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모니터링 자료는 9월 16일자 평화신문 937호와 가톨릭신문 2566호이다.


‣ 문화일보식 엉뚱한 욕심은 아니지만....
요사이 교회와 관련되어 일반 언론에까지 보도된 것은 서울의 태릉성당에서 추진되고 있는 ‘납골당’(KS용어로는 봉안당)과 관련 된 일이다. 교회의 어른이신 정진석 추기경께서 태릉성당 봉헌미사에 참석하였다가 납골당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계란투척과 함께 험담을 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평화 신문은 이와 관련하여 1면 4단, 4면 2단, 21면 4단을 통해 사건보도와 성전봉헌보도 그리고 분석 기사를 실었으며 2면 사설에서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가톨릭신문은 이에 대해서 완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평화신문의 단독보도에 대해 ‘물 먹은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언론의 태도가 아니다.

아무리 서울대교구 관할 성당의 일이지만 가톨릭신문이 스스로 ‘대구대교구’ 혹은 ‘대구관구’ 기관지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두 신문의 입맞춤 보도도 문제이지만 모르쇠 보도 또한 언론이 제 역할은 포기하는 것이다. 늘 교회 신문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은폐보도’와 ‘침묵보도’이다.

평화신문이 교회와 관련된 유감스러운 일을 분석기사와 아울러 사설까지 발 빠르게 보도한 것은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평가를 한다. 그러나 조금 더 보도에 욕심을 내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하지만 문화일보식 엉뚱한 욕심은 사양한다.

이번 기회에 납골당에 대한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태릉성당이 추진중인 납골당이 종교시설에서의 첫걸음이 아니라면 타 성당 혹은 타 교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여부와 현재 한국천주교회내의 납골당 설치 현황과 아울러 타 종교의 현황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런 자료에 대한 검토와 아울러 태릉성당의 납골당 추진이 분양사업에 따른 이권사업이 아니라는 명확한 논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태릉성당의 신자중에서 설치 반대의견을 가진 목소리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리는 균형보도가 있어야 한다.

‣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와 사회복지위원회
민화위가 북녘 수재민에게 구호물자를 9월 5일 전달했다. 가톨릭신문은 이를 20면 3단, 평화신문 역시 22면 3단으로 보도하였다. 어떠한 수식어에 앞서 민족공동체의 일원이 아픔을 겪고 있음에 보다 많은 단체에서 동참하는 것은 귀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내 소식을 신문에 의존하는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가톨릭신문은 9월 2일자 2면 ‘북한 수해 지원 본격화’ 꼭지에서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김운회 주교)는 8월 24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제14차 대북지원소위원회 회의를 열고 북한 수해 복구 지원에 힘을 모아 나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교회의 장기적 비전에 따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인도적 차원의 수해 복구 지원에 나선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 한국 카리타스)로 창구를 단일화 해 대북지원에 나서기로 결정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이에 따라 민화위는 현재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대북지원금 2억 7000여만 원 전액과 교구 및 수도회에서 내놓은 기금 등 총 3억여 원으로 밀가루, 분유, 식용유 등 식료품을 구입해 조선카톨릭교협회를 통해 긴급지원하기로 했다.”고 하였다.

'누가' 지원한다는 것인지 여부가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이는 기자의 기사작성에서 논리성의 절대부족이다. 민화위가 대북지원을 사회복지위원회로 일원화하기로 해놓고는 배반을 때린 것인지, 아니면 모금은 사회복지위원회가 하고, 지원은 개별로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기자가 내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읽는 사람은 당연히 엉뚱한 신문 읽기가 된다. 두 위원회간의 대북 지원 경쟁으로 비춰진다.

보너스!
‘납골당’이란 용어는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2005년 5월에 ‘봉안당’으로 용어변경을 하고 KS규격으로 정한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2년이 지났지만 ‘장사(葬事)에 관한 법률’에는 아직도 용어를 개정하지 않고 있다. 언론은 이에 대한 개정의무를 가진 자들의 직무유기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법률 용어를 관행으로 사용하는 언론도 공부합시다!
 

 

/김유철 200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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