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징한 쑥”

올 해 초 서울교구 각 성당에서 창조질서보전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청주교구 청천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서 전직 교사이며, 현재는 목수이자 농민인 한 형님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리고 화양 계곡 너머 인적이 드문 계곡 속에서 손수 집을 짓고 살아가는 형님의 옥수수 밭에서 한나절 풀을 매었습니다. 형님 집 옆 옥수수 밭을 처음 보았을 때, 밭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쉽게 생각하고 옥수수 밭두렁에 난 쑥과 풀들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오로 향하는 해가 점점 뜨겁게 머리 위에서 내리 쬐기 시작하고,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으니 일은 힘들어졌습니다. 특히 두렁에 난 쑥은 정말 뽑기 힘들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형님은 한 스님이 밭에 난 쑥을 보고 “이 징한 쑥”이라고 적은 것을 책에서 읽었다고 말했는데, 정말이지 "이 징한 쑥"이었습니다. 뿌리째 뽑아내기도 힘들거니와 뿌리의 크기도 무척 컸습니다. 그렇게 한참 땀 흘리며 밭을 매고 있으니, 형님은 “잠시 쉬었다 하라”며 우리를 부릅니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넘으면 메기가 잡힌다는 시원한 계곡 바로 옆 나무 원두막에서 우리는 새참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보 같은 사람들

형님은 인근 마을 절이 있는 계곡에 사는 선배 귀농자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청천지역이 백두대간과 가까운 청정지역인데, 마을 사람들이 농약을 많이 주는 인삼 농사를 점점 키워가 땅과 물이 오염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난 해 까지는 보지 못했던 인삼밭이 마을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계곡에 들어가 농약과 비료를 주지 않는 생명농업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매년 목표를 정해서 “올해는 계곡 아래 다리까지, 다음해는 절 입구까지”하며 계속 생명농업을 확대해, 어느덧 그 계곡 대부분을 살려내 가재가 생겨났습니다. 형님은 그분과 자기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계곡에 들어가 땅과 물을 살려내는 바보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오늘날 우리 지구의 생태계 위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나갈 수 있다며 사람좋게 웃습니다.


쑥의 영성

한 나절 땀 흘림과, 이야기 나눔 속에 저는 뭇 생명들과 함께 생명ㆍ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 교회의 창조질서보전운동은 "쑥 뿌리와 같은 운동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쑥은 뿌리째 뽑혀 나가도 그 곳에 자신의 작은 뿌리를 남겨놓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뿌리가 다시 땅에서 쑥을 키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과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 지구의 피조물들을 매일 매일 뿌리째 뽑아내고, 상처주고, 더럽힙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지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자본의 끝없는 이윤 창출을 위해 떠납니다. 그렇게 더럽혀지고 망가진 지구 어머니의 살결을, 작게 남겨진 쑥과 같은 사람들이 조용히 살려갑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무감하게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의 아픔을, 쑥과 같이 남겨진 사람들이 묵묵히 치유해갑니다. 쑥의 영성, 쑥과 같은 삶입니다. 


                            “참으로 거룩한 사람은 땅스런 모든 것을 반긴다.”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

 

/맹주형 200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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