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연중 제21주일) 여호수아 24,1-2ㄱ. 15-17. 18 ㄴㄷ; 에페 5,21-32; 요한 6,60ㄴ-69

땅!
구약성경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바로 땅입니다. 추정컨대 기원전 1800여 년 전 이스라엘 역사는 성조 아브라함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첫걸음을 떼면서 시작됐고, 그의 후손들이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을 향한 탈출과 그 땅의 쟁취에서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왕정의 실패와 타락 속에서 그들의 역사는 정의와 공정을 벗어났으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함락 그리고 기원전 587년 바빌론 유배라는 참혹한 결과를 빚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주어진 유배 뒤 귀환과 성전의 재건을 통해 그들은 땅을 되찾고 선택받은 민족의 삶을 이어가는 듯했으나 연이은 강대국의 침략 속에서 결국은 기원후 135년 로마에 의한 패망, 성전의 파괴, 땅으로부터의 추방이라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20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그 약속의 땅은 역설적이게도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성지가 되어버렸고 여전히 중요한 곳입니다.
 

축복과 저주의 차이?
성경을 저술한 저자들은 이런 역사를 체험하며 올바른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신명기의 역사서들은 하느님께 대한 불순명, 우상을 숭배했던 패착이 땅을 빼앗기는 유배를 초래했고 이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합니다. 땅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시고 보시니 좋았던 축복의 땅이 왜 저주와 시련의 땅이 되었습니까? 성경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제간 살인 사건과(카인과 아벨) 홍수 이야기는 그런 잘못의 결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됨을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의 핵심은 땅에 대한 쟁취일까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땅을 얻는다는 이야기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땅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땅은 하나의 소재일 뿐입니다. 핵심은 올바른 삶입니다. 땅이 있건 없건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다름 아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이 부재하신 땅은 축복의 장소가 아니라 저주의 장소이며, 죽음의 광야가 오히려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음을 성경은 늘 이야기합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그리스도인 누군가에게 생명과 복이 되어야!
한자 복(福)을 살펴보면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머무는 땅으로 해석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하느님과 함께함은 축복과 강복이 충만한 따스하고 밝은 느낌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라는 식의 무거운 경외함도 들어있습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욕심이 아닌 양심을 갖고 올바로 살아야 한다는 명령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과 함께함? 그것은 한 마디로 양심이 있는 올바른 삶입니다. 그런 양심이 무너지고 탐욕이 판칠 때 삶과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재난으로 치닫게 됩니다.

복을 바라는 것은 모든 이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복은 정의와 공정, 이웃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기반이 될 때 올바로 작동됩니다. 종교와 신앙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고, 그분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지는 결국 삶의 열매로 판별됩니다. 땅이라는 가시적 실체를 소유함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인이 머무는 바로 그곳이 축복의 장소입니다. 그 축복이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고 많은 이에게 생명과 기쁨, 위로와 희망을 줄 때 그것이 올바른 축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하는 베드로 사도 이야기는(요한 6,68) 우리로 하여금 참된 삶과 축복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바로 생명의 말씀을 진정 올바로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 축복이 됩니다.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창세12, 2)


이주형 신부(요한)

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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