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그래 바로 이거다. 자전거...
자전거를 하루 10여 킬로미터씩 타 제끼면서 결국은 해냈다.
아 이제 나는 나를 믿는다.

상대적으로 아침 시간이 여유로운 나는 다른 남정네들이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그게 바로 ‘주부 대상 아침 프로그램 탐닉’이라는 매우 색다른,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놀이다. 우선 그 프로그램들은 채널에 관계없이 모두 같은 얘기를 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방송이라는 것이 시류와 유행을 따라 움직이는, 전적으로 대중추수적인 매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출연자의 얼굴과 말투, 심지어 그들의 옷차림까지 다 비슷한데다가 세트의 구성이 또한 별다르지 않으므로 설혹 다른 내용을 얘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다지 별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누가 방송을 ‘듣겠’는가? 방송은 전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세 방송사에서 모두 ‘다이어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내게 포착 되었다. 특히 그 중 한 방송사에 출연한 S라인 몸매의 40대 아줌마가 겪어낸 다이어트 성공기는 거의 ‘투병기’에 가까웠다.


투병기에 가까운 다이어트

우선은 아침에 당근인가 케일인가 아니면 바나나였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기농 야채 즙을 갈아 한 컵 마시고 낮에는 갈지 않은 각종 유기농 과일과 약간의 탄수화물, 그리고 저녁에는 닭가슴살과 아보카도을 비롯한 소량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으로 하루의 섭식 행위를 모두 정리한다는 것이 그 아주머니의 성공담이었다.

내 상식에 그것은 건강한 인간의 식단이 아니라 암이나 여타의 중병을 앓거나 혹은 큰 수술을 받은 환자가 위와 장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먹는 회복식 정도로 보였다. 게다가 그 식단의 가격을 속으로 어림해본 후, 못난 신랑 만나 평생 고생만 하는 우리 마누라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식단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속으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미친, 그리고 재수 없는 분.’

당연히 그 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국 사람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외쳤다.
‘가난한 사람 속내는 뭣도 모르는 이명박 같은 인간들...’
그리고는 곧바로 분기탱천하여 계획을 세웠다.
‘나는 모든 것을 먹을 것이다. 특히 밥하고 김치하고 된장찌개를 고봉으로 먹을 것이다. 물론 밤에는 대패 삼겹살에 소주도 먹을 것이다. 그러고도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곧 나는 짝퉁 MTB를 한 대 샀고 그 길로 하루 10킬로미터 이상씩 페달을 밟았다. 끈기, 혹은 성실과는 담을 쌓은 터라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다행히 집 근처에 호수 공원이 있어 차차 재미가 붙었고 결국 내 몸에서 4근의 기름 덩어리를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세상에, 그러는 동안 혈압도 잡혀서 이제 수축기 혈압이 130을 넘지 않는 정상의 범주에 들어섰다. 물론 나를 죽음에서 지켜주는 고마운 혈압 약은 빼놓지 않고 먹는다)


방송에서도 거짓말

아침 방송을 보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방송국마다 의사를 출연시켜 건강 정보를 주고 있으나 그 의사들이 때로는 서로 반대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한 의사가 토마토는 푸른 부분을 먹어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바로 며칠 후 다른 의사가 토마토는 붉은 부분을 먹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것을 나는 분명히 들었고, 이번에 쇠고기 공방만 보더라도 정부 측 의사들은 광우병을 걱정하는 것은 그저 군중심리에 불과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의사들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하는 판이다.

물론 전자의 ‘토마토’는 프로그램 기획의 차이에 따른 모순일 테고 후자의 ‘광우병’은 당연히 정부 측 사기꾼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데에서 차이점을 찾을 수 있으나 아무튼 어떤 의사들은 ‘거짓말’을 ‘방송’에서까지 한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

고로 나는 권장한다. 모두 먹자. 닥치는 대로 먹어야 한다. 방송국에서, 정부에서, 혹은 의사들이 아무리 먹지 말라고 오두방정을 떨어도 꿋꿋하게 먹자. 그들의 말을 모두 믿었다가는 낭패를 본다. 그리고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면 될 일이다.

광우병에 관련한 촛불 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은 그 더러운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을 어른들이 막아야 했는데 돈타령이나 하다가 이명박을 뽑은 이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고생하고 이제 잡혀갈 위기에 놓인 것이 슬프고 슬프다. 하지만 반면에 참으로 즐겁다. 익지도 않은 과일을 따먹듯이 논공행상에 눈이 어두워 이제 막 민주주의의 첫 발을 디딘 주제에 정치 세력화에 힘을 쏟아 붓느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과거의 진보 진영들이 박아놓은 민주화의 허상을 깨닫게 해주고 독재가 무엇인지 찬연하게 보여주어 우리의 아이들을 의식화시키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고맙기 까지 하다.


이명박 정부가 고맙다

이제 보니 녀석들은 방송에 홀려 생각 없이 괴성을 지르는 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방송도, 신문도, 인터넷도 이미 가려가며 보고, 읽었던 것이다. 게다가 녀석들은 입시 때문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무뇌아가 아니었다. 가혹하게 정부와 이명박을 비판하는 무서운 시각을 충분히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 덕분에 이제 민주화 운동이 다시 시작 되려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고등학생들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발광하는 품새가 안쓰러워, 지나가는 개와 함께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몇 자 적어봤다.

 

/변영국 20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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