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 때, 은사이신 신부님의 사모곡을 받았습니다. 임의 꾐에 넘어가 평생을 역사비평과 해석학을 기반으로 역사의 예수를 찾았던 정양모 신부님께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글이었습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음미하다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독자들에게 신부님의 사모곡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신부님의 사모곡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익명의 벗들까지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사랑이신 신부님의 글을 소개하면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요즘은 어머니의 꽃다발이 자꾸 생각납니다. 치매를 앓으셨던 어머니가 온전한 정신이 들라치면

“꽃다발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큰 신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해 주시게.”

하는 어머니 말씀에

“꽃다발은 왜요?”

하고 물으니

“저승 가서 성모님께 드릴 어여쁜 꽃다발이....”

그때 나는

“어머니는 이미 꽃다발을 다 만드셨습니다”

라고 했다. 깜짝 놀란 어머니가

“그런 말씀 마시게. 아직도 너무 초라해 성모님 앞에 어찌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하시며 손사래를 치셨다.

나는 가녀린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어머니의 삶 자체가 아름다운 꽃다발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했다.

 

근데 지금 내가 저승문 앞에 섰다. 나는 어떤 꽃다발을 준비했는가. 오래전 어머니와 나눴던 그 대화가 자꾸 나를 애타게 한다. 이제 곧 구십이 되는 데도 나는 주님 대전에서 어떤 성적표를 들고 가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벌써 가고도 남았을 세상을 살고도 미련하고 아둔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오늘은 성탄, 많은 이들과 기쁨과 환희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연락이 없어도 오랫동안 오가지 않고서도 나를 기억해 주고 또 내가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순간 그들이 한 송이 두 송이 꽃이 되어 살아난다. 그리고 큰 꽃밭이 되었다. 어머니가 걱정하시던 그 꽃다발을.

“아~~~ 이들이 정녕 나의 꽃다발이었구나”

라는 탄성과 함께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때론 스승이 되어 내게 깨우침을 주고, 때론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던 어머니가 되어 주고, 때론 친근한 누이가 되어 주던 이들이 어느새 내 골고타 언덕의 친구가 되었다. 젊은 시절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잘 살 수 있다고 큰소리쳤던 오만함과 교만함을 이제야 살며시 내려놓는다.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 남은 내 생애 가장 건강한 몸과 가장 똑똑한 나의 머리로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또 감사한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기도 ~사사사사~를 읊으며.

2023년 성탄절에

안동교구 사벌 성당에서 정양모 신부님. 신부님은 안동교구 상주의 목가공소가 고향이다. 신부님은 평생을 하느님의 속삭임에 빠져 역사의 예수를 찾았다. 정양모 신부님의 어머니는 생전에 아들 사제들에게 "사제는 돌이 되려거든 큰 바위가 되고, 나무가 되려거든 죽은 고목이 되고, 물이 되려거든 넓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라고 훈계하셨다고 한다. ©장영식
안동교구 사벌 성당에서 정양모 신부님. 신부님은 안동교구 상주의 목가공소가 고향이다. 신부님은 평생을 하느님의 속삭임에 빠져 역사의 예수를 찾았다. 정양모 신부님의 어머니는 생전에 아들 사제들에게 "사제는 돌이 되려거든 큰 바위가 되고, 나무가 되려거든 죽은 고목이 되고, 물이 되려거든 넓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라고 훈계하셨다고 한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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