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국민들이 이렇게 반대할 줄 몰랐던 이명박 정부는 갈수록 악수를 두고 있고, 악수를 두면 둘수록 감추어둔 실수는 드러나고, 새로운 실수는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어륀지' 발음 자랑하더니…"

따라서 국민들의 불신은 더 깊어만 간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과의 협상이 얼마나 부실했는지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하다 못해 영어 해석하는 실력마저-'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며 본토 발음을 자랑하던 그 정권이!-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에 대한 영어 해석이 엉터리여서 졸지에 몽땅 다 수입하게 생긴 것이다. 새로운 실수도 늘어만 가고 있다. 당황한 정부가 '아무 생각없는 10대들'이 어떻게 그렇게 길거리에 갑자기 쏟아져나와 데모를 했겠느냐며, 배후를 캐기 위해서 공부하는 교실로 쳐들어갔다고 한다. 이걸 일상적 정보활동이라고 우기는 경찰이 도로 측은해진다.

하긴, 촛불집회가 불법이라며 몽땅 다 잡아들이겠다고 말했다가 국민들이 '나도 잡아가라'고 들고 일어나는 통에 이미 개망신을 당했는데 이 정도 실수야 실수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과격함이 과격함을 부르는 순환고리

문제를 파악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해결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더 과격한(radical) 해결책을 도모하게 되고, 그 과격한 해결책은 큰 과격한(radical) 실수를 하게 되고, 그 더 큰 실수는 더 과격한(radical)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그 더 과격한(radical) 저항은 다시 한 번 당황한 당국에 의해 더욱 더 과격한(radical) 해결책을 찾게 하고 한 사회의 시스템은 그렇게 삽시간에 붕괴한다.

지금, 한국정부가 광우병 사태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이 과격한 것들(radicals)의 순환고리에 단단히 빠진 듯 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과격한 것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은 길거리의 십대와 국민들이 아니라 정부인 셈이다. Welcome radicals!

이명박 정부의 '과격한' 정책이 10대 아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프레시안

"이명박, 바이러스만도 못하다"

이렇게 과격함의 순환 고리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보자면 바이러스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해왔고, 앞으로도 가장 오랫동안 생존해갈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 바이러스가 이런 말을 들으면 무척이나 자존심 상할 테지만 말이다.

바이러스가 얼마나 현명한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에이즈를 발병시키는 HIV바이러스이고, 다른 하나는 에볼라 바이러스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순간에 나타나서 삽시간에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한순간에 사라졌다. 바이러스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바로 숙주(인간)의 생존인데, 너무 강력하게 치명적이었던 나머지 숙주(인간)가 버티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사망해버리자 다른 숙주로 퍼져나갈 시간조차 벌지 못했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숙주를 존중할 줄 안다"

이에 반해, HIV바이러스의 숙주에 대한 '존중'과 '관리'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HIV바이러스는 수많은 바이러스 중에서 변이 속도가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숙주를 옮겨다니면서 항바이러스제에 적응을 하며 변이를 일으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HIV바이러스가 숙주를 파괴하는 치명성의 정도가 지난 10년간 30%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즉, 감염은 되지만, 숙주를 죽이지는 않을 정도로 스스로를 약화시켜나가고 있다. 숙주의 죽음은 곧 자신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HIV바이러스가 이렇게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것이 바로 자신으로 인해 벌어지는 과격한 결과들(radicals)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인 셈이다.

관건은 바로 이것이다. 과격한 결과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에서 자신이 정답이라고 믿는 더 치명적인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여 사태를 더 걷잡을 수 없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양식, 혹은 존재 자체를 바꾸어서 과격한 결과를 줄이고 '관리'해 나가는 것이 바이러스의 지혜이다.

'급진적(radical)' 저항 낳은 '과격한(radical)' 처방

이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바이러스만도 못하다.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한국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착각하였다.

한국이 완전한 신자유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과의 FTA협상 타결이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포기할 수 있었다.

마침 자신의 방미에 맞춰 쇠고기 협상은 남김없이 타결되었다. 한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과격한 처방을 한 셈이며, 그 과격한 처방의 결과가 십대들부터 길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이번 광우병 사태와 같은 과격한 결과(radicals)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명박 정부는 이 예기치 않은 결과를 다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어떻게? 배후를 캐고, 시위를 막아서!

나라를 '전두환 시대'로 돌리는 과격한(radical) 처방을 다시 하셨고, 그 결과는 취임 두 달만에 지지율 23%라는 경이로운 추락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나같은 급진주의자(radicals)를 실업자로 만들기 딱 좋을 정도로 한국 헌정사상 가장 과격한(radical) 정부-미안하다, 유신과 광주항쟁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잊어버렸다-이다. (영어 단어 'radical'은 '급진적'이라는 뜻과 '과격한'이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광우병, 소를 대량소비 사회에 맞추려다 생겨난 병

사실 광우병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에 대한 과격한 처방에 의해 만들어진 과격한 결과이다. 아직까지 광우병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여러 가지 가설이 경합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설이 초식 동물인 소나 양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면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6~70년대에 영국에서 포유동물의 다양한 부분을 갈아서 동물 사료를 만들었는데, 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서 수입한 뼈나 시체에 사람의 시체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소를 수입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
가 바로 동물성 사료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풀을 먹어야할 소에게 인위적으로 고기를 먹이면서 벌어진 문제인 셈이다.


소의 생리를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걸맞게 과격하게(radical) 고치다가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 "닭 한 마리가 재채기 하면 세계가 벌벌 떤다"

광우병뿐만 아니다. 지금 서울까지 번졌다고 난리가 난 조류독감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류독감이 한번 발생할 때마다 살처분당하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수십만, 수백만 마리에 달한다.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것 때문에 가금류 전체가 모조리 도륙당하고 있다.

물론 어설프게 동물보호주의자 노릇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HIV/AIDS나 사스의 경험으로 볼 때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질병이 한번 발병된다면 그 이전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것이 바이러스이건 박테리아이건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질 조건을 인간 스스로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디서 닭 한 마리만 감염되더라도 전세계가 벌벌 떠는 것이다. 재채기 하는 닭 한 마리에 온 인류가 공포에 떨게 한, 그 조건이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닭, 오리 사육방식 바꾼 '세계화'…"개고기 비난하던 동물보호주의자들은 뭐 하나?"

세계화는 대규모로 수출하는 공장형 사육이 아니라면 농장이 절대 살아 남을 수 없도록 닭과 오리 등 가금류의 사육방식을 집약적인 것으로 바꾸었고, 가금류 사육이 집단화되면 될수록 머리 위로 재채기하는 기러기 한 마리만 날아가도 수십만 마리의 동물이 살육당해야한다.

(내가 제일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 사태가 벌어졌는데, 개고기 먹는다고 난리를 치던 그 동물보호주의자들은 다 어디 갔는가 하는 사실이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이 죽음의 '배후'에 뭐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지금의 수출을 위한 대량생산-대량소비 사육체제에 과격한(radical) 데모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이런다고, 조류독감이 통제가 되는가? 가금류는 그렇게 죽인다고 치더라도 기러기나 철새는 어떻게 할 껀가? 을숙도며 모든 철새도래지를 다 매립해서 철새들이 오도가도 못하게 하면 통제가 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애초에 글러먹은 것은 닭 한 마리만 감기 걸려도 주변의 모든 조류들을 다 죽이도록 만들어져 있는 지금의 집단적인 생산체계이며 세계적인 유통방식이다.

참고로 아프리카와 인도 대륙에서 에이즈 역시 트럭 운전수들의 무역로를 따라 번져나갔다. 동네에서 키운 닭을 먹어도 되는데 쓸데없이 먼 나라에서 집단적으로 사육한 수입한 닭을 먹어야 하는 현재의 '지구화된' 먹거리의 생산-소비의 순환고리 체제가 하나로 뒤엉켜서 재채기 하는 기러기 한 마리에 수백만 마리를 살육하게 하는 비극을 낳은 것이다.

'위험 관리'에 실패한 체제…"중국 대지진, 삼협댐과 관계 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완전히 실패한 체제이다.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예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위험을 관리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였다.

위험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기만 한 '무능력한' 체제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과격한 처방을 쓰며 더 과격한 결과를 낳는 스스로 위험이 되어버린 체제이다.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호명할 수 없겠지만 며칠 전 있었던 중국의 대지진도 삼협댐과 유관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지진으로 주변의 댐들이 위험하고 삽협댐도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고 한다. 과거라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자연과 인공물이 서로 적응을 하며 이루어졌어야 하는 대공사가 수년 안에 뚝딱 만들어지니 그 결과가 과격(radical)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삼협댐 역시 경제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도 무력화, 국제협력기구도 작동 불능

신자유주의는 경제개발과 그의 동력으로서의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작동하던 관리시스템인 국가기구마저도 무력화시켰고, 그렇다고 전지구적인 협력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관리의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를 추동하고 있는 힘인 자유무역에 스스로 제한을 가하거나, 그 속도를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자기조절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광우병 파동이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윤리적으로도 인류에게 완전히 실패한 체제이다. 위에서 말한 숙주를 존중하며 스스로의 위험을 약화시키는 바이러스의 윤리도 없으며 인류에게 위험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일러주지 못하는 체제인 것이다.

결과를 수용하는 '바이러스의 윤리'

바이러스는 자신의 존재가 숙주에 삽입되는 것 때문에 벌어지는 과격한 결과를 수용(Welcoming radicals)한다.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윤리가 아닌가?

이에 반해 작금의 체제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로 인해 벌어지는 과격한 결과를 '제거'하기만 하려 한다. 여기에는 윤리가 없다. 악순환만 있을 뿐이다.

지금 과격하게 바뀌어야하는 것이 있다면 인류의 생활터전, 생태계와 생명에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무식하게 과격한 메스를 가하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와 그에 기댄 생활 방식이다. 그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과격한 결과를 수용(welcoming radicals)하는 자세이다.

"이 대통령, 5년 동안 제발 푹 쉬다 돌아가시라"

그게 전제되어야 그 다음인 '관리'가 가능하다. 따라서 수용의 의사가 전혀 없는 이 이명박 정권에게 권할 유일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관리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그 지겨운 시장이 알아서 통제할 것이라는 고장난 라디오말고 말이다-광우병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절대 그 어떠한 정책도 국민을 가지고 '실험'하지 말게 해야 한다.

이 정권에게 기대할 것은 그나마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관리와 통제의 기구라도 더 파괴하지 않도록 철저히 "아무 일도 못하게" 감시하는 것일테다. 5년 푹 쉬시다 들어가시라.(수출을 위한 대량생산-대량소비 농수산축산물 체제의 변화와 슬로 푸드, 로컬 푸드 등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생략 하도록 하자.)

물론 과격한 처방이 불러오는 과격한 결과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번 예기치 못한 십대들의 반란처럼 과격한 처방은 희망을 위한 급진적인(radical) 운동도 낳는다.

"국가가 손 놓으면, 누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인가?"

이번 미국 쇠고기에 대한 십대들의 반란, 그리고 그에 따른 수입저지의 흐름은 운동권 일각이 한심하게 주장하는 단지 미국에 대한 반대나, 우리 소 지키기 운동이 아니다.

우스개처럼 "노무현 정권 지지하던 어설픈 386들이 말아먹고 이명박 지지한 황당한 20대가 망쳐버린" 한국이라는 사회, 그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10대들이 '과격하게' 질문하고 있다.

"시장에서 안전한 것을 알아서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국가가 손 놓는다면 누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인가?"

체제가 존재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인, 시민들에 대한 보호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하고, 현재의 정책이 그것을 보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는 한, 10대들의 반란은 말 그대로 반체제운동인 것이다.

"진보 진영, 아이들이 만든 데모에 깃발 하나 꽂으면 그만인가"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한 운동이 체제 '내' 변혁운동이었던 것과는 달리, 누가 그들에게 "우리가 너희를 보호할 것이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한국 진보운동의 미래가 달려있다.

아이들이 만든 데모에 슬쩍 끼어들어 깃발 하나 꽂고 마이크 하나 갖다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운동에 묻고 싶다. 정말 우리는 이 급진적인 것들을 환영-이용이 아니라-하는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말이다. Welcome Radicals!

*<프레시안>에도 이 글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엄기호(국제연대 코디네이터) 20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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