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8월 26일자 평화신문(934호)과 가톨릭신문(2563호)을 대상으로 한다.
 


변별력이 없으면 두 개씩 있을 필요가 무엇인가?
88년 5월 15일 이 땅에는 두 개의 신문이 동시에 창간호를 발행했다. 87년 6.10항쟁을 통한 민주화의 기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함과 동시에 양김의 분열로 인한 당시 집권세력인 민자당이 재집권을 했다.
그 와중에 재야를 대표하는 ‘한겨레신문’과 민주화의 숨은 한 축이었던 천주교회의 ‘평화신문’이 같은 날 동시 등장했다. 이것은 언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두 신문은 생일만 같을 뿐이지 성장의 과정은 너무도 달랐다.

기존의 신문들과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하며 특성화된 시각을 유지하겠다는 신문과 애초에 비교 할 바 아니지만 같은 날 창간된 평화신문은 기존 교회에 있던 가톨릭신문과 무엇이 다르다 말인가? 그렇지 않고 차별화된 신문이 아니라 똑같은 편집성향을 가졌다면 굳이 두 개씩 있을 필요는 애초에 없는 것이다.
교구들의 이해 다툼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번 주 교회신문의 보도 자료는 크게 보아 <한국청년대회>와 <생명수호대회> 그리고 <북한수해돕기> 이다. 자, 두 신문의 편집을 비교해 보자.
 

<한국청년대회> 평화신문 1면-전면기사/ 2면-사설/ 11면-전면 / 12면-전면 / 13면-전면 / 14면-전면
(총 8꼭지)
가톨릭신문 1면-사진 포함 5단/ 4면-사설/ 12면-전면/ 13면-전면/ 14면-전면 / 15면-전면 (총 9꼭지)

<생명수호대회> 평화신문 2면-사설/ 3면- 4단기사 (교회입장은 지난주 실렸음-총 3꼭지)
가톨릭신문 1면-1단 박스기사/ 8면-6단기사 (사설은 지난주 실렸음-총 3꼭지)

<북한수해돕기> 평화신문 2면-사설/ 3면- 4단기사/ 19면- 인터뷰 박스기사 (총 3꼭지)
가톨릭신문 1면-4단기사/ 4면-사설/ 4면- 인터뷰 박스기사 (총 3꼭지)

기사 양이 많다 혹은 적다라는 지적이 아니라 어쩌면 두 신문의 편집자가 기사 양을 맞추기라도 작정한 것인지 이리도 흡사한 보도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두 신문을 동시에 보는 독자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별력의 차이가 없다면 두 신문 중의 하나는 요즘 하는 말로 중복투자에 따른 통․폐합 구조조정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기는 지난 2004년 수원교구에서 ‘경기천주교신문’을 발행하였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1년을 넘지 못하고 중단된 일도 있다. 교회의 언론이 교구의 이해를 둘러싼 또 다른 세의 확장이 아니길 진심으로 요청한다.

1989년 평화신문의 창간이 어떠한 이해구조 속에서 출범하였는지 혹은 당시의 주교회의는 이에 대해서 어떤 논의를 나누었는지 접근할 자료가 일반인에게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로서는 교회의 이름으로 발간되는 두 신문이 너무도 똑같은 보도성향과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신문이 타고난 생일은 한겨레신문과 같지만 사주팔자는 생일과는 관계없이 자신보다 60여년 앞선 나이의 가톨릭신문과 목소리가 같다고 하는 것은 조금은 설렁한 기분이 든다. 오해하지마시라. 어느 신문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연륜 있는 신문은 거기에 걸맞은 보도가 제격이라면 젊은 신문은 패기 있는 보도가 제격이다. 그러기에 다양한 언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단지 경영권만 다를 뿐 서로가 서로에게 짝퉁의 모습이라면 주교회의는 심도 있게 교회 언론의 현실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것이다.



BONUS!

지난 주 평화신문(933호) 1면에 평양교구 설정 80주년 준비위원회가 메리놀외방전교회에 북한 국보 1호인 대동문을 본뜬 ‘선교 감사비’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측의 국보 1호는 평양성이며, 대동문은 국보 4호이다. 공부하세요.

 

/김유철 2007-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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