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가톨릭평론> 41호(2023년 가을)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

* 이 글은 2013년에 봉헌생활의 해 기념을 위해 여자장상연합회-주교회의 사목연구소가 계획한 연구 논문 중 하나인 본인의 논문을 현시점에 맞게 재구성했다. (이현숙, '해외 수도생활의 도전과 희망: 활동수녀회를 중심으로',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의 봉헌생활 현실과 쇄신방향에 관한 연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7) 이 글은 다양한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내용에 기초한 작업이다. 대륙별(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북미와 남미)의 수도생활 쇄신 경험과 도전에 대해 수도자 성성에 보내는 보고서, 수도생활 쇄신의 선구적 역할을 했던 미국 수녀회의 드라마틱하고 생생한 경험과 기록, 교회 운동들과 새로운 공동체에서 시작된 수도생활에 대한 기록, 여기에 더해 오대양 육대주에 회원을 가진 국제 수녀회 일원으로서 본인이 이탈리아 관구와 총본부에서 보고 체험한 생생한 경험이 아우러져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외부 관찰자가 작성한 글이 아니라, 수도 생활 내부에서 작성한 생생한 체험을 담았다는 특징이 있다.

교회쇄신과 수도생활 쇄신에 앞장선 수녀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혁이 종교생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목적 쇄신을 결정했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수도생활 쇄신이 시작되었다. 서구 여성 수도자들은 누구보다 앞서 적극적이고 용감하게 이 변화에 자신을 개방했다. 그 직접적 이유는 공의회 이전부터 서구에서는 이미 성소 감소 징후가 감지되었고, 사도직 현장에서 자신들이 세상의 변화에 뒤처져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쇄신을 위한 노력에도 성소 감소와 노령화가 계속되었고, 마침내 수녀회 존속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수도생활 쇄신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오자 교도권은 수도생활 쇄신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던 수녀들, 특히 미국 여자수도자리더십회의(이하 ‘LCWR’)1)에 그 책임을 묻는다. 2000년을 전후로 시작된 이러한 의혹은 세 차례에 걸친 조사(1984, 2008, 2012년)로 이어졌고, 수도생활 쇄신 50주년이 시작되는 2014년 봉헌생활의 해 선포를 시작하면서 이들에 대한 조사를 종료하고, 사도직 방문 결과의 최종문서2)를 통해 수녀들에게서 아무런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걸 공식 발표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5년 4월 LCWR 대표들을 바티칸에 초대해 간접으로 이들의 의혹에 대해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미국 수도자들이 누구보다 더 복음적으로 가난한 이를 위해 투신한 것을 확인했으며, 현대에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교회와 함께 가자는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수도생활 쇄신은 공의회에서 시작된 교회쇄신이 그러한 것처럼, 좌충우돌하면서 길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이 여정에는 네 부류 흐름이 감지된다.

현대 수도생활의 네 부류 흐름

첫째, 교도권의 감독을 받으며 ‘공의회 이전 전통으로 돌아가기.’ 둘째, ‘우리에게 다시 돌아갈 길은 없다’는 모토로 복음 정신을 현대 사회·문화에 적응하며 ‘뉴노멀’ 찾기. 셋째, ‘복음 정신 회복과 전통 쇄신’ 그 중간 어딘가에서 교도권의 쇄신 지침에 따라 방향을 잡기. 넷째, 공의회 정신을 기초로 시작된 ‘교회운동들과 새로운 공동체 운동’에서 태어난 수도생활. 그 특징은 남녀노소, 성직자와 수도자가 혼재한 공동체로 공의회 공동체 정신과 새로운 관계 양식을 추구하며 창조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사도직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수도생활 쇄신에 대한 경험은 대략 두 가지다. 전통적인 수도복이 오늘날 약식 수도복으로 바뀌었고, 최고 장상 중심의 통치체제가 평의회와 회원의 의견 수렴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노드적인 제도로 변화했다는 사실 정도다. 이 외에 서구 수녀들처럼 극적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현재 급속한 성소 감소와 노령화 문제 역시 서구 수녀들처럼 충격 강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한국 수녀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질문해 본다. 평화로운 생존을 위해? 혹은 수도회 창립자의 은사를 마지막까지 수행하기 위해 고군분투? 이러한 노력에 도움이 될 만한 주제, 즉 서구 수녀들의 60년간 경험에서부터 드러난 의미 있는 이슈를 살펴보기로 하자.

수도생활의 정체성과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

수도생활의 쇄신은 수도자 스스로에 의해서라기보다 교도권의 권고로 시작되었으며, 우선적 관심사는 어떻게 수녀회가 교회에 더욱더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생활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본질은 수도생활 역사를 돌아보며 깨닫게 된다. 초세기부터 교회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수도생활(은수, 독수, 정주 혹은 탁발, 관상 선교와 애덕활동 수도회)이 있었다. 이러한 다양함을 관통하는 한 축은 하느님께 매료된 이들 그리고 당대 교회와 세상의 필요에 대한 복음적 응답이다. 따라서 수도생활은 결코 세상과 유리된 별개의 삶도 아니고, 또한 교회 안에 밀폐된 존재도 아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며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세상의 시대적 표징에 “반응하고 저항하면서 한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를 증거하는 존재였다.”3)

오늘날 활동수녀회는 전통적인 수도복에서 약식 수도복으로 바꾸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br>
오늘날 활동수녀회는 전통적인 수도복에서 약식 수도복으로 바꾸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교회와 세상으로부터 수녀들이 받은 충격

첫째, 교회로부터 받은 충격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의 신분을 제도교회 안에 두어야 할지 밖에 두어야 할지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마침내 평신도 신분에 귀속했다. 이는 과거 수녀들의 정체성과 임무에 도전과 모호함을 남긴다. 산업혁명 이후 시작되어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전성기를 보낸 활동수도회는 수도승적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수도승과 동등한 서원을 했다. 

평신도보다 하느님께 더 가까이하며 거룩함의 소명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우월성을 인정받았고, 세속화로부터 교회를 수호했기에 가톨릭교회의 성스러운 기사들로 불렸다. 또한 다양한 애덕 활동(성당, 교육, 의료, 복지)으로 교회와 세상의 현대화에 기여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에는 교회 안에서 평수사와 수녀들은 성직자의 특수 직무와 평신도들의 새로운 정체성과 임무(하느님 백성 일원으로 거룩함의 소명과 그리스도의 삼중직무 수행) 중간에서 성직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신도도 아닌 존재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다른 한편으로 세상에 대한 교회의 이분법적 사고 극복, 그 이상과 실행 모순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 이유는 세상에 대한 이상과 실행의 모순 때문이다. 공의회는 세상에 대한 사고 전환, 즉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어 거리를 두어야 할 곳이 아니라 하느님이 활동하시는 장소라고 말했고, 수도자는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복음화에 투신하는 수녀들의 활동, 특히 복음 정신이 정치 사회 문제와 충돌할 때 세상과 거리를 둘 것을 명했고, 수녀들을 교회 안에 묶어 두려는 모순된 행위로 보였다. 이로 인해 수녀들은 많은 갈등과 긴장을 체험한다.

둘째, 사회·문화적 변혁으로부터 받은 충격

활동 수녀회 출범 당시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부각되었던 점(결혼 이외에 다른 가능성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교육과 사회 진출 기회, 신심과 도덕적 이상 실현 기회)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그 의미를 잃는다. 오늘날 여성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선택권과 자기계발 기회가 있으며, 더욱이 여성에 대한 전근대적 사고와 태도를 고수하는 교회에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한다. 여기에 출산 감소라는 사회 현상이 작용했으며, 그 결과 성소 감소와 노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재정 타격도 받는다.

‘복음적 삶’과 ‘전통’ 사이의 긴장과 갈등

수도생활 쇄신이 시작된 후 나온 교도권의 지침을 살펴보면 그 긴장과 갈등이 확인된다.

1968년 바오로 6세의 교서 '거룩한 교회'에서 복음적 삶과 전통 쇄신을 말한다. 이어서 1971년 '복음의 증거'는 복음적 삶을 중심에 둔 쇄신을 권고한다. 이어서 1978년에서 1994년까지 요한 바오로 2세는 복음적 삶이 전통의 연속 선상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4) 그는 두 가지(내적인 삶의 재활성화, 복음의 증거로서의 정의 추구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특히 복음의 증거는 수도생활 전통(공동체 안에서 서원의 삶, 서원의 공적 증거, 공동생활, 수덕적 삶)과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했고, 특히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거리를 둘 것을 명했다.(수도회성성 지침서, '수도자와 인간 진보', 1980) 그러면서 같은 해에 발표된 수도회성성 지침서 '수도생활의 관상적 차원'(1980)에서도 수도자의 활동에 깊은 영적인 삶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이러한 방향은 1996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수도생활에 대한 권고 '축성생활'에 요약된다. 관상과 활동의 관계를 재확인하며 그리스도와 신비적 관계에서 얻은 영적 체험, 즉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그리스도 신비에 동화한 관상은 수도생활의 추동력이라고 정의했다.('축성생활', 16, 18, 23-24항) 이로 인해 새로운 자아를 갖게 된 수도자들은 형제적 친교를 나누고, 고통받고 소외된 형제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고 수난과 고통에 참여하게 된다.(75항) 이는 사랑의 봉사(3장)이며 삼대 서원은 이 시대 시류를 거스르는 예언자적 증거(3장 II)다. 이러한 예언적 증거는 교육과 문화의 복음화, 교회일치와 종교 간 대화(3장 III)라는 새로운 사명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노멀에서 뉴노멀’을 향해: 착한 수녀에서 예언자적인 수녀로 거듭나기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현시대가 요구하는 사회·문화적 요소들에 적응하는 새로운 표준new normal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수녀들이 좀 더 깊게 숙고해야 할 주제는 다음과 같다. 수도생활 신학의 발전과 서원 재해석, 공동체 삶의 쇄신, 수도자의 직무, 재정, 공동체와 개인의 복음적 웰빙well-being, 교구와 관계 개선 등이다. 이 주제들은 대부분 수도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그리고 어떤 면에서 여전히 보존하려고 애쓰는 ‘노멀’에서 ‘뉴노멀’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된 주제들이다. 수도생활 신학 발전과 서원의 재해석은 수도생활의 고유성과 특수성 재조명을 위한 것으로, 우선 교회의 다른 구성원“보다 더 그리스도를 가까이”라는 모호함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수도자의 삶은 다른 이들에 비해 특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별 회원의 고유성 실현과 공동체 기여, 더욱더 유연한 사도직 공동체, 여성으로서 자의식 향상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수도자들은 삶에 대한 지속적 영속적 투신을 꺼리는 세상에 복음적 기쁨을 증거할 수 있다. 이는 이타적 봉헌의 삶으로 세상 폭력에 맞서 인간 생명에 대한 가치의 증거이자,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물론 모든 피조물과 관계성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드러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도생활의 근본 목적인 ‘인간성 건설과 새로운 문화 형성의 조성자’ 역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더 깊고 넓은 차원에서 시대적 표징을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세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깊은 영적인 능력 함양과 전문직 양성이 필요하며, 둘째 수도회들 사이의 연대와 연합을 통해 수도회 쇄신을 이끌어야 한다. 셋 째 시대적 표징에 대한 수녀들의 강도 높은 투신을 뒷받침해 줄 제도 교회와 관계 개선이다.

"첫째, 실수할 용기를 가지십시오. ...... 의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고, 설명할 것이 있으면 설명하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문을 열어젖히고 생명이 부르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하십시오. 자신 안에 남아서 병든 교회(수도자)가 되기보다 이런 교회(수도자)를 선호합니다. 둘째, 삶과 행동으로 증거하십시오. 이는 인간의 뜻을 따르는 전통적인 펠라기우스주의Pellegianeism 즉 엘리트적-종파적 신영지주의적 앎을 우선시하는 현시대의 정신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셋째, 수도회 가족, 국제적-국내적 협력을 통해 책임감과 방향을 결정하십시오. 넷째, 주교들과 계속적인 대화를 단념하지 마십시오. 지금 수도자의 삶에 주어진 특별한 순간들을 심화하십시오. 태양의 시간입니다. 열려진 시간을 잘 선용하십시오! 우리의 미래에 하느님에 대한 충분한 신뢰와 열정을 성장시켜야 합니다."(라틴아 메리카 수도자모임에서 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권고, 2013)

1) 미국에는 두 종류의 수녀연합회가 있다. 하나는 ‘여자수도자리더십회의(LCWR: Ledership Conference of Women Religious)’ 다른 하나는 ‘여자수도자장상연합회(CMSWR: Conference of Major superior of Women Religious’다. 전자는 복음에 기초한 창조적 쇄신과 수도생활의 ‘뉴노멀’을 추구하며, ‘우리에게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없다’라는 모토를 갖고 있다. 반면 후자는 ‘전통으로 돌아가기’라는 모토로, 공의회 이전의 수도생활을 재현하고자 하며 교도권의 감독을 받는다.
2) De Avoz Card. Prefect(Carballo Arcibishop Secretary of Congregationis Pro Institutis Vitae Consaegrate et Societatibus), “Final Report on the Apostolci Visitation on Institutes of Women Religious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equela Christi 2014.2, pp.163-167.
3)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황경희 옮김, "역사의 도전 앞에 선 수도생활", 생활성서사, 2004, 156, 162쪽.
4) 교황청 수도회성성, '수도자와 인간의 진보'(Religious and Human Promotion), 1980; 요한 바오로 2세, '복음의 보여지는 징표'(Visible Signs of Gospel), 1980; 요한 바오로 2세, '복음에 대한 충실성'(Faithfulness to the Gospel), 1982; 요한 바오로 2세, 수도생활에 대한 사도적 권고 '축성 생활'(Vita Consecrata), 1996; 교황청 수도회성성 규범, '사도직 활동에 헌신하는 수도회에 적용할 수도생활에 관한 교회 가르침의 본질적 요소'(Essential Elements in the Church’s Teaching on Religious Life as Applied to Institutes Dedicated to Works of the Apostolate), 1983.

이현숙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가톨릭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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