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받으소서' 살아가기

이 글은 <가톨릭평론> 38호(2022년 겨울)에 실린 글입니다.

작년 10월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을, 뻔한 사정들이 얽혀 있었다. 서울의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청년이라든지, 거의 20년간 혼자 살고 계시던 할머니의 외로움, 그리고 1인가구 시대에 걸맞지 않게 너무 넓은, 한때 대가족이 살던 집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자취를 준비하다가 서울 월세에 좌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가 같이 살지 않겠냐고 하셨고, 내심 그것을 바라던 나는 덥썩 미끼를 물었다. 그렇게 나는 바리바리 싸든 짐과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자전거 한 대를 들고 할머니 집의 방 한 켠을 얻어 쓰게 되었다.

할머니와 사는 것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당장 공원에 갖다 버리자던 고양이와 언제 그렇게 친해졌는지, 늘 갖고 다니는 파리채로 고양이 등을 살살 긁어 주는 할머니를 발견했고, 몇 년 동안 먹어 보지 못했던 할머니표 부추전을 오랜만에 먹어 보기도 했으며, 일하며 있었던 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할머니와 삶에 익숙해지며, 나는 부모님에게 받았던 것과는 또 다른 삶의 방식과 지혜를 배웠다. 매사에 느긋하게 대처하면 결국 잘 해결된다는 것, 살면서 만나는 이상한 사람에게 내 감정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같은, 당연하지만 깨닫기 어려운 삶의 지혜부터 시작해, 10년 넘게 노려 오던 할머니의 부추전 비법이나 골치 아픈 멀티탭 선 정리 같은 사소한 노하우까지, 나는 몇 달 새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 그중 가장 재미있게 다가왔던 것은, 할머니의 옷장을 내가 물려받았다는 사실이다.

〈할머니의 옷장 프로젝트〉 중. 할머니의 치마, 가 디건 세트를 입었다.(사진 작가_고동관)<br>
〈할머니의 옷장 프로젝트〉 중. 할머니의 치마, 가 디건 세트를 입었다.(사진 작가_고동관)

할머니는 멋쟁이였다. 백화점을 쓸고 다니며 ‘현실에서 이렇게 과감 한 옷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옷들을 입고 다니던 분이었다. 할머니의 옷장은 관리가 잘된 고급스러운 옷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 영향을 받은 고모와 아버지도 마치 패션위크에 어울릴 법한 과감하고 세련된 패션 안목을 갖고 있었다.

다만 이것도 옛날 일이었다. 나이가 들며 점점 할머니는 시장에서 산 옷 몇 벌만 돌려 입기를 고집하기 시작했고, 할머니의 빛나던 과거 옷들은 옷장에서 10년 넘게 잠자고 있었다. 조용한 집만큼이나 고요한 먼지가 쌓이고, 곰팡이가 슬금슬금 번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염치없이 할머니 집에 얹혀 살게 된, 철없고 레트로 패션을 사랑하는 한 손녀가 그 케케묵은 옷장을 연 것이다.

할머니의 옷장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이 옷장을 열었던 시점으로부터 약 2년 전으로 잠시 돌아가려 한다. 그때 나는 막 인생의 큰 결심을 하고 있던 차였다. 그 결심은 다음과 같았다. “(눈물을 반짝이고 주먹을 꽉 쥐며, 연극조로) 이제 다시는 옷을 사지 않을거야!” "나는 왜 패스트 패션에 열광했는가"라는 다소 긴 제목을 가진 책을 읽은 후 였다. 할머니의 피를 받았는지 옷에 관심이 많던 나는, 위아래 칸이 있는 커다란 붙박이 장을 두 개나 채우고도 넘쳐나는 옷을 주체하지 못하던 옷 욕심쟁이였다. 패스트 패션, 그러니까 급격히 바뀌는 최신 유행을 따라가며 싸구려 옷을 잔뜩 쏟아내는 SPA1) 브랜드가 인기를 끌던 시대에, 옷을 채워 넣는 것은 너무나 쉽고 재밌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이 쓰레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입을 거니까.’ 쓰지도 않고 버린다면 문제가 되지만, 나는 그 옷들을 입으려고 산 것이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누군가 바늘로 꾹 누른 것처럼 양심에 찔렸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옷을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리적, 심리적으로 그러한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패션에는 코스트코 효과2)가 없다."

제한이 없다는 것, 그 사실이 내 옷장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그나마의 제한은 내 지갑 사정인데 한 벌에 3900원, 8900원 하는 옷 사이에서 그 제한마저 없어져 버렸다.

패스트 패션 산업은 불길하게 번져가고 있다

최신 유행, 레트로가 아닌 ‘뉴트로’(과거의 것을 그대로 옮겨 오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해석하여 재창조된 새로운 복고풍) 감성, 연예인 ○○○이 입었던 바로 그 옷 등과 같은 홍보 문구뿐만 아니라 친환경 패션, 리사이클링을 선도하는 패션 브랜드,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 같은 문구 역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자선 단체 등에 기증되는 옷 중 80퍼센트 이상이 그대로 쓰레기장에 간다3)는 이야기는,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희미한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 위해 간간이 옷을 기증하며 뿌듯함을 느끼곤 했는데, 결국은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버리며 다음 옷 쇼핑을 위한 핑계를 만들어낸 셈이다.

신중하게 골라낸 이제 ‘안 입을 옷들’ 즉 이염된 블라우스, 목 늘어난 티셔츠, 구멍난 바지와 같은 폐의류는, 어떤 알 수 없는 마법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아 새로운 사이클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헌옷 사이를 돌아다니며 섬유를 씹어 먹는 소4)의 위장 속에서,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쓰레기 산에 지른 화염 속에서, 땅속에 매립되고 바다를 부유하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옷들은 잊혀졌다.

지속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 옷을 사면 조금 낫지 않을까. 나는 재활용 소재나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한 옷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것 또한 답이 아니었다. 최근 많은 SPA 브랜드가 채택하는 전략인 ‘재활용 소재’로 만든 옷 역시, 이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인 ‘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는, 재활용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즉 재가공이 용이하며 수차례의 사용이 가능 한 페트병 재활용과 달리, 옷이 된 플라스틱은 다시는 재활용될 수 없는 미래의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5)

지속 가능한 패션 기업가 말린 비올라 벤버그 역시, TED토크에서 ‘재활용 소재’ 혹은 ‘유기농 소재’를 구매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에 대해 말했다.6) 만약 유기농 순면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순면을 염색하는 과정에서 화학적 염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일명 ‘에코’ 제품이라 말하기 힘든 것이다. 벤버그는 지속 가능한 소재는 없으며, 특정 적용 지점에서만 지속 가능한 옵션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옷장을 이야기하다가 패션 산업에 대한 이야기로 빠진 이유는, 벤버그가 이와 같은 문장으로 강연을 끝맺기 때문이다.

"가장 지속 가능한 의류는, 당신 옷장에 이미 들어 있는 의류입니다."

할머니의 옷장은 내게 새로운 약속의 땅과 같았다. 새 옷을 소비하지 않는 것에는 ‘가진 옷만 입는 것’, ‘옷가게를 볼 때마다 못 본 척하는 것’, ‘코로나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고, 가진 옷들이 더는 맞지 않아 괴로워하며 다이어트를 하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옷장을 넘어, 할머니의 옷장에 들어 있는 의류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입지 않아 곰팡이가 핀 옷을 햇빛에 말리고 이리저리 조합해 입어 봤다. 품이 아주 큰 베이지색 면바지, 로코코 시대 벽지처럼 보이는 꽃 셔츠, (할머니조차도 경악했던) 과일들이 그려진 새빨간 셔츠, 담요처럼 생긴 기나긴 치마, 자잘한 체크로 뒤덮힌 여름 바지.

어떤 사람은 내게 “옷이 참 특이하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어떤 이는 옷이 참 예쁘다고 했다. “너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것은 나의 스타일이었지만, 동시에 젊은 날 할머니의 스타일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옷장 프로젝트〉 중. 할머니의 자켓, 셔 츠, 바지를 입었다.(사진 작가_고동관)
〈할머니의 옷장 프로젝트〉 중. 할머니의 자켓, 셔 츠, 바지를 입었다.(사진 작가_고동관)

할머니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할머니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할머니의 치마를 가슴 아래까지 한껏 끌어 올려 입으며(내 취향은 발목 위로 오는 기장이다) 할머니 시대의 유행을 가늠해 본다. 자잘한 꽃 패턴의 옷들을 보며, 나와 유전으로 이어진 같은 취향에 기뻐하기도 한다. 품이 유난히 큰 바지를 입으며, 평생 날씬한 모습만 보이던 할머니도 살이 쪘던 기간이 있었던 걸까 생각한다.

옷을 잘 살펴보면 할머니의 흔적이 보였다. 단추와 단추 사이에 똑딱이를 달아 둔 흔적, 입기 편하라고 택을 제거하고 불로 지져 둔 흔적, 안쪽에 다른 천을 덧대 놓은 흔적. 조그만 얼룩이나 수선 자국이 정겨웠다. 옷에 달린 낯선 브랜드 택에 대해 물어보면, “그때는 이 브랜드가 유명했는데”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할머니 옷을 입어 대는 걸 보고 할머니는, 젊은 애가 참 요상하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물려준 옷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디어디 여행을 갔을 때 사온 거다’, ‘혼자 백화점을 갔었다’ 같은 시시하면서도 소중한 옷의 역사를 전해 들었다. 설령 할머니가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옷을 어디서 사신 걸지, 이 옷을 어디에 입고 가셨을지, 어떤 취향 때문에 이 옷을 골랐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 옷들은 전과 다르게 도저히 한 철만 입고 휙 버릴 수 없었다. 옷이 소중해졌다.

이에 더해 나는 '할머니의 옷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할머니의 옷장에서 찾아낸 코디를 사진으로 남기는 프로젝트였다. 할머니의 옷을 물려 입는 것을 쿨하고 멋진 하나의 문화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옷장에 걸려 있을 때는 유행 지난 것처럼 보이던 낡은 옷들이, 멋지게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옷장'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7)

패스트 패션이란 거대한 재앙을 넘어서기

아버지가 어느 여름에 사 주었던 아끼던 반바지가 하나 있었다. 가격도 상당했으나, 요즘 패션 산업 트렌드가 그렇듯 그 옷은 채 한 철을 입기도 전에 실밥이 죄다 뜯어지고 말았다. 밑단이 너덜너덜한 바지를 대강 입고 다니는 나를 본 어머니는 질색하며 그 거지 같은 옷 좀 버리라고 했다.

화려한 패턴을 좋아하는 내게는 흰색 무지 블라우스가 하나 있었다. 그 블라우스는 내가 아끼던 반바지보다는 오래 버텼으나, 결국 가슴께 단추가 떨어졌다. 이를 알지 못했던 나는 블라우스를 입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고, 함께 밥을 먹던 친구는 기겁하며 가슴 부분을 가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 옷들을 버리지도 입지도 못했다. 어딘가 뜯기고 닳은 채, 그저 옷장 한구석에 영원히 처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수선 흔적이 가득한 할머니의 옷을 입으며, 나는 어떤 불쌍한 소의 위장을 아프게 할 옷 쓰레기를 저 먼 나라로 보내는 대신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할머니에게 단추 다는 법과 실밥이 뜯어진 밑단을 꿰매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너는 이런 것도 할 줄 모르냐고 면박을 주면서도 하나하나 잘 알려 주셨다. 꿰매다가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눈을 딱 감고 할머니에게 맡겨 버렸다. 할머니가 툴툴대며 신나서 바느질을 하신다. 내가 아끼던 반바지는 올 여름 나와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흰색 무지 블라우스가 없어 상하의를 모두 화려하게 입어야 했던 과도한 패션의 나날들이 끝나고, 내 코디는 중용을 되찾았다. 버리려고 한 켠에 쌓아 두었던 옷들이 다시 옷장에 들어갔다.

할머니의 반짇고리 속 단추들. ©배인경
할머니의 반짇고리 속 단추들. ©배인경

어느 날은 할머니와 동묘 시장으로 나들이를 갔다. 나는 시장의 시끄러운 분위기, 수많은 좌판과 퉁명스러운 상인들에게 기가 잘 죽는 편이기에, 그런 곳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나를 끌고 익숙한 듯 시장을 헤쳐 나갔다. 그 길의 끝엔 산더미처럼 중고 옷을 쌓아 놓고 파는 시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옷 무더기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끄는 옷을 찾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왜인지 축축한 느낌이 드는 옷더미를 소심하게 뒤적였다. 죽은 사람들의 옷을 많이 가져온다는 출처 모를 이야기가 떠올랐다. 색도, 사이즈도 구분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뒤섞인 옷들은 내가 가곤 했던 옷가게에 걸린 옷과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들은 의류가 아닌 무언가 커다란 덩어리, 심지어는 쓰레기 산처럼 느껴졌다. 내가 재활용되길 바라며 보냈던 수많은 ‘못 입을 옷’들의 종착점은 이런 곳이었을까.

옷더미 속에서 나를 부르는 듯한 낡은 색의 체크무늬를 찾아냈다. 기묘하게 오래된 체크 무늬 바지였다. 바지 안쪽을 보자 오래된 느낌의 택이 보였다. 옛날 느낌이 나는 서체로 ‘서광’이라고 써 있는 택이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옷 같았다. 바지는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꼭 누군가가 소중히 아껴 입었던 옷처럼, 쓰레기처럼 뭉쳐 있는 옷더미 속에서도 뜯어진 데 하나 없이 바지 주름이 잘 잡혀 있었다. 이제는 말끔하게 밑단이 정리된 내 반바지처럼,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사 주었던 바지였 을까. 그렇게 잘 관리하며 입었던 바지를 왜 떠나보냈을까.

알 수 없는 과거를 품은 채, 낡고 정갈한 바지는 이제 내 손에 잡혀 있었다. 설령 현재 살아 있지 않은 누군가의 옷이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지의 원래 주인은 꺼림칙한 이방인이 아닌, 한때 이 바지를 입고 아꼈던 한 명의 사람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유지를 연고 없는 내가 잇는 것이다. 나는 바지를 옷 사이에서 빼내어 값을 치렀다. 바지의 값은 1000원이었다.

동묘 시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바지, 택의 디자인이 흥미로웠다.&nbsp;©배인경
동묘 시장에서 발견한 오래된 바지, 택의 디자인이 흥미로웠다. ©배인경

언젠가 한 친구가 언제나 하는 금목걸이의 이야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금목걸이는 친구 할머니의 소유물이었다. 모로코에 사는 유대인이었던 할머니는 이스라엘로 이주하며, 돈이 아닌 귀금속을 모두 챙겼다고 한다. 그 모든 귀금속을 주렁주렁 매달고 머나먼 고향으로 떠나며, 친구의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사히 이스라엘에 도착한 할머니는 점차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자신이 매달고 온 귀금속을 하나하나 나누어 주었다. 친구는 예의 금목걸이를 받았다. 그러니까 친구는 언제나 조모의 디아스포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셈이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옷을 입고, 수선을 하고, 중고 옷을 사는 모든 이 행동들은, 패스트 패션이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그 어떤 유의미한 결과도 도출하지 못할 것이다. 패션 브랜드는 분기별로 유행을 바꾸고, 수많은 싸구려 옷들을 찍어 낸다. 동묘 시장에 쌓여 있는 옷더미 속에는 분명 한때 누군가 소중히 아꼈던 옷들도 존재하지만, 팔다 남은 SPA 브랜드의 구깃구깃한 새 옷 무더기도 섞여 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옷을 입고 누군가의 낡은 바지를 찾아내며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옷들의 이야기를 믿는다. 옷의 실밥, 택, 결함, 그 모든 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 옷은 영혼 없는 공산품 이상의 무엇을 품는다.

한달 새 바뀌는 유행, 연중 무휴 파격 세일 따위의 전단이 붙은 옷가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개발도상국에 쓰레기가 된 옷을 쏟아붓는 컨테이너를 넘어, 옷이 유산이 되는 사회를 생각해 본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과 철학이 옷을 통해 전달되고 또 전승되는 그런 사회를 상상해 본다. 내가 패션 유행에 상관없이 할머니의 코트를 버리지 못할 것이듯, 친구 역시 금목걸이를 질린다고 내던지지 못할 것이다. 옷이 삶이 되는 순간, 우리는 절대 이를 낭비할 수 없을 테니까.

1)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로, 생산 단가와 유통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체 생산, 자체 소매하는 생산 소매업을 뜻한다.
2)  코스트코 효과란 쇼핑 시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과다하게 소비하는 것을 뜻한다. 아침에 먹을 시 리얼을 할인도매 상품이라는 이유로 6개월치나 사들이는 식이다. 그러나 소비심리학 전문가인 C. W. 박 교수는 대부분 사람이 벌크로 사들인 시리얼을 소비하다 지치면 식품을 그렇게 사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L. 클라인, 윤미나 옮김, "나는 왜 패스트 패션에 열광했는가"(세종서적, 2013), 67-68쪽 참고.
3) 위의 책, 85쪽.
4)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KBS 환경스페셜' 17회, 2021.7.1.
5) '어째서 페트병으로 옷을 만드는 것은 잘못된 해결책인가(Why Making Clothes from Plastic Bottles is a False Solution)', City to Sea 웹사이트.
6) 말린 비올라 벤버그, "미래의 지속가능한 패션 시스템", TEDTalk.
7) www.hgaartlab.com/할머니의옷장.

배인경

영상과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여, 기묘하고 따뜻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내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다. 현재는 전시 및 공연 작품활동과 SF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