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정형외과의 김용민 베드로

소록도 공중보건의, 정형외과 교수로 재직한 지 26년째이자 정년을 6년, 60살을 1년 앞둔 어느 날 조기퇴직 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 도전, 아이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아프리카 감벨라 의료 활동....

정형외과 전문의 김용민(베드로)의 대략적 이력이다. 2019년 60살 기념으로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김용민 씨는 최근 함께 포콜라레 의사회 회원 11명과 “생명, 사랑의 순환”이라는 공저를 펴냈다. 이번 출판을 계기로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고, 의사로서 신앙인으로서 도전해 온 삶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도전하기 위해 어디든 갈 수 있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찾아다니는

‘세상을 향한 모험’이라는 그의 인생 키워드가 의사로서 그를 처음 이끈 곳은 소록도 공중보건의였다. 친구로부터 소록도 이야기를 들은 뒤 그는 무작정 선배에게 편지를 보냈다.

“000 선배님, 저는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입니다. 동기로부터 소록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꼭 가고 싶어졌으니 기회가 오면 부디 도와주십시오”라는 편지의 답은 1년 뒤에나 돌아왔다. 교육 기간 등의 시간을 제외한 1년 3개월을 보내는 동안 그는 많은 미래를 만났고 결정했다.

“그 짧은 기간의 삶이 지금 내 모습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전공을 정형외과로 결정하게 되었고, 배우자를 만났으며,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에 되었다. ....그리고 소록도에서는 흔한 모습인, 나 자신보다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 82쪽)

특히 그가 정형외과를 선택한 이유와 과정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소록도 시절 한국나병연구원 김도일 원장의 강의를 들었던 그는 “선생님처럼 한센병 환우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려면 어떤 과를 전공하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까”라고 질문했고, “정형외과”라는 답에 주저 없이 전공을 결정했다. 하지만 하필 정형외과 레지던트 지원자가 너무 많았던 해였고 전공의 시험 당일, 그는 새벽 미사에 참례해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를 정형외과 의사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원하는 곳에 저를 쓰셔도 좋습니다. 가라고 하시는 곳은 어디든 가겠습니다.”

도움, 관계, 그리고 땜장이

“하느님이 쓰고자 하는 자리가 돈 많이 벌고, 명예를 얻는 자리는 아닐 거에요. 꼭 필요하고 채워져야 하는데 비어있는 그 자리에 가는 것, 그곳을 채우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가장 우선이었던 것은 “도움이 되느냐”였고, 의사로서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느냐”다.

그는 당장 치료해야 할 자신의 환자뿐 아니라 다른 치료를 위해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요청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은 동시에 5명이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도움이 된다면 고마울 뿐”이라는 그는 “귀찮고, 힘들고 대가도 없으며, 때론 오히려 원망을 듣기도 하지만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나에게 의미가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도움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 환자와 의사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라고 여긴다.

김용민(베드로), 문원주(율리아) 부부. 문원주 씨는 어렵고 위험한 곳을 찾아가는 남편 걱정은 없냐는 물음에, "걱정한다고 될 일은 아니에요. 그저 믿고 맡길 수밖에 없잖아요"라며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정현진 기자
김용민(베드로), 문원주(율리아) 부부. 문원주 씨는 어렵고 위험한 곳을 찾아가는 남편 걱정은 없냐는 물음에, "걱정한다고 될 일은 아니에요. 그저 믿고 맡길 수밖에 없잖아요"라며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정현진 기자

돈과 명예를 동시에 얻는 직업인데 왜 굳이 땜장이라고 하세요?

그의 책 제목에 눈이 갔다. “땜장이 의사”. 정형외과의 특성상 부러진 뼈를 잇는다는 의미일까. 스스로 붙인 별칭일까, 누군가 불러준 이름일까.

“소록도 시절에 피정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소명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느닷없이 땜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후의 삶이 거의 땜장이로서의 모습이었네요.”

그의 이력을 보면, 현실적으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레지던트까지 수료한 이 치고는 늘 주변부에 머물렀다. 첫 직장부터 소위 빅5 병원이 아니라 지방의 신설 의대였다.

“당시 정형외과 수련의를 서울대에서 받은 이들은 지방으로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필 그때 지방에 신설 의대가 많이 생겼고, 학교는 있는데 교수가 없는 상황이 많았죠. 지방 의대의 인력을 메꾸는 것이 나의 선택이었어요. 두 번째 대학도 내 선임자들이 서울로 떠난 자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첫 의료 봉사로 지진 피해를 입은 아이티로 떠날 때도 그랬다. 지진으로 다친 사람들이니 정형외과 의사가 꼭 필요했는데, 또 하필 정형외과 의사 지원이 한 명도 없었다. 개인적으로 자원을 하고 기다렸는데, 출발 3일 전에야 꼭 가 줘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떠났다.

그는 땜장이란 꼭 필요한 존재이고, 동시에 치료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의사의 원래 역할이 땜장이예요. 물이 새는 냄비를 때워서 다시 쓰게 해주는 것처럼 사람의 신체에 문제가 생긴 부분을 때워서 건강하게 살도록 하는 게 의사의 몫이기도 하죠. 필요한 존재가 없는 곳에 가는 것, 사람의 생명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땜장이라는 단어에는 그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냉담 시기가 있었다. 다시 신앙을 찾은 것은 소록도에서 과달루페회 멕시코 신부님 덕분이었다. 종교나 신분, 처지를 막론하고 누구나 환대하고 존중하는 그를 보면서, 예수의 말씀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막연히 느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많이 생각하고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네 모든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 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장)는 말씀이다.

김용민 씨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준 숙제는 살아 있는 동안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라는 것”이라 여긴다며, 이번에 낸 책 내용 역시 동료 의사들과 관계, 사회인으로서 관계 맺음, 환자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관계에 대한 생각은 환자를 치료할 때도 적용된다.

“골절의 정의는 골의 연속성의 소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골절의 정의는 한 인간의 생활, 그가 속한 사회의 연속성의 소실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무는 뼈를 잘 붙이려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이전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느냐에 있다. ...”(“땜장이 의사의 국경 없는 도전” 128쪽)

기술적 차원에서 부러진 뼈를 멋있게 맞추는 데에만 골몰하면 골절 치유에 필요한 나머지 요소를 희생시킬 수 있다. 주위 근육에 손상을 줘, 혈액 공급 등 생물학적 환경, 즉 몸과 삶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은 실패한 치료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어떤 일을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수십 개 있다. 그 이유와 핑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든다.”

2010년, 아이티 의료 활동에서 만났던 한 환자의 “가지 말아 달라”는 호소를 듣고 8년 뒤 조기퇴직 하면서 시작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이런 그에게 여생이나 노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꿈의 실현’이다.

그는 코로나19로 묶인 발이 풀리는 대로 그가 가고자 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기면 “아직 할 수 있으므로” 언제든 날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하늘의 성 쌓기에 필요한 재료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며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위하는 것이니 물질 만능 세계에 속한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성의 벽돌 재료는 ‘땜장이 화타’ 역할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늘이 나에게 준 시간 동안 땜장이 화타로서 이때까지와는 또 다른 이웃을 위해 살아가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책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3년 전의 이 다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