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기쁨과 희망 31호(2023 여름)에 실린 글입니다.

평안하신지 안부를 묻기조차 주저되는 시절입니다. 평화를 갈구하지만 나라 밖 전쟁은 끊이지 않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은 전쟁 못지않습니다. 세상이 풍족해진 것 같지만 가난하고 몸과 마음이 병들고 성난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지요. 성경을 묵상하며 인간의 타락, 하느님의 인내와 꾸중과 구원, 인간의 반성과 회복이 반복되는 것을 깨닫고, 지금 우리 사회는 성경에서 어느 시대에 해당하고, 나와 검찰은 누구에게 해당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벨을 질투하여 쳐 죽이고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하느님의 질타를 듣는 카인이 저와 검찰인 듯해 무서웠지요.

"야훼께서 법률가들에게 물으셨다. “사법정의가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우리가 사법정의를 지키는 자들입니까?” 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너희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시면서 꾸짖으셨다. “불의로 고통받은 어린 양들의 울음소리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9-10 변용)

카인은 우리 주변에도 많습니다. 입으로는 법과 정의, 공정과 상식을 외치고 실제는 법을 구부리고 정의를 잘라내어 권력에 충성하는 법률가들이 바로 카인이지요. 그들은 그렇게 협력해 악을 행하고, 하느님은 법률가들의 죄악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지금도 듣고 계십니다.

장면 1. 전관예우Ⅰ- 어느 검사의 궤변

“피의자가 변호사비를 쓴 건 양형에 반영해야 해. 벌금 낸 거잖아?” 점심시간, 후배들을 가르치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벌금은 나라에 내는 거고 변호사비는 변호사가 받는 건데 전혀 다르잖아요? 입속을 맴돌던 말은 결국 사그라들었습니다. 선배가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기도 하고, 혼자 튀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으니까요. 안에서 그런 말이 거침없이 오가는 검찰이 밖으로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전관예우를 부인해도 시민들은 믿지 않지요. 2016년 정운호 게이트로 구속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1년 소득신고액만 100억 원이 넘었고, 변호사 몇 년 만에 오피스텔 123채를 사들였던 걸 다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에게 돈을 쓴 만큼 범죄자의 죄와 벌이 줄어드니 전관 변호사 선임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갑니다. 검찰이 눈감아 준 죄와 벌은 검찰에게로 돌아오지요. 검찰이 쌓아 올리는 바벨탑.

장면 2. 전관예우 Ⅱ- 먹거리가 된 검찰권, 사라진 정의

이제는 수사한 결과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건들만 경찰이 검찰에 송치하고 기소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사건은 자체 종결하고 있습니다만, 얼마 전까지 수사 종결권은 검찰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사권 조정 논란 때마다 검찰은 ‘국민을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국가공무원법에서 금지하는 집단행동을 불사하고 검찰권 사수를 위해 전력을 기울여 막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지요. 십여 년 전 모 차장검사가 검사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수사 종결권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자네들도 언젠가 변호사를 하지 않나? 이젠 형사재판도 법원 전관들의 시장이 되었어. 검찰 전관들의 블루 오션은 불기소 사건이야. 종결할지, 말지. 보완 수사를 할지, 말지. 보완 수사를 어떤 방향으로 할지. 검찰 전관들은 그걸로 먹고 사네.” 그때 알았습니다. 일에 치여 사는 젊은 검사들에게 사건은 ‘일거리’지만, 결재 도장만 찍고 변호사로 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간부들에게는 사건이 ‘먹거리’라는 걸. 대장동 50억 클럽 명단을 통해 힘과 돈이 없는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값비싼 야시장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천벌 받을 것들, 부정한 되로 부정 축재한 것들을 나 어찌 용서하겠느냐? 자루에는 엉터리 추를 넣어 가지고 다니며 맞지도 않는 저울을 쓰는데 어떻게 죄 없다고 하겠느냐?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너희를 치리라. 그런 죄를 보고 어찌 멸망시키지 않겠느냐?"(미가 6,10-12 공동번역 )

장면 3. 상명하복, 양심을 짓밟고 올라가기 Ⅰ

“인천지검장 때인 86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지휘하며 권력 핵심부의 축소 조작 압력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이 같은 소신 덕분에 은폐될 뻔했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은 만천하에 드러났고 결국 성고문 경찰관이 구속됐다” 2001년 8월 8일 중앙일보에 실린 김경회 안드레아 전 형사정책연구원장에 대한 기사입니다.

“김수장 부장은 몇 번인가 더 (김경회) 검사장실을 들락거리면서 구속 수사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사부의 한 검사는 참다못해 검사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검사장이라는 자리가 무얼 하는 자리입니까? 대검이나 청와대의 압력을 막아서 부하 검사들이 소신 있게 일할 수 있게 하는 것 아닙니까? 윗선 눈치만 보려고 검사장 자리에 연연하시는 것은 안 되지 않습니까?’”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수사한 당시 인천지검 검사의 자서전 일부입니다.

“후일 그(김경회)를 만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느냐. 이것은 중범죄’라고 강하게 항의했더니,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한계와 검찰의 무력함을 솔직하게 시인했습니다.”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기도" 일부입니다.

김경회는 1986년 7월 ‘성고문 경찰관의 강제추행 혐의는 무혐의, 가혹행위는 기소유예’라는 황망한 수사 결과를 직접 발표하라는 대검 지시에도, 검사장실에서 버텨 결국 김수장 부장으로 하여금 대신 발표케 하는 항명으로 강직하다는 평가와 출세라는 열매를 모두 거머쥐었지요. 상명하복하여 사법정의를 짓밟은 김경회는 무탈하게 고검장으로 승진했고, 김수장 역시 서울지검장을 달았습니다. 김경회의 인천지검이 면죄부를 준 성고문 경찰관은 87년 6월 항쟁 이후 피해자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사법부의 뒤늦은 공소제기명령으로 기소되어 결국 실형을 살았습니다.

지난 3월 2일, 검사 적격 심사위원회 출석하는 날에 임은정 검사가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MBC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지난 3월 2일, 검사 적격 심사위원회 출석하는 날에 임은정 검사가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MBC News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장면 4. 상명하복, 양심을 짓밟고 올라가기 Ⅱ

2023년 3월 2일. 저는 검사적격심사위원회 출석을 위해 법무부에 갔습니다. 2010년 12월 상가집에서 서지현 검사를 공공연하게 추행했던 안태근 검찰국장 등으로부터 2016년 적격심사를 받았던 저로서는 더 이상 그런 부적격자들로부터 적격심사를 받을 수 없어 위원 명단을 사전에 요청했습니다만, 당연히 거부됐습니다. 부득이 회의실에서 위원들 면면을 살펴 부적격자를 가려내어 문제 제기해야 할 상황. 기피 신청 예정임을 사전 경고했더니 한동훈 장관이 지명한 위원인 검사장 3명이 다행히 회의에 나오지 않아 위원장과 위원 6명, 주무부서장인 법무부 검찰과장 등으로 회의실이 차 있더군요.

심층 검토 대상자 자리에 앉아 둘러보았습니다. 2005년 부산지검 부장검사로 재직할 때 대검 간부의 글에 단 제 댓글로 불러 결재받지 않고 댓글을 썼다며 질책하고 삭제 지시까지 했던 박정식 전 고검장이 위원장인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한석리 검사장이 위원인 현실은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상사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하고 과거사 재심 사건 무죄 구형을 강행했던 2012년. 한석리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검사로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헐값 매입 사건’을 담당했지요. 무혐의 결정하라는 대검 지시에 맞서 기소해야 한다고 제법 버텼던 것으로 압니다. ‘불기소 이유가 안 써진다/무혐의 결정해라. 대검에서 불기소 이유 써주겠다’ 대검과의 설왕설래를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그 말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떠올랐지요. 30년 전 대검에서 인천지검의 구속 의견을 꺾고 성고문 경찰관을 불기소하라며 불기소 이유를 보내줬다던데, 검찰은 2012년에도 여전한가 싶어 어찌나 한심하고 개탄스럽던지. 한석리 검사는 결국 불기소했고, 그 잠시의 버팀은 “당시 무혐의 결정했지만 대검의 무혐의 지시에 맞서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미담으로 언론에 소개됐습니다. 잠시의 버팀조차 거의 없는 바람개비 검찰을 풍자하는 기사가 아니라는 게 서글플 따름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 교체 이후인 2018년 재수사로 비로소 구속됐습니다.

위법한 지시에 따를 것인가, 법과 원칙을 따를 것인가. 2012년의 선택이 저와 달랐던 한석리 검사장이 위원으로 앉아있는 걸 바라보며 ‘끝까지 버티면 부적격 검사이고, 버티다 말면 검사장인가’ 싶어 무참했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저를 통해 부적격 검찰을 드러내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견뎠습니다.

"저기 쓴 글자들은 '므네 므네 드켈.' 그 다음은 '브라신.'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보시고 마감하셨다.'는 뜻입니다. '드켈.'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브라신.'은 '왕의 나라를 메대와 페르시아에게 갈라주신다.'는 뜻입니다." 저기 쓴 글자들은 '므네 므네 드켈.' 그 다음은 '브라신.'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보시고 마감하셨다.’는 뜻입니다. ‘드켈.’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브라신.’은 ‘왕의 나라를 메대와 페르시아에게 갈라주신다.’는 뜻입니다."(다니 5,25-28 공동번역)

2001년 검사로 임관했는데, 그때도 검찰개혁 논의가 한창이었습니다. 검찰개혁 공약은 선거 때마다 약방의 감초잖아요. 그런데 정작 정권을 잡으면 권력은 법을 구부려 내 편을 들어주고 정적을 칠 부패한 검사들을 중용하여 검찰을 정권의 도구로 쓰고 싶은 욕망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검찰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와 같아서 평범한 인간들은 눈이 멀어 버리거든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으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법무부 검찰과 책장에 꽂힌 책이 카멜레온인 듯 완전히 바뀌어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는 이들이 속출했지요. 기꺼이 정권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꿀 검사들이 검찰에 즐비하니 그렇게 서로는 윈윈(Win-Win)했습니다.

구舊공안/신新공안/문민공안/열린공안.... 정권 교체에 맞추어 속칭 공안통 주류로 새로이 편입한 검사들을 그렇게 구별하여 불렀다더군요. 출신지, 혈연, 학맥 등 이런저런 인연에 기대어 검찰 주류에 그런 식의 변화가 없지 않았습니다만, 권력과의 인연 등으로 인한 변화일 뿐 검찰조직관, 가치관, 출세욕 등에서는 차이는 전혀 없습니다. 법과 원칙이 아니라 상명하복이 최우선인 조직문화는 그렇게 강고화됐지요. 김경회 검사처럼, 한석리 검사처럼 시키는 대로 해야 승진하는 걸 검사들은 수십 년간 보고 듣고 겪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그렇고 그런 검사들이 계속 중용되는 걸 보고 이번에도 검찰개혁이 실패할 거란 걸 직감했습니다. 검찰은 언제 우리가 네 편이었냐는 듯 안면몰수하고 홍위병이 되어 충성을 다했던 종전 권력을 겨냥한 수사로 정의의 심판자 행세를 하고, 야바위꾼처럼 자체 개혁을 추진하는 체하면, 속사정을 모르는 시민들은 속기 마련이지요. 일말의 기대를 접고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이 얼마나 자정 능력이 없는지 보여 줄 수 있는 사례를 골라 감찰 요청하고 부패 신고를 하고 고발장과 민사소송 소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에 2015년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은폐 건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권남용으로 부패 신고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자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고언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요.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데, 그의 역할이 너무도 막중하니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 없었으니까요. 검찰총장 취임 때부터 조마조마하게 그 행보를 지켜본 검사로서 총장 사퇴 후 대선으로 직행하는 걸 보며, 검찰이 망하겠구나 싶어 한동안 서글펐다가 이제는 담담합니다. 검찰은 정권에 기생하며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어 정권 교체에도 권력을 유지해 왔는데, 검찰이 정권이 되는 순간 검찰은 이제 한 몸인 정권과 함께 심판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막중한 검찰권을 부여받은 검찰이 이를 감당할 그릇이 못 되니, 이제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검찰권이 쪼개질 일만 남았습니다.

"너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보초로 세운다. 너는 나에게서 경고하는 말을 받거든 그대로 일러주어라."(에제 33,7 공동번역)

2012년부터 검찰 내부망에 동료의 각성을 촉구하는 글을 정기적으로 썼습니다. 그때는 조금만 목청을 높이면 동료의 생각과 행동이 일어날 줄 알았거든요. 저의 은사가 요나의 축복이 아님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요. 동료의 말이 돌팔매로 날아들어 숨쉬기 버겁고, 언론의 왜곡 보도에 가족들까지 힘겨워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린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을 주님께 보내어 “당신이 그니이까?” 확인한 것처럼 저 역시 수시로 흔들려 주님께 묻곤 했습니다. 제가 주님 뜻대로 하고 있는 게 맞습니까. 그런데 왜 이 돌팔매 속에 저를 버려두십니까.

힘겨울 때마다 수시로 예레미야 애가와 에제키엘을 묵상하곤 합니다. 같은 말이어도 상황에 따라 뜻이 달라진 지 오래. 검찰이 한결같이 외치는 ‘법과 원칙’이 자기편과 적에게 전혀 다른 의미인 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검찰이 쌓아 올린 죄의 바벨탑이 하늘에 닿아 서로의 말을 이제 알아듣지 못하니 심판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습니다. 일몰의 검찰에서 힘겨워도 제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겠지요. 주어진 십자가가 들 만하고 견딜 만한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유관순 위인전을 읽으며 아쉽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지거나 폭탄을 던져야지, 감옥에서 만세를 부르면 뭐 하나 싶었거든요. 몇 해 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들렀다가 깨달았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만세 소리는 고문실 등지에서 터져 나오는 독립 투사의 비명과 신음소리에 흔들리고 방황하는 동지들에 대한 핏빛 응원이고, 덕분에 동지들이 감옥에서 버텨냈다는 걸. 사람의 그릇이 제각각이어서 시대를 깨우는 소리도 있을 테고, 나단 선지자처럼 어리석은 권력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깨우는 소리도 있을 테지요. 제 능력이 부족하여 그런 소리는 못 되지만 불의한 시대에 몸을 부딪치고 깨어져 감추어진 불의를 드러내는 소리라도 되어 볼 각오입니다. 떨치고 일어나 외치는 우리들의 소리가 어우러져 합창이 될 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역사가 한 발 내딛게 됨을 믿습니다.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와 같은 우리 사회에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그 소리가 메아리 없는 비명이 되지 않도록 저 역시 일어나 함께(syn) 그 길(hodos)을 걸으며 계속 외치겠습니다. 제가,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지켜 주소서.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임은정

대구지검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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