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국가기관 혐오 대응 적극 나서야

2020년 총선거를 앞두고, 국가기관과 언론, 시민사회가 선거 때 나오는 혐오표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1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언론개혁시민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토론회에서 ‘혐오 없는 선거,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발제에 나선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는 선거 때 과열되는 혐오표현 문제를 짚고 그 대응방안을 살폈다.

먼저 그는 온라인상의 혐오가 현실의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진 2014년 ‘신은미, 황선 토크콘서트 황산테러 사건’, 거센 여성혐오 여론을 국가기관이 나서 급히 잠재웠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살피며 그간 정치인이 혐오문제를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정치가 혐오와 차별에 침묵하는 동안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정치세력이 떠올랐다. 2016년 총선에 출마한 기독자유당, 2017년 홍준표 대선후보, 2018년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 등의 동성애 혐오, 성차별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특히 2017년 대선 당시 온 국민이 시청하는 후보토론회 방송에서 홍준표 후보가 상대 후보에게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물었던 장면을 언급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찬반 묻기는 혐오정치의 전형으로, (이는) 혐오정치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때도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여론이 빠르게 형성되자, 김진태, 이언주, 조경태 의원 등이 집회 참여, 성명서, 난민법 폐지안 발의 등을 하며 대중의 혐오에 본격 가세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은 그동안 우리나라에 기여한 바가 없어 임금수준을 (내국인과) 똑같이 유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지난 6월 19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발언은 외국인 혐오를 조장한다며, “혐오여론에 정치인이 가담하면 파급력이 크고 혐오논리가 진화한다”고 지적했다.

선거에서 소수자 혐오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정치인이 생길 수 있고, 바닥에 떨어진 지지도를 끌어올리거나 상대 후보를 궁지로 몰아넣는 등 혐오가 선거운동의 전략이 될 수 있어 선거 기간에 혐오문제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17일 서울 정동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선거에서 혐오대응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김수나 기자

선관위, 혐오규제를 위한 다양한 장치 적극 마련해야.... 선거법도 개정 필요

홍성수 교수에 따르면, 규제방안으로 ‘형사범죄화’가 있다. 혐오표현 중 ‘증오선동’에 해당하는 것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정책적 제안 등으로 포장해 전략적이고 교묘하게 발언해 처벌을 빠져나가므로 법적 처벌이 쉽지는 않다.

그는 ‘교묘한 발언’을 형사 처벌하려면 처벌 기준을 넓혀야 하지만, 형사처벌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정치적 견제장치로 역이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선거가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주의자들의 선전장이 될 수는 없으며, 후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 보장과 혐오규제가 충돌하지 않으려면, 선거법 개정과 행정당국의 정책, 인식 개선 등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선거제도연맹의 제안에 따른 선관위의 역할로, 혐오표현에 대한 선관위 구성원의 인식 제고와 내부 정책 수립, 차별과 혐오에 대한 입장표명, 혐오에 대한 공적 대화와 논쟁 확대, 혐오표현 사례 수집, 후보 등 선거관계자와 유권자, 미디어의 인식 교육 등을 제안하고, 혐오표현 금지조항을 담은 선거법 개정도 주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민변 김준우 사무차장은 20대 국회에서 혐오차별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자마자 철회된 상황을 들며, “무엇이 혐오표현이고 어떤 규제가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가라는 생산적, 건설적 논의로 가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올해 하반기부터 시민사회가 나서 국가인권위, 선관위, 법무부, 검찰 등 국가기관에 국제선거제도연맹이 제안한 조치를 이행할 것과 정당, 후보자 등에게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제시, 정책권고 발표, 관련 홍보교육을 펼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권순택 활동가는 “혐오발언이 미디어에 노출되면 언론이 가진 의제설정 기능까지 연결돼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면서 “공직선거법에 따라 후보자 대담토론회 등을 편집 없이 중계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언론인은 생방송에서 혐오발언이 나와도 개입할 수 없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개입이 아닌 인권 보호의 문제로, 최소한 혐오발언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사회자가 언급만 해줘도 달라질 것이라 기대한다. 단순히 누군가가 무슨 발언을 했다는 따옴표식 기사나 찬반만 다룬 기사도 곤란하다. 최소한 그런 발언이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다룬 기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장예정 정책담론팀장은 혐오문화를 막기 위해 선관위, 국가인권위의 역할을 끌어내려면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지방선거 혐오대응 네트워크’ 활동을 통해 “선관위가 혐오발언의 해악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점,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움직일 가능성이 없음을 알게 됐다”며 “국가인권위도 아직까지 단호한 입장이나 대책을 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혐오예방 대응책을 만든다 해도 혐오에 동조하는 수많은 이들은 그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혐오 완전 근절은 불가능하므로 그에 대한 모니터링, 혐오발언, 혐오선동 공론화 등은 여전히 시민사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례민주주의연대 하승수 공동대표가 “형사처벌 대상을 더 특정하거나 다른 방식의 제제, 즉 과태료 부과 등 공적 기관을 통해 혐오발언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주고, 제재하는 방식이 먼저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내년 총선을 위해, 정당과 시민사회가 혐오표현을 모니터링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등, 혐오표현을 하는 정당, 후보자뿐만 아니라 그에 침묵하는 정당, 후보자도 비판하는 여론을 만들자고 말했다.

또 혐오발언을 하거나 전력이 있는 정치인 명단을 공표해 무엇이 혐오인지 논의를 이어 가고, 혐오는 안 된다는 것을 공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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