ‘이것보다 안전한 길이 어디 있나?’ 그러면서…. 가다가 망가지고 나면 저승 가는 거죠.

세상에 지금만큼 먹을 것도, 쓸 것도, 오죽하면 버릴 것도 많은 세상에서 나남 없이 새것 사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마음속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아요. 영성이 풍부해지는 것, 감성 회복하는 것, 이런 것 중요하지 않아요. 세련돼 보이는 것, 남하고 다른 것 이런 것을 바라는 거겠죠. 그런데 다들 안 샀으면 좋겠어요.

저는 세상에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많은데, 핸드폰 회사, 비싼 차 만들어 파는 회사, 화장품 회사 모두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미모, 신장, 능력, 경쟁력 있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사는데, 이게 버릴 만큼 허약한 강박이 아니거든요. 온 세상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아우성인데 버릴 수 없잖아요. 그럴 때 가끔 그 생각을 하는 거죠. ‘인생, 이렇게 살다 가도 괜찮은가?’ 하고. 그래서 돈 없어도 싸우지 않는 기술이 있어야 하죠. 돈 없이도 웃을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게 이 세상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는 것의 근본을 생각해 보자. 먹고 사는 것 같으면 밥 넘기기 힘들지 않는 소박한 반찬이 있으면 되고, 옷도 너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아름다운 가게 가서 새로 입성을 쫙 뽑아도 만오천 원밖에 안 들어요. 이제는 얻어만 입어도 세련되게 꾸밀 수 있는 시대잖아요.

새것 사는 중독에서 놓여놔야 해요. (저는) 세상을 함께 가는 길동무가 되고 싶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신 생각이 내 생각이구나, 저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당신 생각이 틀렸다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해요.”

그림으로 말을 하는 화가가 스스로 어눌하다는 입담을 풀어놓았다. 조용조용 친구한테 속삭이듯이 다정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말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의 욕망에 왜 급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지를 한마디 한마디 강조하고 있었다.

 

작은자리는...


작은자리는 1977년 고 제정구 의원이 양평동 철거민들과 함께 시흥으로 집단이주하면서 복음자리마을을 건립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지친 이들과 더불어 나누고 섬기는 삶을 실천하면서 시작하였다.

1979년에 2차로 서울 8개 지역에서 철거당한 주민들이 이주해와 한독주택 마을을 형성하고, 1985년에는 목동에서 철거당한 주민들이 인근으로 이주해 와 목화마을을 형성하면서 섬김과 나눔의 영역은 점차 확산되었다.

작은자리의 지역복지 운동은 이 과정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0여 년간 지역주민들과 함께 숨 쉬고, 함께 걸어가려는 노력을 통해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주변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아우를 수 있는 지역공동체적인 ‘중심 센터’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면서 1984년에 ‘작은자리 회관’을 건립하였다. 차츰 작은자리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간으로 발전해나가게 되었다. 한편 ‘작은자리 회관’은 시대적 흐름과 주변환경의 변화에 따라 ‘작은자리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발전해 왔다.

작은자리는 이러한 설립주체들의 청빈정신과 행동 속에서, 모든 지역주민의 인간다운 삶의 질 향상과 복지사회 건설에 기여하고자 가난한 이웃과 함께, 그 안에 있으면서 ‘가난한 우리 이웃이 바로 하느님이다’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장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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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늘 200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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