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 코디네이터’와 본당 활성화

한 달 전 즈음에 우리신학연구소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인천교구의 한 은퇴 사제가 내 글을 보고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 상황을1) 묻기 위해 한 전화라고 했다. ‘70년대만 해도 90퍼센트에 가까운 신도가 가톨릭교회를 믿었는데 왜 근래 들어서 반토막에 났는가’에 대해 실망 반 궁금함 반으로 물어왔다. 얘기를 나누면서 이 노사제가 남미 교회 상황에 대한 단순한 지적 호기심 때문에 전화를 걸어온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말머리에서는 남미 교회 언저리를 맴돌다가 본격적으로 한국 교회와 사목자로서 자신의 경험 등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털어놨다. 본당 사제였을 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평신도를 고용해 본당 활성화를 위한 사목 프로젝트를 실험했다고 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를테면 일정 기간 청년 회원 몇 명, 예비신자 몇 명 등 가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하나둘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본당이 눈에 띄게 활기차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그 지역 다른 본당들에는 청년이 없었는데도 그의 본당에는 청년들이 ‘넘쳐났다’. 결과가 이러했지만 본당 수녀들과 사목위원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이 프로젝트를 반대했고 결국 후임 사제가 부임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면서, 본당 활성화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 사라졌다고 낙담했다.

나는 인천에도 그런 사례가 있어서 반갑다고 응답하면서, 서울 무악재 성당에서도 그와 비슷하게 여성 평신도를 ‘사목 코디네이터’로 등용해 본당 사목의 활성화를 꾀한 적이 있었다고2) 맞장구를 쳤다. 나는 그와 관련해 “본당에 새 사제가 부임하면서 사라진 제도지만 그 여성 사목 코디네이터가 본당에서 활동을 맡고 있을 때는 신자, 주일학교 교사, 학부모, 사제와 수도자를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냈다”3)고 쓴 적이 있다. 또 “큰 효과가 있음을 알면서도 이런 제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본당에 한 명의 사목 코디네이터를 두지 못할 정도로 한국 교회가 가난하기 때문인가? 이런 절실히 필요한 곳에 투자하지 않으면 과연 신자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봉헌금과 교무금은 다 어디에 쓰이고 있다는 말인가”4)고 묻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물음은 그 노사제가 하고 싶어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리 생각할 만도 한 것이 그가 ‘평신도를 등용해 본당을 활성화하는 이런 사목 정책을 지지하고 실행하도록 서울교구장에게 탄원서를 쓰고자 한다’고 귀띔했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함은 그가 볼 때 저 남미의 사례나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유럽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데서 온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교회의 사목 현실에 답답해하는 것은 이 은퇴 사제만이 아니다. ‘교회의 위기’를 말할 때 늘 소환되는 청년들 자신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로 보인다.

2022년 12월 26일 '1인 가구 시대의 청년 사목'을 주제로 열린 우리신학연구소 줌 세미나 화면 갈무리 (이미지 제공 = 황경훈)
2022년 12월 26일 '1인 가구 시대의 청년 사목'을 주제로 열린 우리신학연구소 줌 세미나 화면 갈무리 (이미지 제공 = 황경훈)

본당, 청년들의 무덤?

지난주에 우리신학연구소는 “1인 가구 시대의 청년 사목”을 주제로 12월 줌세미나를 열었다. 이는 지난달에 비슷한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의 ‘대중용 버전’으로, 이 심포지엄을 주최한 김민수 신부(서울대교구)가 발표하고 청년 세 명이 토론을 맡았다. 청년이 부재한 교회의 현실을 걱정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60여 명이 2시간 반 동안 활발하게 참여했다. 지정 토론에 나선 청년뿐 아니라 자유 토론에 참가한 청년도 여럿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적인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이들이 본당이나 단체에서 ‘헌신’이라는 말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이었고 그 결과 불행히도 몸도 마음도 거의 ‘소진’(burn-out)돼 가까운 시일에 그 활동을 접겠다는, 실로 우울한 내용이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안타까운 마음은 이심전심이었는데, 한 세대 전에 본당 청년 활동을 한 내 경험에 비추어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현실이 답답하고 암담하게 느껴졌다. 교회에 청년이 부재한 상황임에도 변한 게 없다면 청년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별 긴장이나 저항감 없이 뒤따라오기도 했다. 본당에서 청년의 위치와 관련해 나온 얘기로서, 본당 사목회의에 청년대표가 직접 참가해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을 위한 본당 사목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는 제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이는 이미 한 세대 전에도 제기되고 때로 실행됐던 것으로, 사실 전면적으로 실행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 얘기다. 본당의 현실, 곧 성직자에게 집중된 문화, 본당의 수직적 구조,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 또는 질서가 현재 청년을 포함한 평신도의 지위를 규정하고 있다면, 이것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청년 대표가 사목회의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앞의 노사제가 느낀 답답함이나 낙담이 바로 이런 데서 오는 것이라면 한 사제의 ‘선의’에 호소하기보다는 ‘구조’를 바꾸는 시도가 본당도 살리고 청년도 살리는 데 더 긴요해 보인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사목 코디네이터를 본당 사제의 인사이동과는 상관없이 교회 당국이 본당마다 ‘직무’로 도입해 안정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본당과 전체 교회의 새로운 문화와 질서를 창출할 그러한 변화 말이다.

청년 사목과 공공성의 만남

이날 토론에서는 대개 본당 청년 활동과 청년의 지위 등이 주로 논의되었지만, 사실 발표자의 전망은 좀 더 넓은 것이었다. 김민수 신부는 자기 본당이 청년들이 많이 있는 지역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고 했다. 그는 “지역 청년들을 신자로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이들이 꿈을 펼치고 인간답게 생활하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또 “지역 사회의 주민으로서 교회가 지역의 많은 비신자 청년과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청년 사목 심포지엄을 준비하게 된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청년 사목은 본당이나 교회의 울타리 안으로 관심을 제한하기보다는 그것을 넘어 지역 공동체라는 더 넓은 공적 차원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공공성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평일 미사 후에는 경당을 비롯해 휴게실, 교리실 등이 텅 비는데 이를 적당한 공간을 찾으려 애쓰는 지역 청년들이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말에서 찾아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교회 이탈 또는 종교 이탈이 점점 더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지역 청년들에 대한 사목적 고민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에 새로운 청년 사목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까지를 포함하는 꽉 짜인 목표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토론에서 이 주제를 이어가거나 본격 논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기에는 나름의 까닭이 있어 보이는데, 이를테면 본당에서 이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 다른 말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거나, 자기 문제를 지역이라는 공적 문제로 접근해보는 기회와 경험의 부족으로 보인다. 설사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목 계획이나 방안을 내오기에는 이런 방면에 있어 전체 한국 교회의 경험이 너무도 짧다. 어쩌면 본당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까지 사목을 확장하는 것은, 한 토론자의 말마따나 ‘너무 앞질러 나간 것’ 아니면 ‘너무 낯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을 예측이나 한 듯 발표자가 구체적인 사목 계획으로 논의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돋보이는 대목이다. 본당의 휴게실을 ‘청년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오는 3월에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해 지역 청년들의 문화적 욕구를 실현하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뭔가 빠진 듯 흡족하지 않다. 그것은 여전히 본당이나 교회가 공간을 ‘제공’하거나 자선을 ‘베푸는’ 존재로 남는, 그만큼의 거리가 느껴졌기 때문인 듯하다. 다시 말해서 발표자의 이 제안은 선구적 시도임에도 상호적이고 쌍방향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일방적이고 단방향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교회가 증여자나 시혜자의 모습에서 21세기에 맞는 더 평등주의적인 관계로서, ‘우정’(friendship)을 기본 개념으로 하는 전략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이 우정은 ‘희생’이나 ‘헌신’ 같은 엄숙주의에 가까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친밀함’ 같은 상호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지역과 교회는 서로 어떤 우정을 꽃피워낼 수 있을까’를 사회학, 신학, 인류문화학, 지역학 등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사고 및 태도 전환이 긴요하다. 서로 만나고 변화하며 또 성숙해가는 관계일 때에야 비로소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베풀고자 하는 ‘사목 프로그램화’를 넘어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프로젝트 전체가 멈출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점에서, 이것도 이를 제안한 사제의 선의에 따른 것이어서 단명할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 따라서 박수받아 마땅한 이런 제안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정을 기본 콘셉트으로 다지는 동시에 구체적인 맥락에서 이를 북돋을 형식과 내용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집중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저 노사제의 절실함처럼 어쩌면 한국 교회 전체가 심기일전해야 할 마지막으로 기회인지도 모른다. 바로 이 지점이 노사제와 청년들이 서로 이심전심으로 공명하며 만나는 초점(focal point)이 아니겠는가. 이런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를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 온라인 세미나 등이 이어지고 또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조직해 고민을 심화하고 실행해 나가는 방향으로 노력이 경주되었으면 좋겠다. 2023년 새해에 걸어보는 기대다.

1)  황경훈, “이태원 참사와 보우소나루의 몰락”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22.11.30
2) 한수진, “청소년과 교사들의 ‘에어백’, 사목 코디네이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3.06.07.
3) 황경훈, “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교회문화 바꾸기 - 여성 1”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7.01.04.
4) 위의 글.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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