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병원장에 주치의 인권교육 실시 권고
인천교구, "임종 관행이라 여겨 반성", 연명치료 거부 등 사전 준비하겠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선종한 김병상 몬시뇰(인천교구)이 본인의 위암 진단 사실을 고지받지 못했고, 스스로 치료법을 선택하지 못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23일, 주치의가 본인에게 위암 진단 사실을 알리지 않고, 보호자들과 상의해 수술하지 않기로 결정 한 데 대해 “(수술 미진행이) 의학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면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환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어야 마땅하다"고 결정문을 통해 밝혔다.

인권위는 “이는 피해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핵심적으로 필요한 과정”이라면서, 해당 병원장에게 주치의에 대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지난해 제기된 진정에 대한 결과다. 김 몬시뇰이 자신의 위암 진단 사실을 알지 못해 치료가 이뤄지지 못한 사실 등에 대해 김 몬시뇰과 유가족을 피해자로 하고 주치의와 요양원 원장을 피진정인으로 하는 제3자 진정에 대해 인권위는 "인권침해"라고 본 것이다.

김 몬시뇰은 유신헌법 철폐, 동일방직 사건 등 사회운동에 힘쓰고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지내며 민주화에 헌신한 인천교구 원로사제로, 지난해 4월 25일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인천교구가 설립, 운영하는 요양시설에서 지내다 건강 악화로 지난해 4월 16일 입원했고, 임종 전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는 작성돼 있지 않았다.

김 몬시뇰은 2019년 10월 수술이 가능한 초기 위암을 진단받았지만, 주치의는 진단 사실을 김 몬시뇰에게 알리지 않았고, 가족들과의 상의만으로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주치의는 “요양원 원장과 여러 번 논의한 결과 이를 고지했을 때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으로 현재 상태가 악화될 것을 우려”했다면서 “피해자를 더 잘 모시기 위한 결정이지 무시해서 고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피해자가 본인의 위암 진단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스스로 삶을 결정할 만한 판단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라고 볼 수 없고, 피해자의 평소 건강에 대한 염려 성향을 고려한다고 해도 위암 진단 사실이 피해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4월 27일 인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된 김병상 몬시뇰의 장례미사. ⓒ배선영 기자<br>
지난해 4월 27일 인천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된 김병상 몬시뇰의 장례미사. ⓒ배선영 기자

한편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교구가 주치의에게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연명치료를 시행하지 말 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지만, 유가족이 요청한 바는 없다. 

주치의는 생전 고인에게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자 평소 뜻대로 임종을 맞게 도왔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요양원 원장은 김 몬시뇰이 2018년 10월경 처음 입소할 때 “사전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당시 피해자가 뇌졸중 후유증으로 글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 진행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건강이 좋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서 편하게 가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결정문에 담긴 유가족 진술에 따르면, 2020년 4월 24일 오후 3시를 전후해 임종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지만 모든 가족의 면회도 금지됐다.

이에 대해 유가족은 요양원 입주 뒤 피해자의 건강 문제에 가족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려웠고, 입소 초기와 달리 의사결정 대부분에서 가족이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인천교구, “노인 환자 인권 보호에 대한 이해 부족”
“임종 과정의 관행이라 여긴 잘못된 행위 반성”

이에 대해 인천교구는 결정문에서 “노인 환자 인권 보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인천교구는 “피해자가 살아생전 몸에 어떤 것도 대지 말라는 말씀만 했기에 이것을 동의했다는 사실로 받아들여 평안하게 선종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교구는 주치의에게 어떤 외부적 의술 행위를 하지 않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구는 주 보호자인 법률적 가족에게 병원을 옮기는 결정이나 연명치료 거부, 심폐소생술 거부(DNR) 동의를 얻지 않았다”면서 “법률적 가족의 동의나 본인의 동의를 서면으로 받지 않고 교구가 결정한 것에 있어 잘못된 점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천교구는 “현재 교구는 피해자의 임종 과정에 있어 관행이라고 생각했던 잘못된 행위를 반성”한다면서 “교구 내 모든 사제에게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법률적 가족으로부터 교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보호자 위임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인천교구는 “이번 진정 사건을 통해 법률적 가족과 충분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하고 일방적 결정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면서 “(가족 간) 관계를 고려하지 못한 채 관행적 입장에서 보호자로 생각하고 결정함으로써 다른 법률적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는 요양원 원장과 교구가 김 몬시뇰의 임종 임박 시 가족들의 면회를 막은 점 등 문제 행위들은 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각하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고인이 임종을 앞두고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의식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가족이 도착할 수 있었던 상황, 피해자 임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 명만 병실을 지켜야 한다면 간병인이 아닌 가족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명복을 빌고자 한 가족의 의도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감정이므로 유가족 ○○○에 대한 면회제한 조치” 및 “가족이 피해자의 임종 시까지 함께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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