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제목을 지어놓고 보자니 백인들만 득실대는 동네에 사는 흑인의 한탄이거나, 아니면 요사이 우리나라에서도 날로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고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전적으로 내 얘기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내 처지가 백인 동네의 흑인이나 다문화 가정의 안주인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허! 그러고 보니 몹시 비극적이다. 슬프다...


세 벌 신사가 아닌

우선 내게는 양복이 세벌 밖에 없는데 그 양복은 내가 단 한 번씩 입었던 양복들이다. (아니다. 내 결혼식 날 입었던 양복은 15년 후 어머님 장례식 때도 입었다. 그러니 그 양복은 두 번 입었다.)

우선 내 결혼식 날 입었던 양복, 큰 처남 결혼식 날 입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바지 차림으로 갈아입었던 양복, 작은 처남 결혼식 날 입었다가 역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던 양복이 그것들이다.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양복을 입지 않았다. 왜? 죽도록 답답하니까. (나는 지금도 그럴싸한 기업체에 매일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분들에 대해서 한없는 경외감을 느끼며 존경하는 바이다. 진심이다.)

나는 연극쟁이다. 지금이야 좀 물러앉았지만 여전히 후배 배우 녀석들과 이따금씩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그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형님! 다음 작품은 언제 올리십니까? 저 캐스팅 하실 거죠?”하는 기분 좋은 얘기를 듣는, 분명한 연극쟁이다. 그리고 그 후배 녀석들이 결혼식을 할 때 나는 한 번도 양복을 입고 간 적이 없다. 그저 답답해서 양복을 안 입었고 결혼식 당사자도 그저 ‘형님은 답답해서 양복을 안 입었구나.’ 했다. (오해 마시라. 연극쟁이들도 남의 결혼식 날 입고 갈 양복 한 벌 쯤은 항상 비치해 놓기 마련이다.) 그저 어떤 녀석은 양복을 입고 오고 나라는 선배 놈은 편한 바지에 샌들을 끌고 오는 것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던 것뿐이다.


성당에선, 미친놈

허나 웬걸... 성당에 다니면서 나는 전혀 가당치도 않은 ‘튀는 놈’, 혹은 ‘몰지각한 놈’, 심지어 ‘미친 놈’의 반열에까지 올라 버리고 말았다.

어머님 병원에 계실 때 발심하여 성당에 다니기로 하고 교리를 받기 시작한 그 해 성탄절이 가까워지던 즈음, 어쩌다 성당에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가게 됐다. 나는 그게 그렇게 천인공노할 만행, 혹은 동정 받아 마땅한 섬망장애로 보이는 일인지 진정 몰랐다. 아직 세례도 받기 전의 예비 신자가 뭘 알겠는가? 아무튼 그 날 저녁, 나보다 훨씬 먼저 영세를 받은 바 있는 내 색시 카타리나는 거의 울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도대체 왜 성당에 그런 차림으로 갔느냐는 둥,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아느냐는 둥 하면서 절규했다. 허나 나는 그저 옷차림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께서 짐작하시듯이 나는 그 이후 성당을 떠난 일이 없고, 당연히 내 복장은 서서히 순치되어 갔다. (순치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저 양말이나 갖추어 신고 눈치껏 자리를 가려가며 코디(?)를 하는 정도지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김영삼이라는 희대의 개그맨이 대통령 놀이를 하고 있을 때, 기억하시는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거리에 쓰레기를 무단 투척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무단 횡단을 감행하는 반국민적 국민들에게 스티커를 발부하여 벌금을 내게 했던 적이 있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당시의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살인마 전두환이 버젓이 서식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이제 생활 곳곳을 옭죄기 시작했다는 생각에 미치도록 화가 났다. 바로 그럴 즈음... 나는 서울의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사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있었다. 마땅히 담배도 하나 피워 물었다. 시원스레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웬 새파란 의경 하나가 내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하셨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정말 조금만 더 자제력이 없었다면 나는 그를 때릴 뻔 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댁한테 그리도 중요한 화두요? 그 화두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남 똥 누는 동안 똥간을 지켜 서 있었던 거요?”
“스티커를 발부 하겠습니다.”
“나는 스티커를 안 받겠소.”
“법을 어기셨습니다.”
“내가 어긴 법이 적법한 법인지 설명해 보시오”
“저는 스티커를 끊을 뿐입니다.”
“스티커를 끊을 따름인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법을 운운하시오. 경찰서로 갑시다.”

나는 어깨에 무궁화가 덕지덕지 붙은 어떤 고위급과 얘기를 더 나눴다.

“일선에서 법 집행하시는 입장에서 담배 한 대 피웠다고 이만 원을 내는 것이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허허허... 때때로 저도 위반합니다.”
(엄청난 고함) “법을 집행하는 사람까지도 어쩔 수 없이 위반할 수밖에 없는 법을 대체 어떤 미친놈이 만든 겁니까?”

그래서 다녀온 프랑스

다행히 나는 별다른 일 없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누구에겐가 프랑스에서는 마음대로 거리에 꽁초를 버리고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게는 산소 호흡기가 필요했다. (당시 나는 무지하게 젊었으니까) 나는 여기 저기 돈을 꿔서 프랑스로 날아갔고 비록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지만 ‘자유’를 마음껏 호흡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성당에서 간단한 파티가 있다고 해서 반바지를 입고 갔다. 거기서, 선거 때만 되면 공천을 받지 못해 안달하는 3류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토마스. 다리 꼬고 앉지 마. 다리 내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님들과 동생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맞대응을 했다. 맞대응 했다는 것이 지금도 여전히 쪽팔리긴 하지만...
“왜! 왜 내가 다리를 내려야 돼. 이건 형 다리가 아니고 내 다리야. 알아듣겠어? 내 다리라고...”

야훼에 대한 신심은, 그것이 진실하다면, 사람을 구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 그 분 모습대로 만드신 것이 인간이니까... 그리고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 의지를 선물로 주셨으니까. 투철한 신심으로 무장된 우리 신자들이 누군가를 억지로 자기 틀 안에 맞추려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지 않기를 간곡히 빈다. 그건 개신교도 아닌 망나니 종교를 믿는 이명박이나 할 짓이니까.

 

/변영국 200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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