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와 신뢰 관계 중요

천주교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몇 달째 기관과 학부모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

경기 오산의 A유치원은 교사의 잦은 사직, 체험학습 운영, 아동학대 의심 등을 두고 일부 학부모들과 기관이 갈등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들과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학부모들 간의 충돌로 확대됐다.

경북 안동의 B어린이집은 지난 9월 체육수업을 하다 손가락을 다친 아동의 CCTV 녹화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을 이유로 해당 학부모가 항의 중이다.

A유치원은 지난 7월 교사의 잦은 사직 등에 대한 문제제기 이후부터 다섯 달, B어린이집은 석 달째 갈등 상태다.

“소수 의견 반영 어려워 민원 제기” 대 “유치원 안에서 공론화가 먼저”

A유치원의 일부 학부모들은 체험학습 장소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찾은 일, 귀가 차량에 아이를 뒤늦게 태운 일, 여러 교사들이 한 학기만 채우고 사직한 일, 원장 수녀가 아이들을 대하는 고압적 태도 등에 대해 교육지원청에 민원을 넣은 바 있다.

민원에 대해 교육지원청의 장학지도를 받은 유치원은 문제 제기를 한 학부모들과 전, 현직 원장, 수도회 유아분과 관계자와 논의 끝에 전체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원장은 익명의 민원 방식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고, 향후 체험학습에 설문지 결과 반영, 견학지 아동 이탈은 없었음과 교사의 잦은 사직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사과했다.

그러나 전체 학부모 120명 중 72명이 참석한 이 자리는 민원으로 유치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들과 원장의 답변이 충분하지 않다는 학부모들이 서로를 질책하는 자리가 됐다.

민원을 넣은 한 학부모는 “문제를 밝히고 대안을 마련하는 자리가 아니라 왜 원장 수녀님을 공격하느냐고 비판받는 자리였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운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주로 원장과 개별면담이 이뤄지는데, 이런 소통 방식으로는 당사자 외에는 문제를 알 수 없다면서 원장이 유치원 전체에 공식적으로 문제점과 대책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장과의 개인 면담에서 원장이 "유치원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나가라”고도 했다면서 “유치원에 운영위원회나 자모회가 있어도 다수결로 결정돼 소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운영위원인 한 학부모는 “제기한 문제에 동의하는 점도 있지만 원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무조건 다 민원을 넣으면 유치원은 일일이 해명해야 하고 교직원의 사기도 저하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문제에 대해 운영위원들과 논의해 자모회에 안건으로 올려 공론화했다면 다른 학부모들의 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그때 민원을 넣는 것이 공익을 위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원장수녀는 “소통하면서 서로 마음이 상하고 원장으로서 헤아리지 못한 점도 있겠지만, 예전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원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시정하는 모습에 더 집중해 주면 좋겠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또한 그는 지난 11월 접수된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이달 말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며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기 오산에 있는 A유치원. ⓒ김수나 기자

“삭제하지 않았다” 대 “믿을 수 없다”

한편 B어린이집은 지난 9월 7살 아동이 체육 수업에서 앞구르기 동작을 하다가 손가락이 다친 뒤부터 갈등이 지속됐다.

해당 학부모가 사고 3일 뒤 CCTV 열람을 요청했고 그로부터 4일 뒤 어린이집은 CCTV를 열람해도 된다고 부모에게 알렸으나 당시에 학부모는 열람하지 않았다.

해당 학부모는 오후 특기활동인 체육수업이 보강수업으로 오전에 진행된 점, 정보 공시에 업체명을 특기하지 않은 점이 법률 위반이며 체육 수업의 폐지를 묻는 가정통신문의 내용이 자신의 명예를 떨어뜨렸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서면 답변을 요구했다.

그 사이 운영위원회가 나서 중재를 시도했으나 해당 학부모가 만남을 거부하며 “원장과 담임교사의 진정한 사과와 명예 회복”을 요구했다.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결국 학부모는 사고 발생 한 달 뒤에 경찰에 상담을 요청하고 경찰 및 관계 공무원 등과 함께 CCTV를 열람하러 갔으나, 부상 당시의 녹화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어린이집은 공사를 맡았던 CCTV업체에 문의했고, 업체는 “설치 뒤 모션 감지 촬영으로 설정을 바꿔야 하는데 실수로 변경하지 않아 초기 설정인 24시간 연속 촬영 모드로 돼 있어 사고 이후 17일 분량만 저장됐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이 어린이집은 개원한 지 5개월째였고, CCTV 영상 정보를 6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는 영유보육법에 따라 1차 위반 시 과태료 50만 원을 지난 10월에 냈다.

이러한 해명에도 해당 학부모는 “CCTV영상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의문”이라면서 “어린이집은 실수라고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믿기질 않는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 학부모는 어린이집이 안전사고 초기 대응을 못했고 진정 어린 사과 등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 CCTV 임의 삭제로 경찰에 진정을 넣고 어린이집 앞과 시청, 도청 등지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안동경찰서 형사팀에 따르면 CCTV를 포렌식 감식했지만 복구 불가능해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났으나 부모의 요청과 경찰의 판단에 따라 CCTV는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넘겨져 조사 중이다.

원장 수녀는 “경찰 조사에서 강제로 삭제한 이유를 말하라는데 보관을 못한 것이지 삭제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고 직후 여러 번 사과했지만 받아들이질 않았고, 해당 아이의 담임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7세반 졸업을 앞두고 그만두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CCTV를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면서 “유아교육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들의 인권은 누가 보호해 주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는 “어린이집과 해당 학부모 간 중재를 시도했지만 그 학부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원장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신뢰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평소 부모들과 두터운 관계 쌓아야

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유아분과 회장 문 콜베 수녀는 “학부모와 기관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가 아닌 평소에 두터운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이어 “기본적으로 불만이 해결되지 않아 문제가 커지는데, 기관이 부모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으면 이런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계속 진위만을 따지면 해결이 어렵고 신뢰가 충분해도 부모는 아이 일이라 마음이 많이 상하기 때문에 기관에서는 먼저 부모의 마음을 최대한 읽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수녀는 “관계 형성이 안 되면 서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화가 어렵다”면서 “부모가 유치원과 교사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부모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어렵더라도 풀려는 마음으로 근본적 이야기를 해 나가야 한다”면서 “유아교육에서는 부모와의 두터운 관계 형성이 아이를 적응시키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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