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발터 카스퍼, (허찬욱), 분도출판사, 2023.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br>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발터 카스퍼, (허찬욱), 분도출판사, 2023.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발터 카스퍼, 허찬욱 옮김, 분도출판사, 2023

‘주님의 기도’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다양한 신학 주제를 연구한 발터 카스퍼 추기경이 주님의 기도를 쉽게 이해하도록 해설한 책이 나왔다. 주님의 기도는 단 여섯 개 청원으로 모든 주요 문제를 간결하게 요약하지만, 이 안에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마음이 어우러진다. 저자는 주님의 기도를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해석하면서, 동시에 현재 상황에 맞는 해석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를 따라 기도문을 한 단어, 한 구절씩 곱씹고 나면, 습관적으로 외웠던 ‘주님의 기도’가 다르게 다가온다.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1933년 독일 하이덴하임에서 태어났다. 1989-99년까지 독일 로텐부르크-슈투트가르트 교구장으로 지냈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돼, 2010년까지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이었으며, 교종청 신앙교리성과 종교간대화평의회 등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가톨릭 성인 교리서” 1권의 주 저자며, 신학에 관한 여러 책을 썼다. “일치의 성사”,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마르틴 루터”, “자비와 사랑의 혁명” 등을 한국어 번역으로 볼 수 있다.

책 속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경악할 만큼 비열한 짓인지를 알아야,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는 기도가 얼마나 절박한 기도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간청에는 진정한 종교적 인간이 지닌 근원적 원의가 드러납니다. 즉, 하느님의 이름과 종교의 이름으로 어떠한 폭력과 악행도 저지르지 않겠다는 원의입니다.”(54쪽)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은 가능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찾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삶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세상의 재화는 모든 이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함께 준비한 식탁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100쪽)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 생활성서, 2023. (표지 제공 = 생활성서)<br>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 생활성서, 2023. (표지 제공 = 생활성서)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 생활성서, 2023

종교 철학자 허찬욱 신부가 문학, 음악, 영화, 미술 등 예술 작품을 통해 슬픔과 고통에 관한 성찰을 담은 에세이.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케테 콜비츠의 판화에서 인간이 느끼는 슬픔이 얼마나 다양한 층위를 가지는지 읽어 내고, 비틀스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서 신앙 언어의 문제를, 아바와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삶의 태도를 성찰한다.

저자 소개에 “좋은 공부와 좋은 놀이는 맞닿아 있다”고 나온 것처럼, 이 책도 진지하고 깊이 있지만, 편안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작은 이야기’의 소중함을 말하고, “당신을 속속들이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옳고 그름을 빨리 판단하지 않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위안받는다.

저자 허찬욱 신부(대구대교구)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박사(종교철학 전공)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대구 가톨릭대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독문 저서로 “Stufenweg zum Heil”가 있고, “낮은 곳에 계신 주님”, “바로 오늘” 등을 번역했다.

책 속에서

“타인의 고통은 마지막까지 나에게 발견되지 않은 땅, 가닿지 못한 미답지로 남습니다. 사람 사이 건널 수 없는 간극은 모든 인간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러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조금씩 실패하는 것은 우리의 탓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패하고도 실패한 줄 모르고 남의 고통을 안다고 함부로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탓입니다.”(17쪽)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거장에게는 애초에 틀린 음이란 게 없었습니다.... 신앙의 언어도 그렇게 유연하면 좋겠습니다. 신학을 좀 배웠다고 외운 대로 말하지 말고, 사람의 말부터 곰곰이 들으면 좋겠습니다. 곰곰이 들어 본 후에 생각해도, 다 들은 후에 말해도 늦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빨리 판단하고 선과 악을 선명히 가르는 것이 신앙 언어의 본령은 아닐 것입니다.”(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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