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현동분해정원’과 '찬미받으소서' 살아가기

이 글은 <가톨릭평론> 39호(2023년 봄)에 실린 글입니다. - 편집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나 88올림픽을 구전으로 들어온 나에게 공동체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 본 사람들만 알 수 있을 것 같은 무언가였다. 전설 속 동물처럼 사전적 의미로는 잘 알지만 제대로 된 실체는 알 수 없는 그런 존재다. 이렇게 자란 가련한 우리 MZ세대를 위해 교육자들은 협동과 공동체 정신을 맛보라며 수많은 조별과제를 하사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함뿐이다. 온라인에 ‘조별과제’를 검색하면 ‘빌런’, ‘잔혹사’, ‘무능’ 같은 단어가 관련 검색어로 떠오르니 말이다. 이런 우리에게 서로에 대한 신뢰나 희망 같은 것이 남아 있을까?

인간이 자초한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단 한 사람이 배출한 탄소로 지구가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다. 한국의 대표적 겨울 기후인 ‘삼한 사온’도 케케묵은 옛말이 되어버린 최근 몇 년간 겨울은 대부분 따뜻했다. 그러다 올겨울에는 11월 늦게까지 더웠다가 다음 두 달은 혹한과 폭설이 이어졌다.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사람이 끊임없이 미워지고 우리의 죄가 크다는 우울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지구는 아직 우리를 품고 있고, 인간이 자초한 일은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다같이 지구를 떠날 수 없는 한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우리는 손을 맞잡아야 한다. 개인 한 명이 기후위기를 만들지 않았던 것처럼 기후위기 앞에서 그저 개인으로 사는 건 무력할 뿐이다.

제로웨이스트 공동체를 시작해 볼까요?

미국의 제로웨이스터 비 존슨은 저서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청림, 2019)에서 제로웨이스트 실천 방법을 소개했다. ‘5R’이라 불리는 실천법은 대략 이렇다. 쓰레기가 될 만한 것을 거절하고(refuse), 쓰레기를 줄이고(reduce), 물건을 버리지 않고 다시 쓰고(reuse), 그래도 안 되면 재활용하고(recycle), 썩혀서 퇴비로 만든다(rot).

지금까지처럼 무언가를 소비하다 질리면 쉽게 버리고 그걸 외딴 동네 소각장으로 가져가 활활 태워 재로 만들어 묻어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다시 쓰고 그다음에 재활용하거나 썩혀서 퇴비화해 순환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생산–소비–분해’를 거쳐 다시 생산할 수 있는 물질로 돌리는 순환 사이클로 폐기물을 0으로 만들어 보자는 뜻이다.

쓰레기가 자꾸 쌓이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생산과 소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쓰레기를 분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활동이 필요하다. 바로 내가 만드는 유기질 쓰레기로 퇴비를 만드는 것이다. 마침 도시농부로 텃밭을 분양받아 매년 주말 농장을 가꾸던 나에게 퇴비화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퇴비화를 실천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은다면, 개인의 실천에 힘과 영향력이 붙고 지구력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쉽게 퇴비화하는 방법을 찾아내 매뉴얼을 만들었다.

가정에서 보카시 버킷(분해정원에서는 ‘퇴비통’, ‘혐기통’이라고 부른다)에 1달 이상 숙성시켜 온 퇴비. ©이아롬
가정에서 보카시 버킷(분해정원에서는 ‘퇴비통’, ‘혐기통’이라고 부른다)에 1달 이상 숙성시켜 온 퇴비. ©이아롬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가 찾은 방법은 ‘보카시 컴포스팅’을 응용한 방법이다. 음식이 분해되며 나오는 수분을 분리해 배출할 수 있으면서 공기를 차단하는 전용 음식물 쓰레기통(‘보카시 빈’ 혹은 ‘보카시 버킷’이라 부른다)에 썩을 수 있는 대부분 쓰레기를 넣는다. 보카시 컴포스팅에서는 퇴비의 질을 높이기 위해 넣지 말라고 하는 쓰레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질의 퇴비보다 폐기량을 줄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집 안의 쓰레기통을 썩는 쓰레기와 썩지 않는 쓰레기로 분리해 대부분 썩는 쓰레기를 보카시 버킷에 넣었다.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들어가면 안 되는 섬유질이 많은 채소나 과일 껍질이라든가, 딱딱한 씨앗 같은 것도 가능하다. 보카시 버킷에 유기질 쓰레기를 채워 수분을 조절해 한 달간 발효하고 나면 땅에 섞어서 작물을 심어도 괜찮은 퇴비가 된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은 물론 머리카락, 손톱, 종이나 휴지 정도의 쓰레기도 퇴비로 안전하게 쓰일 수 있다. 하지만 도시농부가 아닌 사람들에겐 땅이 없으니 보카시 버킷에서 유기질이 숙성된 다음에는 흙과 섞어 화분에 보관한다. 이렇게 보관한 흙은 단 2주만 지나도 식물을 거뜬히 키워낼 수 있는 상태로 바뀐다. 망가뜨리지만 않는다면 오랫동안 쓸 수 있는 통으로 전기 없이 한 달 만에 쓰레기가 처리된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퇴비가 시간이 지나서 잘 삭으면 이런 모습이 된다. ©이아롬
퇴비가 시간이 지나서 잘 삭으면 이런 모습이 된다. ©이아롬

하지만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 낸 퇴비도 화분 숫자가 불어나다 보니 결국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텃밭을 분양받은 나는 화분이 감당되지 않을 만큼 늘어나면 텃밭에 묻어버리면 됐지만, 11월에서 3월까지 경작을 그만둬야 하는 기간에는 퇴비를 보낼 곳이 없었다. 과연 다른 개인에게도 이런 실천을 하자고 권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땅이 없는 공동주택에 사는 시민은 공유지에서 퇴비를 만들 수밖에 없다. 공유지에 퇴비를 만드는 방법은 공적 시민 모임을 조직하는 것이다. 결국 동네 주민자치회에 문을 두드려 사람들을 설득했다. “우리 음식물 쓰레기로 함께 공동체 가드닝을 하지 않을래요?”

우당탕탕 공동체 만들기

공원에 퇴비만 만들어 묻는다면 투기가 되니 가드닝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모임 이름은 동네 이름과 분해를 넣어 ‘귤현동분해정원’이 됐다. 꽃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쓰레기를 분해해 순환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둔 정원 모임이기 때문이다. 주민자치회에서 시작한 덕분에 큰 도움도 받을 수 있었는데, 일단 함께할 사람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또 공원에 화단을 만드는 것을 허가받고 정원을 조성할 비용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 모인 세 사람과 3개월간 스터디하며 정원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우고, 공동체 정원을 지원하는 단체 ‘마인드풀 가드너스’를 통해 꽃씨를 지원받아 화단에 심을 모종을 키웠다. 그리고 대망의 2021년 5월 5일, 30명이 넘는 동네 아이들과 가족들이 모여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화단을 만들었다. 퇴비통을 안전하게 둘 수 있 는 열쇠구멍 모양으로 화단을 디자인하고, 집에서 숙성한 퇴비를 넣어 꽃을 심었다. 그때가 입하 즈음인데, 그 무렵 모종을 심어야 야외에서 냉해 피해 없이 식물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화단을 만드는 경험은 너무나 짜릿했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모두의 화단이라니! 이런 건 유럽에 사는 시민들이나 가질 수 있는 공유재인 줄 알았는데, 이걸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웃들과 함께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니 황홀했다. 하지만 마을 활동은 처음이라 그때는 몰랐다. 마을 공동체에서 만든 약속이나 규칙은 언제든 깨질 수 있으며 사람들은 쉽게 이탈한다는 사실을. 나도 마을에서 공동체 정원을 운영하는 게 처음이라 우왕좌왕했고, 의견과 일손이 많이 필요해 함께 정원을 돌보자고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릴 때만 나타나, 정원활동을 함께하는 일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내가 벌인 일을 도와준다는 태도였다. 그러다 보니 일손은 없고 조언과 제안만 난무했다. ‘지원사업을 받아라’, ‘마을기업을 만들어라’, ‘내일 화단에 물을 줘라’, ‘지지대를 튼튼하게 보수해 줘라’ 이처럼 숱한 말을 들으며 대부분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미워지기 시작했고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나는 다시 화분을 늘려가며 혼자서 퇴비를 만드는 일에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을 할 수밖에.

2021년 5월 5일 함께 정원을 만들던 모습. “어른들이 어린이날에 어린이를 괴롭혀!”라는 어린이 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무사히 완성됐다. ©이아롬
2021년 5월 5일 함께 정원을 만들던 모습. “어른들이 어린이날에 어린이를 괴롭혀!”라는 어린이 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무사히 완성됐다. ©이아롬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계속해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틈틈이 소셜미디어와 마을 카페에 공동체 정원에서 한 일을 기록했다. 동네에서 환경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을 만나면 열심히 설득해 회원으로 모시고 새로운 회원도 각자의 지인을 꿰다 보니 6개월 만에 10명이 더 모였다. 심지어 다른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모임에는 함께하지 않지만 공동체 정원활동을 응원한다며 동네 간판집 사장님이 분해정원의 안내판을 만들어 주셨고, 동네 어린이가 튤립을 심는 데 후원하고 싶다고 편지와 함께 400원을 기부해 주기도 했다. 어찌나 귀엽고 감동적이었는지, 공동체를 하지 않았으면 만날 수 없던 인연과 관계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7월이 되자 정성 들여 키운 금어초, 백일홍, 보리지, 메리골드, 카렌듈라 꽃이 피었다. 우리는 공유지에 우리가 만든 퇴비를 처리하니 화단을 돌보고, 꽃을 돌본 노동의 대가를 꽃을 잘라가는 것으로 선순환을 만들었다. 꽃은 예쁘다고 그냥 두면 빨리 씨앗을 맺고 죽어버리니 틈틈이 잘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르고도 꽃이 넘칠 때면 분해정원과 가까이 있는 경로당, 도움을 주신 간판집 사장님과 주민자치회 주무관님과도 꽃을 나누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2022년 4월 튤립 꽃이 만개했을 때의 모습.&nbsp;©이아롬
2022년 4월 튤립 꽃이 만개했을 때의 모습. ©이아롬

절망도 맞들면 힘이 된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들며 공동체라 말하기 민망한 분해정원 멤버의 관계에 조금씩 점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파트 쓰레기장을 볼 때마다 화가 났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유난 떤다’는 말을 들어왔다”며 가입 동기를 던진 새로운 사람들은 함께 ‘퇴비덕후’가 되었다. 아이가 먹다 남은 사탕을 퇴비화하는 것을 공유하며 깔깔 웃기도 하고, 누가 더 향긋한 퇴비를 만드는지 경쟁하고 비결을 물으며 친해졌다.

어느 날은 분명 책 모임을 하는데, 갑자기 책과 상관없는 힘든 점을 말하다가 울어버리지를 않나. 반찬을 너무 많이 하면 집으로 배달해 주기도 하며 우리는 ‘공동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내가 일을 많이 한다 싶으면 나의 상태를 묻는 사람이 생겼고,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새 가족이나 근황, 일상을 면밀히 아는 사이가 됐다.

물론 우리가 늘 따뜻하기만 하지는 않다. ‘일’이라는 걸 함께하기 때문에 가끔은 날 선 말들이 오가기도 하고, 모두가 시간을 똑같이 낼 수 없으니 여전히 소수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일한다. 가장 정원 일이 바쁜 여름철과 가을철에는 참여율이 많이 떨어져 ‘내년에도 분해정원이 유지될까?’ 하는 고민을 매년 하게 된다. 정원활동과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긴장감이 지나면 관계가 안정되기도 하지만, 공과 사가 뒤섞인 채 친목 모임으로 기울여지며 지나치게 느슨해지기도 한다. 올해 3년차로 접어든 분해정원은 서로가 서로에게 ‘일하는 동료시민’이라는 공적 관계설정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나는 그저 함께 쓰레기만 치우고 싶었을 뿐인데, 동네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이렇게나 복잡하다.

퇴비를 비운 분해정원 멤버들. 퇴비와 쌀뜨물, 오줌액비 등을 숙성시켜 모아 와서 공원에서 퇴비화한다. ©이아롬<br>
퇴비를 비운 분해정원 멤버들. 퇴비와 쌀뜨물, 오줌액비 등을 숙성시켜 모아 와서 공원에서 퇴비화한다. ©이아롬

모두의 일상에 공동체라는 힘들고 부담스러운 숙제가 들어와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분명히 우리는 많이 변했다. 겨울철에 퇴비가 느리게 분해되는 것을 겪은 몇몇 가구에서는 더는 휴지를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퇴비화를 고민하다가 그다음에는 음식물 쓰레기양을 줄이고, 나아가 소비를 줄이며 더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공유한다. 단지 개인 실천에서 그치지 않고 쓰레기와 관련된 행동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나 ‘일회용컵 보증금제’ 등 한번 쓰고 버리는 쓰레기 문제 전반에 대해서도 의견을 더하고, 기후정의와 관련된 행동에도 동참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실천하는 개인들이 마을에 모여 안간힘을 써도 기후위기라 는 벽에 계란을 치는 것만큼의 영향력도 발휘되지 않는다. 또 정원활동을 하면 할수록 기후위기라는 글자가 몸으로 느껴진다. 2021년과 2022년은 같은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사계절의 날씨 패턴이 모두 달랐다. 2021년에도 폭우는 왔지만 2022년에는 더 심한 폭우가 내렸고, 폭우가 정원을 할퀴기 전후로는 극단적으로 가물은 날씨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기후위기 속에도 꽃은 자라고 때로는 같은 절망을 느끼는 동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하며 여전히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서 화만 내고 돌아섰을 거니까. 그런 우리가 쓰레기를 퇴비로 만들다가 이제는 어느덧 기후위기를 위한 다음 실천과 행동을 고민하며 기후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손에 손잡고 벽과 맞서는 감각을 기르 는 중이다.

정원을 돌보는 모습.&nbsp;©이아롬
정원을 돌보는 모습. ©이아롬

이아롬

작은 도시텃밭을 가꾸며 농업과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기자. 주로 소농과 농업·농촌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땅을 분해와 생산의 터전으로 관계 맺는 소농의 삶 속에서 순환을 배웠고, 도시에서나마 농민들에게 배운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마을에 공동체 분해정원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http://organicpunk.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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