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여러 종교를 이렇게 보실꺼야 - 성서와 이웃종교 25]

▲ 안젤리코, 1433

유다라는 사람 

성서의 주인공들 중 불가사의한 인물이 있다. 바로 “카리옷 사람(이스카리옷) 유다”이다. 예수의 제자였다가, 나중에는 예수를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배반자, 악인의 전형처럼 간주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유다가 그렇게 사악한 사람이기만 했는지, 실제로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평가하고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도리어 어떤 면에서 보면 유다는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민족애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점에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묵시 3,15) 그저 그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역설적인 귀감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유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유다는 예수의 제자단의 일원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를 알아보고 그의 제자가 된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 극소수 가운데 한 사람이 유다였다. 만일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예수 시대 갈릴래아에서 살았다면 가난뱅이나 죄인들과 주로 어울리는 예수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를 찾아가 동지의 언약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쉽지 않은 일이리라. 그 점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다는 보통 이상의 안목과 실천력을 지녔던 인물이다. 

유다는 제자단의 재정문제를 맡았다. 스승 예수는 집도 절도 없이 돌아다니면서 밥 먹는 일, 옷 입는 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예수인들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살 수 있었겠는가. 그도 밥은 먹어야 했고, 옷도 걸치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그런 살림살이에는 무신경한 사람이었으니, 누군가 대신 뒤치다꺼리를 해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이가 바로 유다이다. 당시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일부 여성들이 음으로 양으로 예수의 제자단을 후원했지만, 그 후원물을 공식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다른 일이었다. 후원금을 정리해두었다가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은 유다의 몫이었던 것이다.(요한 13,29; 12,5 참조) 번거로운 도맡아 했던 사람이라고나 할까. 

유다는 왜 예수를 배반했을까 

그러나 유다는 결국 예수를 배반하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 정황을 추측해보자. 일면 유다는 상당한 민족주의자였던 것 같다. 성서에 그와 관련한 단정적 구절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단 이름들 가운데 유다는 주로 열혈당원이었던 시몬 다음에 소개되고 있다(마르 3,19; 루가 6,16; 마태 10,4)는 점, 그리고 “이스카리옷”(가리옷 사람)의 ‘스카’가 라틴어로 칼을 의미한다는 점(그렇다면 이스카리옷은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 즉 자객이라는 뜻이 된다) 등을 종합하면, 유다는 무력을 통해서라도 로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던 열혈당원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예수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동족을 구해줄 메시아로 보고서 제자가 되었다가, 병자, 죄인, 빈자, 여자들과만 주로 어울리는 ‘무력한’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 내지 절망한 뒤 그를 더 이상 메시아로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고나 할까. 절절히 믿었던 예수에게 실망하고서 그를 가짜 예언자로 규정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신명기 13,1-11)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했으리라는 추측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이런 유다의 선택과 그 주변의 정황에 대해 성경에서는 “악마가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요한 13,2)거나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루가 22,3)고만 적고 있다. 유독 유다에 대해서만큼은 극단적일 정도로 악한(惡漢) 취급을 한다. 물론 이것은 예수의 죽음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유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있던 초기 교회의 해석적 표현일 것이다.

예수 죽음의 필연성을 하느님의 구원과 극적으로 대비시켜 드러내려는 초기 교회의 의도가 반영된 표현인 것이다. 성서의 다른 곳에서는 유다가 은전 서른 닢 때문에 예수를 배반했던 것처럼 적고 있지만, 그것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예수를 민족해방의 지도자로 믿었다가 실망하면서 결국 예수를 포기하게 된 셈이라는 추측이 지금까지는 제일 그럴듯해 보인다. 

유다의 선택, 세 가지 

유다는 평생 세 번의 선택을 했다. 첫 번째는 예수를 스승으로 선택한 일, 두 번째는 예수를 더 이상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두었다가는 도리어 민족에게 화가 미칠지 모른다고 판단하여 예수를 배반 내지 제거하기로 선택한 일, 세 번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돌이킬 수 없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을 선택한 일이다.(마태 27,5; 사도 1,17-18)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비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런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그 상황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기 힘들 것이다. 유다는 자신만의 선택을 했다. 죽음으로 과오를 뉘우친 셈이다. 유다만큼 열정적인 삶을 산 이, 다소 위험스런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자신의 결정에 순수했던 이가 몇이나 될까? 

“그렇지 않은” 세계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의 가르침 중에 “불연기연(不然其然)”이라는, 다소 생소한 말이 있다. 보이는 만물의 형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만”(其然), 보이지 않는 만물의 기원을 헤아려 보면 “그렇지 않다”(不然)는 말이다. 당연시하는 일상적인 “그런” 것들이 근원적 차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얘기이다. 이 점에서 보면 유다는 자신만의 “그런”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의 진면목은 “그렇지 않은” 세계에 있었던 셈이다.

진리는 힘으로 힘을 전복시키는 무력(武力)의 세계[其然]가 아닌, 그 힘을 깊은 곳에서부터 포기한 무력(無力)의 세계[不然]에서 찾아진다. 유다가 예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일상의 외형을 넘어서는 “그렇지 않은” 깊은 세계를 보지 못했던 데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힘으로 힘을 극복하려던 데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치적 독립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있었을지언정, 기존의 신분, 성, 혈연, 종교에 의한 차별은 넘어서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유다의 자세는 그 유다를 거부했던 그리스도교 안에 다시 전승되어, 유다인을 유다의 후손으로, 유다를 유다인의 주 이미지로 설정하게 되었고, 급기야 20세기에는 유다인 대학살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조리까지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메시아성은 “그런” 외형적 자민족 중심주의를 넘어 “그렇지 않은” 내밀한 측면을 구체화시켜주는 데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그 “그렇지 않음”을 얼마나 보고 사는지, 생각해볼수록 유다보다 나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찬수(종교문화연구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