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다니 7,13-14; 묵시 1,5ㄱㄷ-8; 요한 18,33ㄴ-37

비오 11세 교황(1922.2.6.-1939.2.10.)

가톨릭교회에는 전례주년이 있습니다. 전례주년이란 한 해를 주기로, 한 해의 흐름 안에서 지정된 거룩한 날들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업적과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를 묵상하는 고유한 역법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 102장 참조) 지금 형태의 전례주년은 4세기 이후 발전됐으며 그 시작은 주님의 파스카 사건과 부활 대축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비오 11세 교황께서 1925년 12월 11일에 제정한 대축일이며, 다른 기념일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으로 고정됐습니다.

오늘의 이 날은 비오 11세 교황의 재위기간에 벌어진 1차 세계대전과 구체제의 붕괴, 2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사상의 확산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당시 두 차례의 참혹한 대전과 인종 차별 및 학살이라는 비극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과 슬픔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세계대전의 원인은 매우 복잡합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전체주의 사상이라는 악마적 광기와 침략에 대한 야욕, 그리고 당시의 대공황과 여러 나라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서 시작됩니다. 도미노처럼 전쟁과 침략 및 흡수 합병은 정당화됐고, 전 세계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공식 사망자만 5646만여 명(1차 대전 사망의 7배), 2100여만 명의 난민과 집계되지 않은 수많은 사상자, 물적 피해와 잔인한 전쟁범죄, 인종청소 등 그 결과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1925년부터 시작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유래

그런 전쟁의 참화 속에서 비오 11세 교황은 평화를 위한 노력을 단행하십니다. 전체주의와 인종 차별, 전쟁에 저항할 것을 선포하셨고, 교황 스스로도 평화를 촉구하는 여러 가르침을 직접 선언하셨습니다. 특히나 두 회칙,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의 억압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논 압비아모 비소'(Non Abbiamo Bisogno, 1931.6.29), 독일제국 안에서의 종교적인 상황이라는 부제를 단 회칙 '미트 브렌넨데르 조르게'(Mit brennender Sorge, 1937.3.14)는 전체주의와 인종차별을 강하게 비판하는 문헌입니다. 그 속에서 평화를 이루는 방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와 평화를 위한 인간의 노력임을 재확인합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비오 11세 교황은 즉위 해인 1922년 12월 23일 회칙 '우비 아르카노 데이'(Ubi arcano Dei)를 통해 인류의 진정한 평화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가능함을 강조했으며, 이 회칙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Pax Christ in regno Christi)였고 이는 비오 11세 교황의 일생일대의 사목 목표였습니다. 3년이 흐른 1925년 12월 11일 발표한 회칙 '과스 프리마스'(Quas Primas)를 통해 10월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해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잔인했던 나치에 맞서 저항했던 비오 11세 교황과<br>아우슈비츠에서 동료를 위해 순교한 콜베 신부와<br>독재정권에 저항한 김수환 추기경,<br>그 밖에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br>수많은 그리스도인을 떠올려 봅니다.<br>그런 끔찍한 현실을 목격하며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을까?<br>아니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잘못된 현실에 대해<br>나는 얼마나 사랑과 형제애를 외칠수 있을까?<br>그런데 시간은 참 빨리 지나네요.<br>그런 고민만으로 시간이 간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이주형<br>
잔인했던 나치에 맞서 저항했던 비오 11세 교황과
아우슈비츠에서 동료를 위해 순교한 콜베 신부와
독재정권에 저항한 김수환 추기경,
그 밖에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떠올려 봅니다.
그런 끔찍한 현실을 목격하며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잘못된 현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사랑과 형제애를 외칠수 있을까?
그런데 시간은 참 빨리 지나네요.
그런 고민만으로 시간이 간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이주형

성물은 악세세리가 아님을

수많은 인명이 덧없이 사라져 갔고 파괴와 죽음이 만연했던 당시 상황에서 가장 가슴아파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온 인류와 화해하셨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 사랑과 용서를 거부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끔찍한 일을 일삼아 왔습니다. 세계대전은 지난 일이 되었지만, 오늘날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 용서와 화해, 이웃을 형제로 여기는 마음, 나누고 봉사하는 삶이 희미해진다면 일상과 현실, 세상과 사회는 평화를 이루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 가지려는 욕심, 재화와 번영에 대한 집착,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나쁜 마음, 하느님을 인식하지 않는 교만함, 미움과 증오는 결국 지옥도를 그리는 소재일 뿐입니다. 왜 그리스도가 참된 왕이십니까? 섬기고 봉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참됨이고 의미 있는 것이며, 진정한 평화의 길이자 왕이 걸어야 할 길이고 또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초대를 받은 이들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살 때에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 책상 위의 성모상, 벽에 걸린 성화와 손목에 찬 묵주기도, 손가락의 묵주 반지, 가슴에 건 십자 목걸이는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려는 마음으로 내 것을 양보하고, 이웃을 보살피며, 용서와 화해를 베풀라는 하느님 자녀라는 신분증입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언제고 우리에게 찾아올 죽음과 종말, 심판의 날을 묵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초심을 기억하고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회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함께 기도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묵시 1,5ㄱ-7)

 

이주형 신부(요한)

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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