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관동대학살이 일어났던 곳 가운데 한 곳인 도쿄 아라카와 강변 모습. 100년 전의 피의 강에서 이제는 생명의 강이 되어야 한다. ©장영식<br>
관동대학살이 일어났던 곳 가운데 한 곳인 도쿄 아라카와 강변 모습. 100년 전의 피의 강에서 이제는 생명의 강이 되어야 한다. ©장영식

1923년 9월 1일, 관동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 여파로 발생한 대화재로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 지역은 궤멸하다시피 큰 피해가 생겨났습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14만 명에 이르렀고, 이재민은 340만 명에 달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는 대지진의 참변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민심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경찰과 자경단을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관동대지진을 관동대학살로 몰아갔습니다. 관동대학살 희생자 대부분은 조선인들이었습니다.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은 관동대학살 100년에 부쳐 "일본 정부는 수치스러운 역사적 과오 앞에 용기를 내어 대한민국에 용서를 빌고, 일본에 양심을 돌려주며, 인류에 사죄하기를 요청합니다"라고 말했다.&nbsp;©장영식<br>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은 관동대학살 100년에 부쳐 "일본 정부는 수치스러운 역사적 과오 앞에 용기를 내어 대한민국에 용서를 빌고, 일본에 양심을 돌려주며, 인류에 사죄하기를 요청합니다"라고 말했다. ©장영식

그들은 폭도로 변한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했으며,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 날조된 유언비어를 퍼트렸습니다.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유언비어는 순식간에 관동 지역 일대에 퍼졌습니다. 관동 지역에서 살고 있던 조선인들은 조작된 유언비어로 6000명 넘는 사람이 참혹하게 살해당했고, 시신들은 유기되었습니다.

자경단은 조선인들을 향해 죽창과 일본도, 곤봉과 철봉 등으로 살해했고, 경찰은 총검으로 살해했습니다. 이들은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했습니다. 이들은 시신조차 찾을 수 없도록 악랄하게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했습니다.

씨알재단 내의 1923한일추모사업단 대표 함인숙 목사는 추도사에서 "우리는 100년 전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우리 조상님들의 영혼을 학살 현장인 아라카와에서 깨우려 합니다"라고 말했다.&nbsp;©장영식
씨알재단 내의 1923한일추모사업단 대표 함인숙 목사는 추도사에서 "우리는 100년 전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우리 조상님들의 영혼을 학살 현장인 아라카와에서 깨우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장영식

관동대학살 100주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정부는 대학살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일을 말하면 반국가세력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참담하고 암울한 역사적 시기에 “씨알”재단은 9월 3일 학살 현장 중 한 곳인 일본 동경도 스미다구 아라카와 둔치에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도 위령제'를 열었습니다. 추도 위령제에서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은 “그 많은 희생자의 유해도, 유골도 행방이 묘연한 채 또다시 세월만 무심히 흘러 어느덧 100년이 지났습니다. 한 세기가 다 가도록 진상조사도, 사건 규명도 이뤄지지 않은 채 말입니다.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더는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숨겨서도 안 됩니다”라며, “일본 정부는 수치스러운 역사적 과오 앞에 용기 내기를 바랍니다. ‘100년의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고백되며 충분하고 적절한 사후 조치가 즉시 이행되기를 강력히 그리고 간곡히 촉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 보존회에서는 상여모심을 통해 원혼들의 해원상생을 기원했다.&nbsp;©장영식<br>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 보존회에서는 상여모심을 통해 원혼들의 해원상생을 기원했다. ©장영식

씨알재단 내의 한일추모사업단대표 함인숙 목사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혼령이시여! 우리가 왔습니다”라며, “우리는 100년 전에 억울한 죽임을 당한 우리 조상님들의 학살 현장인 아라카와에서 깨우려 합니다. 6661장의 넋전을 달아 매어 깨우려 합니다”라며 절규했습니다. 함인숙 목사는 “앞으로 우린 님들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이제 지난 100년의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오늘부로 아라카와 강물에 씻어내소서. 더는 핏물이 흐르던 아라카와가 아니라 다른 백 년을 꿈꾸는 생명의 강이 되게 하소서”라며 대학살에 희생된 이들을 절절하게 추도했습니다.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양혜경 이사장은 '넋전춤'으로 관동대학살 조선인들의 원혼들의 위로와 해방을 기원했다.&nbsp;©장영식<br>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양혜경 이사장은 '넋전춤'으로 관동대학살 조선인들의 원혼들의 위로와 해방을 기원했다. ©장영식

이날 추도 위령제에 참석한 이들은 새벽부터 학살당한 이들을 상징하는 6661장 넋전을 아라카와 둔치에 달았습니다. 공주에서 온 상여소리보존회에서 ‘상여모심’이 있었고,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양혜경 이사장의 ‘넋전춤’ 공연이 있었습니다. 또한 아라카와 둔치에서 '관동대학살 100주기를 맞이하는 아라카와 평화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도 위령제에 시용한 6661장 넋전들을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장하며, 원혼들의 해원과 영생을 빌었다.&nbsp;©장영식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도 위령제에 시용한 6661장 넋전들을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장하며, 원혼들의 해원과 영생을 빌었다. ©장영식

9월 5일, 씨알재단 내의 ‘1923한일추모사업단’은 아라카와 둔치에서 열린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도 위령제'를 마치고 위령제에 사용했던 6661장 넋전들을 모아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장예식을 거행했습니다. 화장예식은 오열 속에 진행했으며, 넋전들이 하얀 재가 될 때까지 장엄하게 이어졌습니다.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도 위령제와 화장예식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nbsp;©장영식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도 위령제와 화장예식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장영식

관동대학살이 일어났던 1923년 9월 1일,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학살당했던 원혼들을 기억합니다. 지금까지도 구천을 떠돌며 절규하고 있던 원혼들을 기억합니다. 관동대학살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제노사이드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원혼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고백과 사과 없이 용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씨알이 깨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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