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민운동 50주년 기념행사 열려
서울 빈민사목 등 28개 주민운동 단체 참여

한국의 주민운동을 이끈 단위들이 한국 주민운동 50주년을 맞아 ‘전환의 시대, 가난, 공동체, 생명의 미래’를 주제로 22-26일 기념행사를 열었다.

올해는 1971년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가 주민조직운동을 공식 펼치기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이번 50주년은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차별과 소외,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여기에는 28개 지역사회 단체 및 활동가, 지도자, 주민과 빈민사목으로 연대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등 종교계가 참석했다.

주민조직 활동을 하는 사회복지사들, 중장년 1인 가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운동의 과제, 45주년을 맞은 복음자리 공동체 운동과 부산 주민운동의 산실인 대연우암공동체, 한국 공동체 조직화 운동과 주민운동의 역사, 자활 주민운동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또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 산 정일우 신부의 삶을 조명한 ‘내 친구 정일우’가 상영됐다. 참가자들은 초기 주민운동의 현장인 청계천, 난곡, 시흥 복음자리, 성남, 서울 북부지역과 인천도 순례했다.

이번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상임공동대표이자 성동주민회 대표로 참석한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금호1가동 성당 주임)는 “지금 전환의 시기를 강조하는데 이는 단지 교회가 가난한 이를 도와야 한다는 시혜적 차원이 아니라 이제 어떻게 이들과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나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모든 형제들’에서 사회적 우애와 형제애를 강조하는데, 이는 이미 처음부터 가난한 이들을 주인으로 여기고 살아가며 운동해 온 주민운동과 일맥상통한다”면서 “그래서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이런 움직임에 연대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소명에도 더 충분히 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주민운동 50주년 기념 워크숍 ‘전환의 시대, 가난, 공동체, 생명의 미래’가 25-26일 서울 AFI 전진상센터에서 열렸다. ⓒ김수나 기자
한국주민운동 50주년 기념 워크숍 ‘전환의 시대, 가난, 공동체, 생명의 미래’가 25-26일 서울 AFI 전진상센터에서 열렸다. ⓒ김수나 기자

가난, 공동체, 생명의 미래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25-56일 진행된 워크숍과 토론에서는 한국 주민운동 50년에 대한 성찰과 전환의 시대 주민운동의 방향 및 대안이 ▲한국 사회 주거 문제 ▲도시에서의 마을 전환 운동 ▲노동자 운동과 지역 운동의 접점 ▲기후위기와 빈곤 ▲시군구 단위 주민 조직 운동 ▲지역공유경제를 중심으로 논의됐다. 

먼저 한국 주민운동의 역사를 되짚은 최종덕 전 대표(한국주민운동교육원)는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주민운동이 보편화했지만 불평등 심화와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맞은 시대에 주민운동은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차별, 소외 등 모든 억압을 낳는 가난을 핵심에 놓아야 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치와 협의의 주체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사회적 힘을 구축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민운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와 농촌이 ‘우애의 공동체’가 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하승수 대표(공익법률센터 농본)는 농촌이 소멸 위기에 있지만 농촌 현실에 관심을 두고 농촌을 지키려는 주민운동이 있어 아직 희망이 있다면서 “도시에서는 도시 농업을 하고 작은 규모라도 재생에너지 발전을 하고 쓰레기를 줄이며 이웃과 나누고 함께 살아가려 노력하는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촌에서는 농촌을 파괴하는 개발에 맞서고 농촌을 사람이 계속 사는 곳으로 지켜나가고 에너지, 먹거리, 주택 등 관련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농촌 마을이 이뤄 온 자치를 지키고 활성화하며 도시 주민운동과 농촌 주민운동이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호 책임연구원(한국도시연구소)은 한국 사회 주거 취약층이 더 목소리를 내고 이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서는 “지역을 거점으로 노동조합, 지역단체, 지역 정당 등에서 세입자 조직화 운동이 모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독일,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진행된 집세 파업과 세입자 운동을 예로 들며, “사회권으로서 주거권은 아직 한국에서 낯선 개념이지만 지난 10여 년 전부터 철거민 운동 외 다양한 주체들의 운동에서 청년주거 운동과 같은 주거권 운동이 시작됐다”면서 “지난해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매우 미약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이라는 세입자 권리조항이 처음 도입되는 등 한국도 세입자 조직이 만들어질 계기가 있다”고 봤다.

한국주민운동 50주년 기념 워크숍 ‘전환의 시대, 가난, 공동체, 생명의 미래’가 25-26일 서울 AFI 전진상센터에서 열렸다. ⓒ김수나 기자<br>
한국주민운동 50주년 기념 워크숍 ‘전환의 시대, 가난, 공동체, 생명의 미래’가 25-26일 서울 AFI 전진상센터에서 열렸다. ⓒ김수나 기자

촘촘히 연결된 관계들, 접점을 늘리자

전환 마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유희정 대표(전환마을은평)는 기후위기 시대 마을이 어떻게 자립해서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단위가 될 수 있는지 구체 사례를 소개했다.

전환 마을 운동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탈산소 사회를 준비하고 지속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운동으로 지역경제 강화, 지역에너지 자립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각 마을의 형편에 맞게 대안적 삶을 추구한다. 현재 전 세계 50개 나라에 1만 개 전환 마을이 있다. 공유 공간 마련, 텃밭 농사와 먹거리 생산 및 도시락 나눔, 생활재 공동 생산, 공유자산 구축, 재생에너지 활용, 기후위기 학교같이 구성원의 취향과 상황에 맞춰 그 활동은 매우 다양하다.

유 대표는 “기후위기 시대에 고립되지 않고 얼마나 촘촘히 연결돼 있는가, 마을이라는 공유지를 통해 접촉면을 늘리면 에너지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고 어렵지만은 않다”면서 “취향 공동체, 각자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만나 접점을 늘려가는 것, 관계의 전환이 기후위기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한석호 사무총장(전태일재단)도 불안정 노동자, 청년 일자리 등을 위해 노조가 자기 몫을 내놓거나 지역 주민의 일상을 지원하는 최근 노동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짚으며 그 한 예로 올해 1월 창립된 노동공제연합 풀빵을 소개했다.

풀빵은 고용노동부 인가 사단법인으로 공동 구제 기금을 은행에 맡겨두지 않고 직접 운용한다. 자기 버스비를 털어 배곯는 어린 여성 노동자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평화시장에서 창동 판잣집까지 1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걷고 뛰며 퇴근한 전태일의 ‘풀빵 정신’에서 따온 이름으로 현재 일부 지역과 노조, 작은 사업장 등에서 준비 중이다.

그는 “노동자에게 지역은 일상의 삶이 이루어지는 영역이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대안적 여가, 문화, 보육, 교육, 주거 등 전반 문제를 함께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서 “지속적인 주민운동을 위한 유력한 방안이 바로 공제다. 공제회비를 내고 일상생활에서 혜택을 누리게 되면 주민은 계속 운동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후위기와 주민운동에 관해서는 민정희 공동운영위원장(기후위기비상행동)이 “재생에너지 전환만으로는 기후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일자리 나눔과 노동시간 단축, 생활임금제 임금 격차 해소, 식량, 교통, 에너지, 보건의료, 주택 등 사회적 재화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 풀뿌리 지역사회와 국제적 차원의 집단행동과 연대가 필요하며, 기후행동은 단지 탄소배출 감소가 아닌 더욱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야 하며 기후위기로 가장 크게 영향받는 이들이 의사결정의 중심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 구성원의 주체성은 시군구를 단위로 한 주민조직 운동에서도 중요하다.

조지혜 트레이너(한국주민운동교육원)는 “주민운동이 제도화되고 자치 분권의 시대가 됐지만 주민 참여는 행정기능의 보충적 성격에 머물게 되는 한계도 있다”면서 “주민이 행정이 추진하는 사업에 협조하는 정도의 제한된 권한이 아닌 실질적 권한을 가진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중간지원조직인 활동가들의 지속적 활동을 위한 물적 지원과 함께 역량 강화를 위한 의식화, 조직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주민운동의 단위와 주체들은 사회변혁의 대안이자 가능성으로서 교육, 복지, 협동조합, 자활사업, 주거권 등 여러 부문에서 주민운동을 펼쳐 왔다. 이들은 한국 주민운동 30주년인 2001년부터 가난, 공동체, 생명을 주민운동의 핵심가치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는 도시 빈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가톨릭과 개신교를 중심으로 사회운동 진영이 결합해 1971년 결성됐다. 이에 앞서 1968년 만들어진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에서는 사울 알린스키의 주민조직화 방법론을 교육했고, 1969년 미국 허버트 화이트 목사를 초청해 주민 조직가를 양성했는데 이것이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 결성의 밑바탕이 됐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가 양성한 성직자와 대학생, 주민, 활동가 등은 판자촌 등 현장에서 강제 철거에 맞섰으며 1980년대 지역 빈민운동, 1990년대 주거권과 협동공동체 운동, 2000년대 지역주민운동과 마을공동체 운동 등으로 나아가는 뿌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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