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그해 겨울, 한동안 나는 새벽에서 아침 사이 버스를 타고 수서를 지나 복정역을 거쳐 분당에 있는 일터에 나가곤 했다.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새벽차를 타면 얼어버린 공기가 싸늘했다.

성남으로 들어가는 길목, 복정역 넓은 광장엔 나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자신을 팔러나온 남자들로 북적거렸다. 잎을 떨궈낸 가로수들과 거무티티한 잠바차림의 남자들은 한몸 같이 겨울나기가 힘겨워보였다. 다행히, 그들 가운데 커다란 드럼통을 잘라내 공사판에서 주워온 나무를 넣고 태우는 난로불은 연기와 열기가 새벽공기를 달구며 인력시장을 흥청거리게 만들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그들 사이에서도 건장한 몸에 기술력을 소유한 측들은 봉고를 몰고 온 고용주와 눈이 맞아, 일찌감치 차를 타고 자리를 뜨곤 하였다. 더러는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느라 흥정으로 실강이하는 모습도 버스 안으로 다 들어왔다.

그해 겨울, 복정역의 모습은 꿈속의 한 컷 풍경처럼 아침마다 되풀이되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서너 시 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나는 으레히 졸곤했다. 때론 성남과 수서 사이, 도시외곽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겨울과 봄, 삶과 죽음, 결혼과 미혼 그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불안정을 넘어서고 싶은 갈망에 시달렸다.

어느 날부턴가, 오후 서너 시 경의 복정역 풍경이 다가왔다.

짧은 겨울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각, 복정역엔 아직도 서성이는 무리가 남아있었다. 더러는 해바라기를 하고, 일부는 드럼통에 남은 온기를 뒤적이는 그들의 모습은 늦가을 강남으로 떠나지 못한 제비들처럼 난감해보였다. 하나같이 비실비실 부실한 몸체의 그들은, 하루의 삶을 잃어버린 율리시즈들이었다. 당당히, 하루의 일당을 쥐고 들어가야 아내와 자식들을 되찾고 일용할 양식을 먹으련만... .

'성경 속의 포도원주인이 현실 속으로 나타나시어, 그들이 일당을 거머쥘 가능성은 있는 걸까...?'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이나, 오후 늦게서야 일에 합류한 자들 모두에게, 일당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을 주신 하느님. 복정역 인력시장에서 오후 늦게까지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나는 하느님의 깊은 연민에 코끝이 시렸다. 어느 죄 많은 여인이 그랬듯, 머리를 풀어 주님의 발을 닦아드리고 싶었다.

시들어 버려진 시레기마냥 얼어가는 그들을 말없이 하루의 일꾼으로 삼아주시어, 그들의 생을 열어주시는 분... .

'주여, 당신에게 생명이 있거늘 제가 어디로 가겠나이까'

연민이 곧바로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연민이 가능할까...?
한 생애, 복정역 거리를 서성이는 2007년 율리시즈들, 그 속의 나... 하느님의 포도원을 찾아가는 길이

있을까. 지금 여기에.

/이규원 2007-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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