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세계의 미래는 함께라면 희망이 될 것입니다”

교종, 9월 22일 수요 교리교육, 모든 종교인의 연대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 22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진행한 수요 일반 접견 교리교육에서 지난주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사도적 순방에서 만난 다양한 그리스도교 종파와 유대교, 이슬람 등 다른 종교인들과 가장 취약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모든 이들이 연대해 함께하는 세상이라야 희망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저는 지난주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에서 ‘제단 위에 서 있는 십자가의 품에 안긴 하느님 백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특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52차 세계성체대회 폐막미사에는 ‘겸손하고 이타적인 사랑의 길 표징’인 성체와 십자가의 신비 앞에 모인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참여를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고 존중하는 사랑, 세속적인 것을 정화하고 본질로 이끄는 신앙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슬로바키아 사스틴 ‘칠고의 성모’ 성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무엇보다 경배하고, 기도하고, 걷고, 방황하고, 참회하고, 그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의 기쁨을 느끼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와 같아야 합니다. 경배하고, 기도하고, 걷고, 방황하고, 참회하십시오. 특히 이것은 소비주의와 단일사상의 여파로 하느님 존재가 약화되는 유럽 대륙에서 중요합니다.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우리를 주님과의 친숙함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치유의 응답은 기도, 증거, 겸손한 사랑에서 옵니다. 겸손한 사랑, 이 아이디어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은 섬기는 것입니다. ‘기억이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공동체가 겪었던 무신론자들의 박해를 기억해야 합니다. 슬로바키아의 연로한 주교님 한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공산당 독재정권에서 박해를 받을 때 주교님은 전차 운전사였습니다. 그는 비밀리에 주교로서 자신의 일을 했고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기억이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역사의 기억,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신앙과 그리스도인 생활 뿌리에 대한 ‘감사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전통과 뿌리는 보존하되 이를 이념화해 고착시켜서는 안 됩니다. ‘신앙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뿌리’에 대한 ‘감사의 기억’은 유럽 중심부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헝가리 민첸티 추기경과 코렉 추기경, 복자 파벨 페테르 고이디치 주교와 같은 유럽의 빛나는 신앙의 증인들을 기억합시다. 슬라브 민족 복음화 주역인 9세기 성스러운 형제 시릴과 메토디우스에게로 내려가는 뿌리입니다. 저는 이 뿌리가 항상 살아 있고 성령이신 생명의 피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러한 뿌리는 보존되어야 합니다. 박물관 전시물이 아니며, 이데올로기화되거나 명성과 권력, 이익을 위해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그분들을 죽이는 일입니다! 성 시릴과 메토디우스는 우리가 기념해야 할 인물이 아닌 본받아야 할 모범, 항상 복음화 정신과 방법, 시민적 헌신을 배울 수 있는 교사들입니다. 유럽을 마음으로 여행하는 동안 저는 종종 유럽연합의 아버지들을 생각했습니다. 패션의 이데올로기적 식민화를 유통하는 기관이 아니라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 유럽연합 조직을 희망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버리지 말아야 할 ‘뿌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던 뿌리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의 짙은 가지’가 돋아나게 됩니다.

세 번째는 ‘희망’입니다. 저는 유럽의 희망을 슬로바키아 코시체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젊은이들 눈에서 보았습니다. 젊은이와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희망입니다. 목숨을 걸고 폭력에 맞서 자신의 존엄성을 변호한 슬로바키아 소녀 안나 콜레사로바의 간증은 얼마나 강력하고 예언적입니까? 여성에 대한 폭력은 어디에서나 열려 있는 상처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간증이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많은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노숙자들을 환영하는 브라티슬라바 베들레헴센터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과 코시체 외곽 로마 게토 한가운데서 만난 살레시안의 사목적 헌신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형제다. 우리는 그들을 환영해야 하고, 가까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희망은 결코 혼자 가지 않습니다. 부다페스트와 슬로바키아에서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다른 전례들과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의 형제들, 유대교 형제들, 다른 종교의 신자들과 가장 약한 자들과 함께 우리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래가 함께라면 희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프간 탈출한 세 그리스도교 가족들에 대한 교종의 환영“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 22일 수요 교리교육 가르침 후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어린이 7명을 포함한 세 가정의 15명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환영했다. 한 여성은 탈레반에 목숨을 잃은 남편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반지와 드레스를 프란치스코 교종에 전달했다. 교종은 반지를 환영하는 조건으로 ‘우정의 서약과 희망의 표시’로 그녀가 간직하도록 했다. 그녀의 세 딸과 아들은 14살부터 25살까지로 그들의 눈에는 안도와 새로운 희망의 빛이 보였다. 그들은 몇 년 전 트럭 아래 숨어 카불을 탈출한 작가 알리 에사니가 조성한 연대 네트워크 재단의 도움으로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역에 새집을 마련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간 브라더스’는 ‘Meet 인권재단’이 이탈리아 민간 및 정부 기관 협력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추구하기로 선택한 인도주의 캠페인 슬로건이다. 세 가족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직업을 찾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체적 지원으로 받게 된다. 한마디로 새로운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약속의 상징으로 ‘교종의 반지’를 간직하게 되었다.
 

“사람의 가치는 지위나 은행계좌가 아닌 봉사로 측정된다.”

프란치스코 교종, 9월 19일 연중 제25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연중 제25주일 낮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하느님 관점에서 사람의 가치는 지위, 역할, 사회적 성취 또는 은행 계좌 보유금액이 아닌 가난한 이웃에 대한 봉사를 기준으로 측정된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신앙인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 미소한 사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따뜻이 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광장에 모인 군중들은 최근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사도적 순방을 마치고 발코니에 등장한 프란치스코 교종을 요란한 박수와 환호로 환영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마르 9,30-37)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35절)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의 관점에서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 세속적 성공과 은행 계좌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봉사로 측정됩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가장 작은 사람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따뜻이 환영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남들보다 탁월해지고 싶습니까? 위대해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작게 만드십시오. 예수님의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는 중에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하는 문제로 논쟁한 것에 대한 멋진 ‘역전’을 보여줍니다. 이는 제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던 기준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더 이상 그가 수행하는 역할, 그가 하는 일과 일에 대한 성공, 은행 계좌에 있는 돈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위대함과 성공에는 다른 척도가 있습니다. 즉, 봉사로 측정됩니다. 가진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공의 방법입니다! 이는 ‘십자가의 맛’이 깃든 성공을 향한 큰길입니다. 섬김은 예의의 표현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역할을 한마디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세상의 정신을 거스르는 봉사와 겸손의 길,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충실성은 기꺼이 봉사하려는 우리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십자가와 같은 맛’이기 때문에 종종 돈이 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가용성이 커질수록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더 자유로워지고 더 많이 섬길수록 그들의 어려움과 필요를 통해 더 많이 하느님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봉사의 우선순위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강력한 제스처를 취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아이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인 중앙에 세우십니다. 그리고는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37절)고 말씀하십니다. 즉 작은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봉사의 길은 바로 여기로 연결됩니다. 무엇보다 먼저 봉사할 사람이 있습니다. 받을 필요가 있고 돌려줄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환영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계신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가난한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부드러운 포옹을 받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환영합시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봉사의 모범이신 탁월한 종 마리아께 우리가 이러한 길을 걷도록 도와주실 것을 전구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내가 가장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니면 그날의 제자들처럼 개인적 만족을 찾고 있습니까? 나는 인생을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나 자신을 위한 경쟁으로 이해합니까, 아니면 탁월함이 봉사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구체적으로 보답할 수단이 없는 사람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까? 돌려줄 수 없는 사람을 돌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친척과 친구만 돌보고 있습니까?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멕시코 홍수피해 위로, 프랑스 라 살레트 성모발현 175주년 기념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후 최근 순방한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인들에게 인사한 후 2주 전 강력한 허리케인으로 툴라강이 범람해 홍수와 정전으로 인한 치료 장비 가동 중단으로 사망한 입원 환자들을 포함한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특히 교종은 피해를 본 멕시코 이달고주에서 2주 전 한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들을 회상하고 애도했다. 그들은 폭우로 인해 툴라강이 범람한 후 홍수와 정전으로 인명 구조 장치가 중단된 후 사망했다. 또한 교종은 세계 각처에서 외국에 부당하게 억류된 사람들이 속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촉구했다. 교종은 이들이 억류된 것은 다양한 경우로, 때로는 원인이 다르고 복잡한 경우도 있지만 정의에 충실한 이행으로 이 사람들이 가능한 한 빨리 고국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끝으로 교종은 175년 전 이날, 두 소년에게 발현하여 눈물을 흘리신 프랑스 라 살레트 성모성지의 기념행사를 축복하면서 마리아의 눈물은 우리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눈물과 겟세마니에서의 고통을 생각하게 하며, 그것은 우리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고통을 반영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기라는 시의적절한 호소라고 강조했다.
 

“하느님의 자비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면을 포용하신다.”

교종, 예수고난회 수도회 3백 주년 국제신학대회 메시지에서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 21일 예수고난회 수도회 창립 3백 주년을 기념해 바티칸 라테라노 대학 후원으로 개최된 국제신학대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이번 신학대회가 ‘십자가의 지혜에 비추어 현대사회의 도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여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수도회 총장 요아킴 레고 신부에게 전달된 메시지에서 교종은 이 대회는 수도회 창설자이신 십자가의 성 바오로의 염원에 부합하며,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선포되고 전파되어 세상의 기대와 희망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시지 내용.

이번 국제신학대회는 예수고난회 창설자이신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전의 염원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항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하느님 자비에 의해 포용된 모든 인간적 차원을 보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인간에게 두루 미치며 하느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모든 인간의 수평적 관계에 연결하여 인간 조건의 극한에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마음의 겸손과 이성을 결합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논쟁과 의제를 피하고 말이 들쭉날쭉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문화의 다양성 속에 뿌려지는 귀중한 씨앗을 ‘자신 있게’ 추구하기 위해 모든 남성과 여성의 가장 연약하고 구체적인 조건을 다루도록 초대됩니다. 십자가는 ‘모든 장소와 시간의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원천’입니다. 특히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류가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더욱 그러합니다. 부디 이번 신학대회가 하느님의 계획에 충실하고 인류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복음화를 촉진하기 위해 십자가의 지혜에 비추어 현대의 도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여할 것을 희망합니다.
 

“진리와 용서만이 교회를 치유할 것입니다.”

교종, 중부 유럽 교회 성추행 아동학대 보호 국제회의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열린 중부와 동부 유럽교회의 성추행으로부터 취약한 아동과 성인들 보호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주교, 사제, 수도회 대표들과 평신도 전문가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하느님 자녀를 보호하는 우리의 공동 사명’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회의 메시지에서 교종은 교회에서 자행되는 성범죄 위기는 피해자의 말을 겸손하게 경청하고, 진실을 찾고, 용서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적절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이번 회의가 성범죄 잘못을 강하게 지적하면서도 무엇보다 교회의​ ​미래에 필요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비움의 시간’이 돼야 한다고 격려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진실과 용서’만이 교회를 치유할 것이며, 여러분들이 ‘이러한 필요한 조치’를 취한 첫 번째 사람이 아니며, 마지막이 될 가능성은 작지만 확실히 ‘여러분은 혼자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이번 회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2019년 2월 로마에서 열렸던 세계 주교회의 지도자 회의에서 확인된 성폭력 재앙에 대한 대응 우선순위를 재확인했다. 교종은 당시 연설을 인용해 “피해자들의 복지가 교회 명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이러한 잔혹한 행동의 진실을 직시하고 겸손하게 희생자와 생존자들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교회가 다시 한번 자신 있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환영과 안전의 장소로 여겨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희생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와 함께, 미래뿐 아니라 중부 유럽 교회 미래에 진정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토론에 전념할 것을 권합니다. 교회의 마음, 심지어 그리스도인의 마음까지도 우리의 책임과 만납니다. 희생자들의 말을 듣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여전히 침묵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실수와 실패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분명히 오류와 실패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수와 실패를 깨닫는 것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 수 있지만 또한 찬란한 은혜의 시간, 비워지는 시간이 되고 우리의 ‘사랑과 상호봉사’라는 새 지평을 여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인식한다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 지점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겸손한 도구가 되십시오”라고 말했다. 교종은 끝으로 “저는 여러분이 주님의 겸손한 도구로 학대의 희생자를 섬기며, 그들을 공동 미래의 도전을 위한 동반자이자 주인공으로 여기고, 더욱 충실하고 회복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함께 배우도록 촉구합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느님 백성과의 친밀함이 우리의 틀을 형성합니다.”

슬로바키아 예수회원들과 프란치스코 교종의 대화록 공개

프란치스코 교종의 슬로바키아 방문 기간인 지난 9월 14일 개인적으로 슬로바키아 예수회원들을 만나 질문과 답변을 통해 나눈 대화록이 최근 공개됐다. 교종은 예수회원들을 만나 교회는 분별력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그분 백성들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예수회원들은 교종에게 지난 7월 수술을 받은 후의 건강, 슬로바키아 예수회의 사명, 슬로바키아 교회가 직면한 도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문했다.

대화록 내용.

사목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그분 백성들과의 친밀함’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과 겨루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과의 친밀함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형제간의 자선적 사랑, 즉 친밀함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또한 교종을 비롯한 주교와의 친밀함입니다. 1974년 제32차 예수회 총회에서 바오로 6세께서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관구에 대한 순명의 정신을 유지하고 변방과 갈림길을 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과 가까이 있는 것은 우리들의 ‘기초’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는지, 우리 백성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분리하고 미묘한 보편성을 향해 나아가면 뿌리를 잃게 됩니다. 우리의 뿌리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에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회는 특히 열정이 부족하거나 황폐한 시대에 분별과 기도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예수회 설립자이신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영성수련은 더 널리 잘 알려야 할 식별규칙이 포함된 진정한 보물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더욱 ‘안전을 찾아 뒤로 가고자 하는 유혹’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은 실제로 보편적인 문제가 아니라 특정 국가 교회에 해당하고 있습니다. ‘의존성과 가상성’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에서는 ‘자유로움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예수님을 원망한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의 예를 기억합니다. 시노드에서 가족에 대한 일을 생각하면 사목 경험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두 번째 결합을 맺은 부부가 더 이상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성적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과 동행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바오로 6세가 말씀하신 ‘교차로를 두려워합니다.’ ‘경직성과 성직주의’로 탈출구를 찾는 것에 경고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교회가 기도와 분별력으로 자유로워지기를 요청하신다고 믿습니다. 복음의 자유를 가져오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솔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해야 합니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니라 ‘분별과 순종’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슬로바키아 교회의 도전과 비평가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진정한 대화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공격과 모욕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교회는 이것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악마의 일입니다.”라고 이야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또한 전 세계 주교들과 협의한 결과 베네딕토 16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진정한 의도로 돌아가기 위해 공의회 이전 전례 미사 봉헌을 재정의하기로 한 결정도 예식주의와 마찬가지로 바티칸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교회가 계속 앞으로 전진하기를 희망합니다. 이는 ‘혁명을 일으키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을 합니다. 여기에는 많은 인내와 기도, 그리고 많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세계적 문제인 이민자와 난민증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민자들은 수용 국가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대로 환영받고, 보호받고, 성장하고,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주민들을 사회에 통합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그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며 환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주 현상 증가의 원인과 결과, 특히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한 이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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