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의 교회문화 이야기] 교회 성장이 독이 될 때

얼마 전 개신교 기구에서 일하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거의 이십여 년 만에 만나는 분이라 정담을 나누는 정도로 생각했다가 마침 촛불집회에 종교계가 참여한 때라 이야기가 진지해졌다. 이 때 들은 이야기가 ‘난파선’ 비유였다.


그가 들려준 난파선 이야기의 골격은 이러하다. 그는 지금 한국의 삼대종교를 파도에 휩쓸린 큰 배에 비교했다. 개신교는 이제 막 파도에 맞아 두 동강 난 배로, 불교는 이 보다 먼저 부서져 타고 있던 사람들이 배 조각에 매달려 아우성치는 상황으로, 그리고 천주교는 아직 난파되진 않았지만 양쪽 배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서로 올라타려 해 전복위험에 처한 상황으로 비유했다.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 비유라서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는 작년에 아프간 피랍사태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난 개신교계의 공격적 선교의 문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보수교단 대형교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보이는 노골적인 친미 ․ 친정부 행태, 대형교회 목사들의 교회 세습, 이러한 흐름에 대하여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개신교 전반의 상황 등 때문에 여론이 나빠진 것을 두 동강 난 배로 비유하였다. 불교는 이미 이전부터 언론을 통해 수차례 보도되었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난파선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에서 지난 십년 사이 유일하게 급격한 교세신장을 기록한 종교가 천주교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개신교는 감소, 불교계는 3%에 못 미치는 저성장이었던데 반하여 천주교는 무려 70% 정도 성장하였다. 사실 종교인구가 10% 느는 것도 큰일인데, 70% 가까이 성장했다면 정말 대격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필자는 이후 한국의 종교인구 변동을 삼대 종교 간의 길항작용으로 설명하곤 했다. 다른 요인들도 많지만 삼대 종교가 남한 종교인구의 98%를 장악하다 보니 다른 군소규모 종교들에 대하여 진입장벽이 높아 이들보다는 자신들 내부의 경쟁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에서다. 이렇게 해석해보면 난파선 비유의 의미가 한층 더 분명해진다. 삼대 종교들끼리만 경쟁하는데 이 가운데 두 배가 난파선이라면 승리자는 당연히 천주교일 수밖에 없다는 뜻인 까닭이다. 짧게 생각하면 이러한 현재의 상황은 천주교 신자들에겐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더 옮겨보면 이 일이 그리 기뻐할 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난파해서 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성한 배에 다 올라타면 배가 가라앉는다. 난파는 아니지만 침수로 인해 역시 바다에 빠지게 된다. 사실상 공멸이다. 따라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심보로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불행해지는 상황을 보리라는 것이다. 과거엔 여러 종교가 공존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어 천주교 문제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했는데 경쟁자가 사라지면 홀로 모든 관심과 비판의 중심이 되게 마련이다. 이 때 비판을 홀로 견뎌낼 장사는 없다.

둘째로 난파선의 이치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나 또는 일부가 아무리 정신이 말짱하다 해도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같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파를 방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이들이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이미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면 같이 가라앉는 수밖에 없다. 개신교에도 불교에도 교회갱신과 교단자정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일반국민은 두 종교를 하나의 난파선으로 바라본다.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천주교가 자체의 능력으로 성장하지 않고, 앞에서 말한 예처럼 경쟁자의 부진이나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호감적 이미지 때문에 성장한 측면이 강하다면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한국 천주교회는 바깥에서 보는 이미지와 실제 내부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가 쉬는 교우들의 증가이다. 소극적 신자 층까지 포함하면 네 명중 한 명만이 교회를 지키는 모습이다. 외형적인 화려함이 무색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선장도 조타수도 없는 교회

이 뿐 아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외형이 커지면서 점차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 선장도 조타수도 없는 모양새다. 이제는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 커진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개신교가 그러했듯이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모습들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계속 늘어나 위기상황을 체감하기 어렵다. 교세성장이 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회쇄신에 헌신하는 이들의 고통이 더 커져간다.

한국의 세 종교가 평화롭게 자신의 본모습대로 잘 살아가는 것이 서로 난파를 막는 일이라는 것이 내가 들은 난파선 비유의 핵심이다. 난파를 막기 위해서는 서로 쇄신과 자정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쇄신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하는 교회와 종교만이 자신은 물론 남도 난파시키지 않을 수 있다. 교회 쇄신이 다른 어느 시기보다 중요성을 갖는 이유이다. 과연 한국 천주교회는 쇄신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는가? 교회와 나 자신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2008.7.21.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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