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거룩한 날을 맞이하는 대림 시기의 막바지이지요. 많은 분들이 주님 탄생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준비 중에 하나가 고해성사이지요. 자기의 죄를 성찰하고 고백하며 죄를 다시 짓지 않도록 결심하는 이 성사는 나를 스스로 돌아보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한창 판공성사를 드리기 위해 본당을 순회하던 때 뉴스에 올해의 사자성어가 선정된 기사를 보았습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서 바로 ‘과이불개(過而不改)’입니다. 난생 처음보는 사자성어였지만 뜻을 보는 순간 너무나 공감 가는 말이었습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이지요. 전국 대학 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이 넘는 인원이 이 사자성어를 뽑았다고 알려집니다. 1등뿐 아니라 나머지 상위권에 든 말들도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2위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 과이불개하고 덮으려고만 하니 계란을 쌓아 놓은 듯 위태롭고(累卵之危·누란지위·3위),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 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하며(文過遂非·문과수비·4위)’, 눈먼 자들이 코끼리 만지듯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한다(群盲撫象·군맹무상·5위)라는 말들, 어느 하나 부인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올 한 해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에 물난리가 나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집권 여당의 정치인은 이러한 말을 했지요.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그리고 얼마 전 복판에서 158명의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왜 그러한 불상사가 일어났는지 원인조차 밝히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방의원부터 한 나라의 국무총리까지 아직 아픔 속에 머물러 있는 유족에게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뿐일까요? 수많은 노동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들, 가난한 사람들의 가중되는 고통들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물어보게끔 합니다. 분명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고 고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현실입니다. 우리 정부는 끊임없이 남 탓을 하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애써 무시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해서 개선하겠다라는 이야기보다는 ‘너네가’ 이렇게 해야만 한다. ‘그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더 많습니다. 자기 자랑하기와 남탓하기에는 열심이지요.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윤석열 대통령 모습. (사진 출처 = Flickr)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날 윤석열 대통령 모습. (사진 출처 = Flickr)

가톨릭교회는 정치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박해받는 중에도 바오로 성인이 권유하였던 통치자들을 위한 기도는, 정치 권위가 보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암시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경건하고 근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1티모 2,1-2 참조)"("간추린 사회교리" 381항)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우리이지만 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불안하고 걱정하게끔 만듭니다. 더불어 "인간을 정치 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뜻이다"("간추린 사회교리" 388항)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지금 우리 정치가 어디에 집중해야 되는지를 날카롭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통치자가 빵을 사러 갈 수도 있고,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습니다. 그도 인간이건대 밤에 술 한잔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도 인간이건대 화를 낼 수도 있고 짜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귀에 듣기 싫은 말을 피하고 싶을 것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빵을 사더라도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어선 안 되지요. 영화를 보더라도 국민들의 불안을 인식하고 있었어야지요. 최고 통치자이기에 화를 내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자기의 귀에 듣기 싫은 말도 들어야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함께해서도 안됩니다. 국민이 어이없게 목숨을 잃었으면 그것을 회피하고 남탓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고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지금 교회는 대림 시기 즉,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오실 아기 예수님의 은총으로 우리나라가 내년에는 과이불개의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상우 신부

부산교구 우정 성당 사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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