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를 넘게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무섭고 또 무겁게 내리는 비로 인한 안타까운 비 피해 소식과 사고 소식 중에도, 일상은 여전히 여러 일들로 비워지고 또 채워지기도 합니다. 제가 있는 곳도 장맛비가 많이 내려 산사태를 주의하라는 안전안내문자를 수시로 받기도 하고, 계속된 비로 인한 안전상의 이유로 며칠간 기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대가 높은 곳이라 큰 위험은 없었습니다. 지대가 높아 안전함을 느낄수록 자연히 반지하에 사시는 분들이나 지하상가 등 장맛비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된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더 자주 기억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자연의 영향에도 더 크게 피해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이 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그분들을 위한 기도이니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더 큰 피해로 더 많은 사람이 힘들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곧 비가 멎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나 그칠 줄 모르고 위협적으로 내린 비로 도로가 잠기고, 산사태, 하천 범람, 제방 붕괴와 대피 상황, 시골 농가의 농경지 침수 등에 따른 작물들의 피해,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는 등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전국 곳곳에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급기야는 미호강 범람 전 위험 상황을 신고하고 지하차도 긴급통제를 요청했음에도, 제대로 된 조치 없이 사상자 24명 중 14명 사망자를 낸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자연재해 사고이지만 인명피해가 커진 것은 사회 안전 시스템 문제였기에 분명 인재였습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소식과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작년 10.29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습니다. 가슴 아픈 참사를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비슷한 대응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 아프고,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5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유가족들은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행정 공백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특별법이 제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법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직도 거리에 서 계시는데 이 참사 소식을 들으시고 얼마나 마음 아프고 참담하셨을까 죄송스럽기도 했습니다. 더는 인재로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 방법을 찾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일상을 사는 일이 이렇게 안전하지 않고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이런 안전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여러 영역의 취약계층 사람들에게 더 미안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악화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하고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했지만,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또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정작 일상에서 때로는 무관심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로 한 발 물러나 있었다는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워서 남 주자”라고 호기롭게 가르치고 그렇게 살자고 했는데, 그 말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도,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더 알아가게 됩니다. 

이 여름 자연재해의 피해는 무섭고 잔인하기까지 했지만, 그 이면에 자연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 우리들의 삶과 거듭 인재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생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더 무섭게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큰 일이 생길 때는 경각심을 가지고 삶의 선택과 변화를 다짐하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잊어버리고 다시 일상의 편리함과 필요를 우선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패배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허리를 곧게 세우게도 됩니다. 세상은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을 좋은 가치로 생각하는데, 저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처럼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내리고 피어 내는 꽃의 의미와 가치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빗속에서도 꽃은 피고, 나비도 날고. ©남궁영미
빗속에서도 꽃은 피고, 나비도 날고. ©남궁영미

좌절하는 사람들이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약해서 흔들리는 순간이 많지만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비가 와도 꽃은 피고, 나비는 날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함께 있는 자연처럼, 함께 생명을 돌보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갈 우리를 격려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함께 맞는 비’의 가르침처럼. 

함께 맞는 비 ©신영복 아카이브<br>
함께 맞는 비 ©신영복 아카이브

이번 장맛비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유가족들과 수해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께 따뜻한 위로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실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들이 마련되길 기원합니다.

 

남궁영미

성심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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